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이 마침내, 그토록 갈망했던 첫 입법 ‘승리’를 거두어냈다. 주요 어젠다의 입법에 번번이 실패해온 굴욕적 한 해의 마지막에서 공화당의 오랜 숙원이자 대통령의 우선 공약인 대규모 감세안이 연방의회를 통과한 어제, 12월20일은 트럼프와 공화당 ‘최고의 날’이라 해도 과하지 않을 것이다.
몇 달 전만 해도 온 정계가 회의를 표해온 대대적 세제 개혁 실현과 함께 지난여름과 가을, 폐지에 실패했던 오바마케어의 핵심조항 폐지까지 성공, 공화당 정부의 ‘중대한 진전’을 과시한 것이다.
공화당은 내분으로 지지부진했던 집권 정당의 통치능력에 대한 불신을 씻으면서 표밭과 의회에서의 잇단 패배로 저하되었던 사기 진작의 계기를 마련했으며, 자신의 표현대로 “크고 아름다운” 감세안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게 된 트럼프는 보다 강력해진 당 장악력을 행사하며 집권 2년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공화당의 축제 분위기는 그리 오래 계속되지 못할 것이다. 이번 성공을 2018년 중간선거의 승리로 이어가려면 감세안에 대한 표밭의 지지를 높이는 ‘홍보’에 당장 착수해야 하는데 그게 전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간에 쫓겨 무모하게 추진된 이번 감세안은 태생부터 많은 경고등이 켜진 채로 출발했다. “기업의 영구적 대폭 감세와 개인의 한시적 소폭 감세”로 정의되고 “서민들이 부담해야 할 최고 부자들의 잔치”로 비유되는 이번 감세안이 초래할 소득 불평등의 심화는 가장 거센 비판의 요인이며, 공화당 내에서도 경고하는 재정적자 증가는 구체적 대책도 제시하지 못한 상태다.
미 사상 이번 감세안만큼 인기가 낮은 주요법안은 찾기조차 힘들다. 최근 하버드 대학-해리스 여론조사에선 응답자의 3분의 2가 반대를 표했으며 CNN조사에선 55% 대 33%, USA투데이 조사에선 48% 대 32%로 반대가 지지를 앞질렀다. 1980년대 레이건과 2001년 아들 부시의 감세안은 각각 51%와 56%의 지지를 받았으며 1990년대 아버지 부시와 민주당 클린턴의 증세안들도 이번 감세안보다는 인기가 높았다.
그만큼 여론 설득의 앞날이 험난하다는 뜻이다. 보수언론 월스트릿 저널의 조사에서도 63%가 “기업과 부유층을 위한 것”이라고 답했듯이 부정적 시각을 바꿔야 하는 난제이기 때문이다.
‘감세와 일자리 법안’이라는 명칭의 세제개편안의 정확한 분석은 전문가에게도 몇 달이 걸리겠지만 그 핵심 내용은 이번 감세안의 대표적 승자와 패자를 꼽아보면 대충 이해할 수 있다.
승자는 법인세 대폭 감면과 함께 대체최소세와 송환세 폐지 등으로 한아름 선물 보따리를 받게 될 대기업들, 개인 소득세 인하에 더해 상속세 절감으로 더욱 부유해질 수퍼 리치, 고수익 ‘세금통과’ 업체에 대한 엄청난 감세 혜택을 받을 부동산 투자자나 헤지펀드 매니저들…별로 간소화되지 않은 세법 개정에 더욱 바빠져 수입 늘어날 회계사와 세무 변호사도 포함될 수 있겠다.
앞으로 한 두 해는 ‘승자’에 포함 될 수 있는 개인 납세자들은 장기적으론 ‘패자’로 전락하게 된다. 재정 적자가 심화되면 10년 한시적으로 규정된 이들의 감세혜택은 연장되지 못할 테니까. 그 훨씬 이전에 인플레이션으로 감세 효과가 사라질 것으로 예측하는 전문가도 상당수다.
적자 증가로 지출삭감이 불가피해지면 사회복지 프로그램이 축소되면서 저소득층과 노인들도 패자 대열에 합류하게 될 것이고 지방세 공제 제한으로 감세는커녕 증세를 당하게 된 캘리포니아와 뉴욕 등 블루 스테이트의 고소득자들도 패자로 분류된다.
또 하나 확실한 승자가 있다. 감세 등으로 경쟁력 강화된 기업이 고용과 투자를 늘리면서 중산층 소득까지 늘린다는 ‘낙수 효과’ 경제이론이다. 공화당은 이 낙수 효과를 근거로 경제성장 가속화와 함께 적자 해소까지 장담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의 전례는 공화당의 주장에 별 힘을 실어주지 않는다. 1960년대와 1980년대 각각 민주당과 공화당의 감세 단행은 경제성장의 효과를 보았으나 2000년대의 두 차례 감세는 성장을 오히려 약화시켰고 클린턴 시대의 증세는 경제 붐을 저지하지 않았다고 월스트릿저널은 지적한다.
신빙성 약한 낙수 효과에 의존해 흠집 많은 감세안을 두둔해야하는 공화당 의원들의 입장을 진보 언론들은 ‘벌거벗은 임금님’을 치켜세우는 우매한 무리에 비유하기도 하고, 다음 세대에까지 그 우매함의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하는 이기적인 무책임을 거세게 몰아붙이기도 한다.
민주당은 “감세안은 모든 공화 후보들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아직 깨닫지 못했다면 내년 11월에 깨닫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내년부터 당장 감세혜택으로 80% 납세자들의 소득 증가라는 ‘무기’를 믿는 공화당은 “그 반대다. 페이체크의 액수가 높아지면서 유권자들이 감세안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 될수록 감세안의 인기도 높아질 것”이라고 응수하고 있다,
어느 쪽이 맞을지, 장기적인 평가는 역사가 내리겠지만 단기적인 승부는 우리 한인들을 포함한 유권자들의 심판에 달려있다. 중간선거까지는 10개월 남짓, 현명한 판단을 위해 공부하고 고민하기엔 그리 긴 시간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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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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