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미는 오키나와 북서쪽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이 마을 입구에는 “70이면 어린 아이고 80이면 청년이며 90에 조상들이 하늘나라로 오라고 하면 100세가 될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말하라”라고 쓰여진 돌판이 놓여 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3,000여명의 주민이 사는 이 마을에 100세 이상 노인이 10명이 넘는다. 인구 비율로 따지면 이보다 100세 노인이 많은 곳은 지구 상에 없다.
장수국으로 이름 난 일본에서도 오키나와는 주민들이 오래 사는 곳으로 유명하다. 일본에서 100세가 넘는 사람들은 6만 명으로 인구 비율로 따져 미국보다 2배가 많지만 오키나와에 사는 100세 이상 노인은 800명으로 인구 비율로 일본 전체보다 30%가 많다.
중앙아시아 코카서스 지역이나 남미 안데스 일대에 장수 마을이 있다는 소문은 있지만 그건 소문일 뿐이다. 오키나와 주민들의 나이는 생년월일이 적힌 호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오키나와야말로 검증된 장수 지역인 셈이다.
오키나와는 겉으로 보면 인간이 장수하기에 좋은 조건을 갖춘 곳은 아니다. 여름이면 다른 곳에서 온 사람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푹푹 찌고 태풍이 주기적으로 찾아온다. 토양도 척박해 물자가 풍부한 것도 아니다. 오키나와 주민들의 평균 소득은 일본에서 최하위 수준이다. 그런데도 이곳 사람들이 이렇게 오래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그 원인을 무엇보다 음식에서 찾는다. 미역, 다시마 같은 해조류와 두부는 일본 사람들이 잘 먹는 음식이지만 오키나와 사람들은 이것들을 일본에서 가장 많이 먹는다. 모두 심장 질환과 당뇨 등 성인병을 예방하는 성분이 풍부한 음식이다. 콜레스테롤과 혈압을 낮추는 타우린이 많이 함유된 오징어와 낙지도 이들의 주식이다.
혈당을 낮추고 동맥 경화를 예방하는 성분이 있는 쓴 오이 여주 튀김과 항암 효과가 있는 강황도 오키나와 주민들이 즐겨 찾는 음식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키나와 특산품인 진한 자줏빛 나는 고구마를 빼놓을 수 없다. ‘베니 이모’로 불리는 이 고구마에는 플라보노이드라 불리는 항산화제가 풍부한데 오키나와 인들은 이 고구마에서 하루 섭취 열량의 대부분을 얻는다. 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오키나와 인들의 플라보노이드 섭취량은 서양인들보다 50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식단 덕에 오키나와 주민들의 심장병 발병률은 미국인의 1/8, 전립선암과 유방암 발병률은 1/7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성인이 심장병과 암으로 죽는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오키나와 사람들이 오래 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오키나와 주민들의 또 하나 장수 비결은 적게 먹는 것이다. ‘배는 80%만 채워라’(하치부 하라)는 원칙이 생활신조로 굳어져 있다. 먹을 것이 부족했던 시절 아껴 먹는 전통이 이어져 온 것으로 보이지만 적게 먹어야 오래 산다는 것은 여러 동물 실험 결과 입증된 사실이다.
이밖에 다른 원인을 찾는다면 지금 오키나와에 살고 있는 장수 노인들은 모두 강한 유전자의 소유자들이라는 점이다. 1945년 태평양 전쟁 말기 미군이 오키나와를 침공했을 때 폭격과 기아, 집단 자살 등으로 오키나와 주민 1/3이 사망했다. 이런 극한 상황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보통 사람보다 원래 체력이 좋았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오키나와 장수 노인들의 특징은 100세가 넘도록 일을 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대부분 집 근처 텃밭을 가꾸며 재배한 농작물을 직접 따 먹는다. 이 또한 건강 증진에 도움이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불행히도 대표적 장수 지역이라는 오키나와의 명성은 오래 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제2차 대전 종전 후 미군이 주둔하면서 서양 음식들이 퍼지기 시작했고 오키나와 전통 식단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햄버거와 콜라를 주로 먹는 오키나와 젊은 세대의 비만도와 성인병 발병률은 이미 일본 본토를 넘어 섰으며 미국 수준에 육박하고 있다. 이들이 자신들의 부모나 조부모 세대만큼 건강하게 오래 살기는 힘들 것 같다.
대부분 사람들은 많은 돈을 벌며 무병장수하기를 소망한다. 돈 버는 일은 마음대로 안 되지만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은 식생활을 바꿈으로써 가능하다는 것을 오키나와 사례는 보여준다. 새해에는 오키나와를 염두에 두고 식단을 짜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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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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