‘황금 개의 해’를 맞아 팔자 고친 누렁이들이 있다. 한국에서 철장에 갇혀 올여름 보신탕이 될 운명이었던 개 170마리가 지난연말 성탄절기에 ‘난민’으로 미국에 이민 와 새 주인들에 입양된 뒤 카펫 깔린 리빙룸에서 뛰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옹고집으로 미국에 입국 못하는 무슬림 난민들에겐 ‘개 팔자가 상팔자’라는 한국 속담이 실감날 만하다.
국제 동물보호협회(HSI)는 이들 개가 경기도 남양주의 한 사육장에서 악취가 진동하는 옥외철장에 갇혀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고 있었다며 사육장을 폐쇄하는 조건으로 170마리를 몽땅 매입했다고 밝혔다. 캐나다의 ‘한국 개 구조회(Free Korean Dogs)’도 지난해 한국에서 240마리를 구조해 240 가정에 모두 입양시킨 기념비적 성과를 거뒀다고 자랑했다.
이들 기관의 시각에 ‘삐딱한’ 면이 없지 않다. HSI는 남양주가 서울 근교이자 다음 달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평창에서 2시간 운전거리라며 “보신탕용 개를 집단 사육하는 나라로 알려진 국가는 전 세계에서 한국뿐”이라고 비아냥했다. 한국 개 구조회도 음력으로 개띠 해인 금년엔 한국 개 사육장과의 투쟁에서 더 큰 전과를 올릴 것으로 기대한다며 젠체했다.
이들의 말만 들으면 한국이 마치 개들의 지옥 같이 느껴지지만 실상은 아니다. ‘개 팔자가 상팔자’라거나 ‘오뉴월 개 팔자’라는 속담은 농번기 여름철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농민들이 할 일이 없어 늘어지게 낮잠이나 자는 개를 보고 신세타령한 자조적 반어법이다. 하지만 이들 속담은 이미 실제가 된지 오래다. 무슬림 난민이 아니라도 누구나 실감날 만하다.
개를 기르는 한국인 숫자는 이미 2010년에 다섯 집 중 한 집 꼴(21.8%)인 1,000만 명을 돌파했다. 올해는 1,800만 명선으로 늘어날 추세이다. 1인 가구와 무자녀 부부가 부쩍 증가하면서 개가 애완동물 아닌 반려동물로 격상돼 자녀처럼 금지옥엽 보살핌을 받는다. 요즘 2조3천억원 규모인 ‘펫코노미’(반려동물 산업)가 2년 뒤엔 6조원대로 대폭 커질 전망이다.
개의 머리에 맞게 디자인한 ‘개글라스’(개 선글라스), 뚱보 개들의 실내운동을 위한 ‘개링머신’(개전용 러닝머신), 가출한 개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GPS 칩을 LED 밴드에 넣은 ‘스마트 개목걸이’가 나왔고, 작년엔 세계 최초로 개전용 자동샤워-드라이어가 출시됐다. 주인이 외출한 동안 개들이 ‘시청하며’ 심심치 않도록 개전용 TV 채널도 3개가 방영 중이다.
한국에선 개들이 십전대보탕, 사물탕 등 보약을 먹는다. 한 재(10~15일분)에 15만~20만원인 개 보약은 어린이용 한약 중 가장 약한 수준으로 조제된다. 강남의 한 한의원은 개 보약을 사려는 ‘펫팸’(pet+family)이 매일 끊이지 않는다고 했다. 개 침술도 인기다. 많은 수의사들이 한번에 2만원~10만원을 받는 개 침술을 배우려고 한방치료과정을 수료하고 있다.
유기농 채소와 참치 등 생선으로 만든 개 건강식이 나온 건 오래 전이다. 인삼공사가 홍삼을 넣어 만든 ‘지니펫’은 석달만에 1만 세트나 팔렸다. 요즘엔 개 전문 요리사인 ‘펫셰프’(pet-chef)가 만든 수제음식이 인기다. 개전용 호텔이나 개 의료보험도 이색상품 대열에 끼지 못한다. 이젠 주인 사망 후 반려견을 관리해주는 ‘펫 신탁’ 상품까지 나와 있다.
손자가 태어난 후 아들이 중국산 ‘시추’ 종 강아지를 얻어왔다. 이름이 ‘추이’인 그놈은 손자가 유치원에 가기도 전에 성견이 돼 지난해 다른 집에 양도됐다. 그 녀석도 4년 여간 호의호식하며 미장원과 수의병원을 들락거렸다. 내가 시골서 자랄 때 함께 뒹굴며 놀았던 누렁이는 비명횡사한 후 동네 사람들의 보신탕이 됐다. 쥐약 먹고 죽은 쥐를 먹은 탓이다.
요즘 한국에서 보신탕이 되는 개는 극히 일부다. 대다수는 미국 개 못지않은 ‘오뉴월 개 팔자’ 호강을 누린다. 한국에서 식용 견 200여 마리를 ‘구조해냈다’며 호들갑 떠는 미국의 동물보호단체들이 우스워 보인다. 미국에선 개 아닌 사람이 연평균 3만3,00여 명씩이나 총에 맞아 죽는다. 한국 식용견 보호보다 이들 총기 희생자들의 인명보호가 더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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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춘 시애틀 지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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