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의 직분은 ‘정죄’가 아닌 ‘칭의와 득의’
▶ 루터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참 의미 해석
루터가 청소년기를 보낸 독일 아이제나흐의 루터 하우스
이 기고문은 이양호 박사(연세대학교 명예교수)가 지난 8월 11일 서울 루터교회에서 강연한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강연 ‘다시 그리스도 만으로’ 중 일부를 발췌해 정리한 것이다. 성경본문은 로마서 1:16-17, 고린도후서 3:9으로, 강연자의 뜻에 따라 제목을 ‘하나님의 의’로 수정하여 게재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역사신학자이자 종교개혁사 분야 권위자인 이양호 박사는 연세대학교 신과대학장 및 연합신학대학원장직 등을 역임했다. 현재 연세대학교 명예교수이자 기독교 대한복음교회 총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양호 교수 얼굴 사진
오늘 본문말씀은 종교개혁운동을 일으킨 루터의 사상적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친 말씀입니다. 루터의 말을 직접 들어보겠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의’라는 단어를 증오하였는데, 이는 내가 모든 선생들의 용법과 관습에 따라 그것을 형상적 혹은 능동적 의라고 즉 그것을 철학적으로 이해하는 가운데 하나님은 의로우며 불의한 죄인들을 처벌하는 것으로 이해하도록 가르침 받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죄인들을 처벌하는 이 의로운 하나님을 사랑하지않았으며, 아니 증오했습니다.”
루터는 이렇게 말하고 나서 자신의 ‘이신득의론’을 깨닫게 된 과정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마침내…하나님의 자비에 의해 나는 ‘그 안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니 기록된 바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인은 살리라’라는 말씀…거기서 나는 하나님의 의는 의로운 사람이 하나님의 선물에 의해 즉 믿음에 의해 사는 것임을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하나님의 의는 복음에 의해 나타나는 것인데 즉 그 의는 자비로운 하나님이 믿음에 의해 우리를 의롭다하는 수동적 의 즉 기록된 바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인은 살리라’라고 한 것과 같습니다.”
루터는 처음에는 하나님의 의를 하나님이 소유한 의라는 뜻으로 이해했습니다. 하나님은 의로운 분이기 때문에 죄인을 처벌하시는 분이시고 그래서 루터는 그런 하나님의 증오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깊이 연구하는 중에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이 만들어 주는 의임을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을 의롭다고 하는 분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하박국 2:4의 히브리어성경이나 로마서 1:17의 그리스어성경과 라틴어성경은 두 가지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고 번역될 수도 있고,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인은 살리라”라고 번역될 수도 있습니다. 루터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인은 살리라”라고 이해합니다.
우리는 흔히 루터가 이신칭의를 가르쳤다고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죄인이지만 믿음으로 의인이라 여겨지는 것이라고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루터의 저작을 읽어보면 그것은 반쪽의 진리입니다. 루터의 설교 중 하나인 ‘두 종류의 의’에서 루터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인간의 죄에 두 종류가 있듯이 그리스도인의 의에도 두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 것은 외래적인 의입니다…즉 밖에서부터 스며들어온 다른 분의 의입니다. 이 의는 무한한 의이며, 죄를 한 순간에 없애 버리는 의이며, 죄가 조금도 남아있을수 없는 의입니다...그리고 두번째 종류의 의는 우리 자신의 의입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의 의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그것을 혼자서 행하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외래적인 첫번째 의와 더불어 의를 행하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것입니다. 이 의는 첫번째 의의 산물입니다. 이 의는 옛 아담을 제거하고 죄의 몸을 멸하려고 항상 노력함으로써 첫째 의를 완성해갑니다.”
첫째 의는 우리가 의롭지 않지만 의롭다고 간주해 주는 의입니다. 그리고 둘째 의는 실제로 의롭게 되는 의입니다.
우리는 흔히 중세교회는 행함을 강조하고 루터는 그렇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루터를 오해한 것입니다. 오히려 중세교회는 성경말씀을 권고(counsel)와 명령(precept)으로 구분하여, 수도사는 권고와 명령을 다 지켜야 하지만 일반신도는 명령만 지키면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루터는 산상설교를 비롯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모든 신자들이 다 지켜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독일 비텐베르크 궁성교회 정문에 새겨져 있는 루터의 95개조 반박문 [사진 고상환 목사]
루터에 의하면 그리스도인들은 오른편 빰을 맞으면 왼편도 돌려대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오직 은총의 힘으로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루터가 말한 ’오직 은총으로’의 의미입니다. 우리는 산상설교를 율법주의적인 강요에 의해서는 지킬 수 없습니다. 다만 인간이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서 감동될 때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루터는 1620년 저작 “선행론”에서 기도하는 것, 금식하는 것, 구제하는 것만을 선행이라고 정의한 중세적인 선행론을 비판하면서 “하나님은 신앙 안에서 행해지고 말해지고 생각되어진 모든 것에 의해 섬김을 받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루터는 이렇게 새로운 선행론을 말함으로써 세상의 모든 일들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행이 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인간이 하는 일마다 다 선행이라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루터는 “만약 자기 마음이 어떤 일이 하나님을 기쁘게 한다고 확신한다면 그 일은 지푸라기 하나를 뽑는 것과 같은 작은 일이라 하더라고 선합니다. 만약 그런 확신이 없다면 혹은 그것에 대해 의심한다면 모든 죽은 자를 일으켰다하더라도, 자기 몸을 불사르게 내어준다하더라도 그 일은 선하지 않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또한 루터는 모든 선행들 가운데 첫째가고, 가장 높고, 가장 귀중한 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이라고 했으며 “행위들은 그 자체로가 아니라 신앙 때문에 받아들일 만하게 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루터가 오직 신앙을 주장했다는 말을 들어왔습니다. 루터가 오직 신앙을 주장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루터의 뜻은 심오한 데 있었습니다. 루터는 신앙을 다른 덕목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그 덕목들의 뿌리라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전의 신학자들은 신앙을 다른 덕목들 위가 아니라 옆에 두었다고 비판했습니다.
루터는 “갈라디아서 강의”에서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이 성자들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성경을 연구하면서 루터는 그리스도와 사도들이 말하는 성자란 그리스도의 보혈과 죽음으로 거룩하고 깨끗하게 되었다고 믿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은총의 힘에 의해 그리고 그 은총을 신앙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성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3:9에서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복음의 직분은 정죄하는 직분이 아니라 의의 직분입니다. 루터에 의하면 하나님의 의는 우리 죄인을 의롭다 여기주시고 또 의롭게 만들어 주는 의입니다. 따라서 교회의 사명은 사람들을 의롭다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의롭게 만드는 것입니다. 즉 세상을 의로운 사람들로 가득하게 하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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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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