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접종만 하면 70~90% 예방 가능, 항체 형성에 2~4주 정도 소요
▶ ‘겨울철 불청객’ 노로바이러스, 낮은 온도서 생존기간 늘어나
강추위로 독감이 예년보다 일찍 유행하면서 서울 중구 제일병원 소아청소년과 대기실에는 진료순서를 기다리는 어린이와 보호자들이 가득하다. <연합뉴스>
주부 김모(37)씨는 얼마 전 4살배기 아들이 갑자기 구토와 설사를 일으켜 급히 병원 응급실에 데려갔다.
김씨는 아들의 병명이 노로바이러스 감염에 따른 식중독이라 깜짝 놀랐다. 식중독이 겨울철에 생기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들의 입원 치료를 마친 뒤 의사 조언에 따라 온 가족이 늘 손 씻는 습관을 가졌다.
이처럼 여름철에만 기승을 부릴 것이라고 여기는 바이러스가 한파가 몰아치는 겨울철에도 생길 것이라고 알고 있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 노로바이러스 같은 바이러스는 영하 20도에도 죽지 않을 정도로 모진 생명력을 지녔다. 그래서 운동 부족 등으로 면역력이 떨어진 어린이나 고령인은 겨울철에도 바이러스나 인플루엔자(독감) 등에 노출되기 쉽다.
일찍 온 독감, 지금이라도 백신 맞아야
이른 추위로 이달 초 강원 충북 세종시의 초ㆍ중ㆍ고교 3곳에서 독감 의심 환자가 급증해 방학이 시작되는 12월 말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질병관리본부는 지난 1일 전국에 독감유행주의보를 내렸다.
감기는 원인바이러스가 200여 가지나 되지만 독감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원인으로 예방접종을 하면 70~90% 예방할 수 있다. 다만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도 여러 종류가 있고 매년 유행균주가 달라 해마다 백신을 접종해야 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매년 유행할 독감 바이러스를 예측해 결과를 발표하고 있는데 올해는 A형 중 H1N1형과 H3N2형, B형 중 빅토리아형과 야마가타형이 유행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에서는 59개월 이하 영ㆍ유아와 만 65세 이상을 대상으로 A형 2종과 B형 1종에 예방효과가 있는 3가 인플루엔자 백신을 무료 접종하고 있다. 아직 독감 예방접종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이라도 맞는 게 좋다. 항체 형성에 걸리는 시간이 2∼4주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독감에 걸렸을 경우 건강한 사람은 충분한 휴식과 수분 및 영양 섭취를 통해 회복할 수 있다. 정진원 중앙대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증상이 매우 심하거나 면역력이 약한 어린이, 노인, 각종 기저(基底)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증식을 억제할 수 있는 타미플루, 릴렌자, 페라미플루 등과 같은 항바이러스제를 먹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독감은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폐렴으로 악화될 수 있다. 만일 기침이나 고열이 1주일 이상 지속되고 누런 가래, 호흡곤란 등이 나타나면 폐렴을 의심해야 한다. 폐렴 사망률이 10만명 당 32.2명으로 독감(10만명 당 0.4명)보다 80.5배나 높기 때문이다.
노로바이러스 식중독, 겨울에 절반 발병
포도상구균, 살모넬라균, 병원성 대장균 등 다른 식중독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기온이 떨어지면 증식을 멈춘다. 반면 ‘겨울철 불청객’ 노로바이러스는 낮은 온도에서 오히려 생존기간이 길어진다. 초기에 고열과 근육통을 동반하다가 설사가 본격적으로 생기는 특징이 있다. 즉 식중독의 주범이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는 노로바이러스 식중독을 ‘장에서 발생하는 독감(intestinal flu)’이라고 부른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식중독 유발 원인인 노로바이러스가 일으키는 식중독은 전체 식중독의 35% 정도를 차지하는데, 이 노로바이러스 식중독의 절반이 겨울철(12~2월)에 나타난다.
노로바이러스는 영하 20도에서도 장기간 생존이 가능할 정도로 끈질긴 생명력을 지녔다. 사람과 사람 간에 전염성이 있으며 주로 익히지 않은 조개류, 채소, 과일을 먹고 감염되는데 소량을 섭취해도 식중독을 일으킨다. 음식재료는 85도에서 1분 이상 속까지 충분히 익혀야 한다.
대개 바이러스에 오염된 음식을 먹은 뒤 발병한다. 감염자와 접촉으로 옮을 수 있으며 극소수 바이러스에 노출돼도 감염되기에 겨울철에 폭발적으로 나타난다. 잠복기는 바이러스 노출 후 1~2일 정도며 2~3일 발열과 구토, 설사, 복통 같은 증상이 있다가 자연히 회복된다. 아직까지 치료제나 백신이 개발되지 않아 평소 위생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
임종필 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어린이나 노인에서 구토나 설사로 탈수가 심해 입원치료를 필요로 하는 경우도 있다”며 “병독성이 강한 원인균에 의해 발생하거나 면역력이 떨어진 환자에게 발병하면 패혈증으로 이어져 치명적일 수 있다”고 했다.
손 씻기, 바이러스 예방의 첩경
바이러스나 인플루엔자의 빈번한 감염경로는 감염 환자가 기침이나 재채기를 하면서 튀는 비말(飛沫) 속의 바이러스 입자를 흡입하는 것이다. 따라서 감염 예방의 첫손 꼽히는 수칙은 수시로 손을 씻는 것이다. 비누로 흐르는 물에 30초 이상 철저히 씻도록 하고, 여러 사람이 함께 쓰는 비누보다 액체용 비누를 쓰는 게 더 좋다. 손 씻기가 어려우면 알코올이 함유된 손세정제를 사용해도 괜찮다.
특히 노로바이러스는 피부에 잘 붙어 환자의 침ㆍ분변을 직접 만지거나 음식물을 조리하는 과정이나 환자가 만진 손잡이를 잡아도 감염되기에 손을 철저히 씻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한 바이러스를 가진 손을 눈이나 입, 코에 가져 가는 것으로도 감염될 수 있다. 손으로 눈, 코, 입을 만지지 말아야 한다.
독감에 걸리면 고열 및 탈수 증세와 함께 근육이 약화되고 열량 소모가 커진다. 따뜻한 물과 영양분을 자주 공급해 주면서 푹 쉬어야 한다. 기침이나 재채기할 때는 옷을 입은 팔꿈치로 가리거나 휴지로 코와 입을 막는 기침 예절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김규남 상계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노로바이러스 감염으로 열이 나고 구토ㆍ설사를 한다면 무조건 굶기보다 죽이나 미음 등 자극적이지 않은 음식을 조금씩 자주 섭취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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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익 의학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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