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선 대통령들에게 취임 첫해는 가장 생산적인 시기다. 지지도가 한창 높을 때이며 연방의회와의 사이도 나쁘지 않고, 발목 잡는 스캔들도 없는데다 당파적 양극화도 조금은 자제할 때다.
공화당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이 민주당 의회를 설득하여 감세안을 통과시킨 것도, 빌 클린턴이 경제공약을 실현하면서 가족의료법안과 총기규제법안을 통과시키고 전임 아버지 부시가 남긴 미완의 과제 나프타의 의회비준을 받아낸 것도, 아들 부시가 감세안을 통과시키고 연방교육정책을 바꾼 것도, 오바마가 대규모 경기부양안과 금융규제안을 통과시키고 오바마케어를 거의 마무리한 것도 모두 취임 첫해였다.
쾌적한 정치 환경은 보통 첫 1년뿐이다. 집권 2년째에 접어들어 중간선거를 앞둔 의원들이 몸을 사리기 시작하면 대통령, 특히 지지도가 낮아진 대통령의 입법과제도 사사건건 난관에 부딪치기 시작한다. 뉴요커가 제시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 새 대통령 취임 후 첫 중간선거에서 여당이 잃은 평균 의석수는 하원 30석, 상원 4석이나 된다. 현재 의회의 다수당을 바꿀 수 있는 숫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첫해가 아닌 집권 8년 째”의 레임덕 대통령 같다고 뉴요커는 비유한다. 그의 첫해가 전임자들과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지지도는 기록적으로 낮고 스캔들의 늪에서 발을 빼지 못한 상태이며 자당인 공화당 의회와의 관계는 때론 아군인지 적군인지 헷갈릴 정도로 불안정하다. 무엇보다 아직 주요 어젠다의 입법을 성사시키지 못했다.
12월은, 취임 첫해를 자칫 빈손으로 끝낼 위기에 처한 트럼프에게 놓칠 수 없는 만회의 기회다. 의회가 크리스마스 휴회에 들어갈 15일까지 실제 업무일인 앞으로의 열흘이 트럼프 행정부의 성공여부를 가늠할 중대한 시기가 될 것이라고 뉴요커는 예상한다.
예년에도 산적한 과제로 숨 가쁜 일정에 쫓기는 것이 워싱턴의 12월인데 금년엔 더욱 어수선하다. 대통령의 향후 정치적 입지와 중간선거 앞둔 공화당의 재집권 여부가 달린 중대한 시기이지만 예측불허 트럼프의 시대답게 어느 하나 확실한 것이 없어 모든 게 예측불허이기 때문일 것이다.
연내에 통과시켜야 할 법안들은 줄줄이 대기 중이다. 이미 효력이 만료된 900만명 어린이 건강이 달린 보험프로 CHIP을 갱신시켜야 하며 연말로 만료되는 대테러 외국정보감시법 개정안도 통과시켜야 한다. 들불처럼 번져가는 의회 내 성추행 스캔들 대책도 세워야 하는데 12월12일 앨라배마 상원 보궐선거에서 미성년자 성추행 논란의 주인공인 로이 모어가 당선된다면 즉각 그에 대한 징계 절차도 밟아야 한다.
그러나 요즘 워싱턴을 뜨겁게 달구는 넘버원 이슈는 단연 세제개혁안이다. 금년 내 트럼프가 ‘승리’의 희망을 걸 수 있는 유일한 어젠다로 상하원 안이 각기 차이가 있지만 핵심은 최고 부유층에 파격적 혜택을 안겨줄 대규모 감세여서 여론의 지지도는 낮다. 하원안은 벌써 2주 전 통과되었고 상원안은 이제 막바지 진통에 돌입했다.
화요일 아침까지만 해도 지난여름 오바마케어 폐지안의 악몽을 상기시키듯(하원에선 통과되었지만 상원에서 무산되었다) 먹구름이 끼었던 상원 세제안에 이날 오후 활짝 햇살이 쏟아졌다. 힘든 관문으로 간주되었던 상원 예산위를 통과한 것이다. 승리에 목말랐던 트럼프가 의사당을 방문해 펼친 전방위 로비로 쟁취해낸 ‘1승’이었다.
트럼프의 설득에 반대를 시사했던 공화의원들이 속속 지지를 표명하면서 세제개혁안은 통과를 향해 절실했던 모멘텀을 얻어냈다. 그러나 이르면 오늘 내일 사이에 회부될 상원 본회의 표결에서 통과된다는 보장은 없다. 공화당 단 3표만 이탈해도 법안은 무산된다. 그리고 아직 의사를 밝히지 않은 의원들은 그보다 많다.
트럼프의 심란한 12월이 감세안 모멘텀만으로 안정되는 것도 아니다. 세제안이 통과되든 안 되든 다음 주 트럼프와 공화당은 민주당과 일전을 치러야 한다. 12월8일로 현행 임시예산안의 효력이 중지되기 때문이다.
세제개혁은 ‘부유층을 위한 비양심적 법안’이라며 강력 반대를 하면서도 표결에 영향을 주기엔 역부족인 민주당이지만 상원통과에 60표가 필요한 예산안은 다르다. 최대한 승리를 끌어내기 위한 투쟁을 벌일 것이다. 지난 9월엔 트럼프와 민주당 지도부의 ‘초당적’ 타협으로 시한 2주 전에 성공적으로 통과시켰으나 이번엔 트럼프의 비난성 트윗으로 회동마저 무산되었다.
반드시 통과시켜야하는 예산안에 트럼프의 DACA 폐지로 위험에 처한 드리머 구제안을 부착시키는 것이 민주당의 목표다. 공화당이 반대할 경우 정부 폐쇄도 불사하는 투쟁을 다짐하고 있다. 그러나 드리머 구제가 민주당의 최우선 과제 중 하나이긴 하지만 폐쇄를 우려하는 당내 의견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고민이 깊기는 공화당도 마찬가지다. 세제안이 통과될 경우 정부 폐쇄 사태는 공화당의 이 역사적 업적의 비중을 약화시킬 것이며 세제안이 무산될 경우의 폐쇄 사태는 집권 공화당을 통치불능으로 낙인찍을 것이다.
집권당은 자칫 이렇다 할 입법성과도 없이 한해를 넘길 수도 있고 민주당은 자신들의 집권 시 그렇게 혐오했던 정부 폐쇄의 주도자가 될 수도 있다. 그 성패가 한 두 표 차이로 갈릴 수 있어 모두 신중하게 말을 아끼고 행동을 조심하는 것이 요즘의 워싱턴이다.
한 사람만은 예외다. 인종적 동영상 리트윗과 상대당 비아냥 트윗을 남발하며 끊임없이 갈등을 빚어내는 대통령의 심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자신의 표밭을 다지기 위한 고도의 전략인지, ‘심란한 12월’에 불안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자가요법인지, 정말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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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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