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사주간지 타임(TIME)이 매년 말 선정하는 ‘올해의 인물(Person of the Year)에 성희롱-추행-폭행 피해 사실을 공개하는 ‘미 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을 촉발한 불특정 다수의 여성이 선정됐다. 최근 (2017년 12월1일자) 한국일보 ‘커튼콜’로 유발된 서울의 24세 소녀와의 이메일 대화 일부를 옮겨본다.
친애하는 선생님,
요즘 부쩍 어머니가 많이 하시는 말씀이 떠오릅니다. ‘xx야. 엄마는 26살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혼자가 되었어. 결혼을 했지만 찾아갈 친정집도 없단다. 엄마는 기댈 엄마가 없었어. 하지만 너희에게는 엄마가 있잖니. 정말 너희는 행복한 거야. 그러니 부디 속 좀 썩이지 말아주련’
항상 망각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엄마는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고 혼자 모든 슬픔을 꾹꾹 눌러왔다는 것을...
술을 격하게 많이 하시는 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집안 가구가 부셔지고 전화기도 매번 바꿔야했고 방 문고리가 부셔지기가 부지기수였는데, 그때는 그저 아빠가 미울 뿐, 엄마의 슬픔은 생각지 못했습니다. 제가 고등학생 때 어머니는 가끔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이런 집에서 얼른 독립해서 살아라.”
그렇다고 엄마와 제가 아빠를 증오하고 미워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빠의 사랑이 더 크다는 것을 알기에 그러려니 넘길 뿐입니다.
내가 독립하면 엄마는 더 더욱이 외로워질 텐데, 그 잔인한 외로움까지도 기꺼이 받아들이겠으니 큰 딸의 행복을 우선 바래주셨습니다. 엄마의 모습은 점점 작아만집니다. 하루만 전화를 안 받아도 엄마는 위염이 걸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외할머니도 위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엄마도 계속 위가 안 좋고, 저 또한 유전으로 위가 좋지 않습니다. 제 나이 불과 22세때도 전 그냥 확신했을 정도니까요. ‘난 위암으로 가겠구나.’ 언젠가는 엄마의 입장과 퇴장의 커튼콜을 수백 번 맞이해야 할 텐데, 지금 가끔의 커튼콜에 그저 휙 지나가는 제가 참 머저리 같습니다.
인생은 비빔밥, 사랑, 미움, 슬픔, 기쁨, 좌절, 통쾌, 희망, 나락. 어떤 나물이 부족한지도 모르겠습니다. 더 문제인 것은, 나물들이 종류별로 다 있어도 어떻게 비벼야 맛있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잘못 비볐다가는 다시 뱉어 버릴까 봐도 두렵습니다. -김xx 드림
친애하는 xx님,
내가 독립하면 엄마는 더 더욱이 외로워질 텐데, 그 잔인한 외로움까지도 기꺼이 받아들이겠으니 큰 딸의 행복을 우선 바래주셨습니다. xx님 어머님께서 내 옆에 계시다면 꼭 껴안고 조금이라도 위로해드리고 싶네요. 그 모진 세월 남편의 심한 ‘술주정’을 감내하며 살아오셨다니, 나도 분통이 터지고 가슴이 몹시 아픕니다. 잘못된 술버릇과 남성의 야만성 때문에 너무도 아름다운 몸과 마음이 그토록 극심한 심신의 고통을 당해오시다니! 하지만 아빠의 사랑이 더 크다는 것을 알기에 미워도 그러려니 넘길 뿐입니다.
내가 보기엔 그건 진정한 ‘사랑’이 결여된 아니 ‘사랑’의 반대로 결코 ‘그러려니’ 넘길 일이 아니고, 일찌거니 못된 ‘버릇’을 고쳐놓거나 안 되면 애당초 ‘인연’을 끊어버리고 새로운, 더 좋은 진’천연’을 찾아봐야 할 일입니다. 늦기 전에, 빠르면 빠를수록 더 좋은 일이지요.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될 일은 안 되더군요. 내 첫 아내(세 딸들의 엄마)와도 20년을 노력해 봐도 안 되더군요. 50대 중반에 와서라도 더 지체치 않고 헤어진 게 천만 다행스러울 뿐이랍니다.
‘그러려니’ 넘김으로써 그 못된 버릇 키워준 것일 테니까요. 요즘 미국에선 그런 남성의 가정폭력은 절대로 법적으로 용납되지 않고 가족으로부터 추방 격리되고(접근금지명령), 이를 위반할 때는 형무소행이지요. 참으로 강하고 큰 사람은 그의 위대함을 약자를 ‘괴롭힘’이 아닌 극진히 ‘위함’을 통해 나타내는 법이 아니던가요? 약자를 짓밟고 못살게 구는 자들은 세상에서 가장 비열하고 비겁하며 못나빠진 ‘인간 이하’의 ‘인간 말종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어떻든 사랑하는 xx님께서는 큰 별이 되기 위해 ‘성장통’을 아주 크게 앓고 계신 겁니다.
Bravo, Cheers! Fighting! -태상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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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상/전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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