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밤, 거룩한 밤…” 눈 나리는 한 밤중에 촛불을 밝혀 들고 찾아온 성가대. 크리스마스의 추억은 이렇게 시작된다. 크리스마스다. 올해도 어김없이 들려온 목가적인 이 소박한 노래. 그러나 이내 곳곳에서 들여오는 굉음에 파묻히고 마는 느낌이다.
아우성은 바로 예수의 탄생지에서부터 들려오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선언했다. 거센 반발이 따랐다. 결국 유엔이 나서 예루살렘 지위에 어떤 결정도 거부하는 결의안을 채택한 것.
‘미투’(Me Too-나도 당했다)의 함성도 그렇다. 그 시작은 트럼프 대통령취임 바로 다음날인 1월21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성의 권리는 인권이다’-. 이 구호와 함께 ‘워싱턴 여성행진(Women’s March on Washington)이 펼쳐진 것이다. 이날 행진에 참가한 시위자는 무려 20여만. 전국적으로는 100여만을 헤아렸다.
이후 전 미국을 강타한 것은 ‘미투’Me Too-나도 당했다)캠페인이다. 너도 나도 성폭행 피해를 폭로하고 나선 것. 급기야 타임지는 이 여성들을 ‘침묵을 깬 자’들로 명명하면서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이와 함께 ‘페미니즘’이란 단어는 새삼 유행어가 됐다.
‘유스퀘이크(youthquake)’- ‘젊음(youth)’과 ‘지진(earthquake)’의 합성어인 이 단어도 페미니즘 못지않게 2017년을 풍미한 버즈워드(buzz-word)다. 젊은 세대가 분노했다. 결국 행동에 나섰다. 그 결과 유럽의 정치판이 뒤집어졌다.
영국 총선에서 야당인 노동당이 예상 밖에 선전을 했다. 그 한 가운데에는 성난 젊은이들이 있었다. 사상 최초의 30대 대통령 당선이라는 정치적 기적을 일으킨 프랑스 대선. 이 역시 ‘유스퀘이크’의 산물이다.
이 운동들이 그렇다. 분노, 그리고 각성에서 시작해 결국 행동에 들어갔다. 대대적인 저항운동으로 펼쳐진 것이다. 때문인가. 주요 언론들은 2017년을 읽어내는 키워드로 ‘저항(resistance)’을 선정하고 있다.
2017년의 대한민국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그러면 무엇일까. 여전히 ‘촛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대한민국의 2017년은 2016년 10월26일에 이미 시작됐다.” 이스트 아시아 포럼의 지적이다. 부패한 권력에 분노해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나섰다. 대대적인 촛불 시위가 시작된 그 날을 ‘정치적 의미의 2017년의 출발점’으로 본 것이다.
무려 1700만여 개의 촛불이 켜지면서 불의한 권력은 무너져 내렸다. 그 엄청난 ‘피플 파워’에 전 세계가 놀랐다. 동시에 한국 민주주의의 역동성에 상찬이 뒤따랐다. ‘촛불을 통한 평화로운 명예혁명은 전 세계적으로 번지고 있는 시민운동에 영감의 근원이 되고 있다’는 논평 등이 그것이다.
촛불을 등에 업고 탄생했다. 문재인 정부다. 그 점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그래서 틈만 나면 촛불정신을 강조한다. 그 문재인 정부가 그런데 계속해 엇나가고 있다. 우선 인사(人事)가 그랬다. 대외전략은 다수의 일반 국민 의식과 동떨어져도 한참 동떨어져 있다.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답은 아무래도 촛불에서 찾아지는 것 같다. 불의한 권력을 해체시켰다. 시민들의 그 자신감은 희열감으로 표출되면서 촛불과 함께 탄생한 새 정부에 대한 기대로 모아졌다.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계속 고공행진을 한 것은 바로 그 이유에서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닐까. 교만이 싹튼 것이다. 그 교만은 촛불에 대한 자의적 해석을 낳았다. 그래서 시작 된 것이 모든 것의 ‘코드’화다. 다른 말이 아니다. ‘자주파’라고 할까, ‘좌파’라고 할까 그 쪽만 바라본다. 같은 코드의 사람들 소리에만 귀를 기울이게 된 것이다. 그 결정타는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방문외교다.
공산주의는 그 본산지에서도 파산선고를 한 지 오래다. 그 공산주의를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즉 시진핑 사회주의라는 새로운 이데올로기로 부활시켰다. 그리고 내세운 것이 일대일로(一帶 一路)라는 제국주의적 팽창정책이다.
그 시진핑의 중국은 아무리 그럴듯하게 포장해도 21세기 최대의 반동체제다. 그러니까 중화제국주의라는 DNA와 공산독재자 1인체제가 합성된 전체주의 폭정체제가 바로 시진핑 체제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 중국을 ‘높은 산봉우리’에 비교했다. 한국을 ‘작은 나라’라고 하면서. 그러면서 중국과 한국은 한반도, 더 나아가 세계평화와 번영을 위해 협력해 나가야 할 ‘운명적 동반자’라고 했다.
‘인도-태평양’ 대신 ‘일대일로’를 선택한 것이다. 다른 말이 아니다. 미국이 주도해온 자유주의 국제질서에서 탈피해 중국 중심의 위계질서로 들어가 스스로 조공국(朝貢國)이 되겠다는 거다.
여기서 한 번 되짚어 볼 것이 있다. 촛불이 지닌 진정한 의미다. “민주주의야 말로 한류의 가장 중요한 콘텐츠다. 촛불을 통해 우리는 한국 민주주의의 성숙된 모습을 보였다.” 광화문광장이 촛불로 메워졌을 때 한 무명의 네티즌이 인터넷에 올린 글이다.
인권, 자유, 민주주의 등 보편적 가치추구에 보다 성실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여망이 담긴 것이 촛불인 것이다.
문 대통령은 그런데 촛불억압의 상징 격인 시진핑을 허겁지겁 찾아 갔다. 결과는 무엇인가.
‘국가이성(raison d‘Etat)’이라고 했나. 국가가 국가이기 위해 필요한 법칙과 행동기준 말이다 인권과 민주주의로 집약된 그 대한민국의 국가이성이 1인 독재에, 힘만 추구하는 중국이라는 전 근대적 국가이성과 조우, 폭행을 당하는 수치를 자초해 당한 것이다.
청와대 기자단 폭행이 그것이다. 뭐랄까. 촛불로 상징되는 한국국민의 더 한층 성숙된 민주사회의 꿈이 무도한 ‘중국몽’에 무참히 짓밟히는 참사를 스스로 불러온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런 면에서 다름 아닌 촛불정신의 배반자가 아닐까.
다가오는 새해가 어쩐지 두렵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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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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