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6년 6월 14일 33명의 미국인들이 북가주 소노마에서 당시 이곳을 지배하고 있던 멕시코 정부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다.이들은 곰을 그린 깃발을 국기로 삼고 ‘캘리포니아 공화국’을 선포했다. 멕시코인들은 이들을 “곰들”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이들이 곰을 새 나라의 상징으로 삼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들이 생긴 모습이 곰처럼 우락부락 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들이 일으킨 반란을 ‘곰 깃발의 반란’이라고 부른다.
당시 미국은 그 해 5월 멕시코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한 상태였지만 이들은 그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 해 7월에는 미 태평양 함대를 이끌고 있던 존 슬로우트 제독이 몬트레이를 점령하고 미국 깃발을 내걸었다. 그리고 곰 깃발이 걸렸던 소노마의 반란군 본부에도 성조기가 나부끼게 된다. 가주 독립 운동의 본산은 소노마인 셈이다.
소노마는 또 가주를 대표하는 포도주 산업의 탄생지이기도 하다. 헝가리 출신 이민자인 아고스톤 해러스티는 소노마로 이주한 뒤 1856년 부에나 비스타 양조장을 차렸다. 한 때 5,000에이커가 넘는 규모의 포도밭을 운영하며 ‘가주 포도주의 아버지’로 불리던 그는 1860년대 포도 나무를 병들어 죽게하는 필록세라 병이 창궐하며 재산을 모두 잃고 파산하기에 이른다. 1868년 재기를 꿈꾸며 니카라과로 건너 가지만 다음 해 강가에서 실종된 후 자살설부터 악어에 물려갔다는 설 등 설만 분분한채 시체마저 찾지 못했다.
그는 갔지만 지금 가주는 이탈리아와 프랑스, 스페인에 이은 세계 4대 포도주 생산지의 하나다. 미국에서 생산되는 포도주의 90%가 가주에서 나온다. 가주 와인의 75%는 중가주에서 나오지만 질만은 소노마와 나파를 따라 갈 수 없다.
가주 와인의 질을 높이는데 결정적 공을 세운 사람으로 로버트 몬다비를 빼놓을 수 없다. 이탈리아 이민 2세인 그는 1966년 나파에 몬다비 포도원을 차리고 첨단 기법으로 가주 포도주의 수준을 유럽에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이같은 그의 노력으로 1976년 파리 포도주 시음 대회에서 가주 와인은 프랑스를 누르고 1등을 차지했다.
가주 독립과 포도주의 본산인 소노마와 나파가 지난 달 북가주를 휩쓴 산불로 직격탄을 맞았다. 7,000채의 주택이 불타고 30억 달러의 재산 피해가 발생한 이번 산불은 미 역사상 최악의 자연 재해로 분류되는데 소노마 일대에서 3,000 채의 피해가 발생하는 등 집중적인 타격을 받았다.
그 중에서도 소노마 최대 도시 샌타 로자의 주택가인 커피 팍 일대는 히로시마를 연상시킬 정도로 폐허가 됐다. 불이 꺼진 지 한 달이 지났지만 복구는 엄두도 못내고 곳곳에 불에 타 흉칙한 고철로 변한 자동차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가주를 대표하는 식물학자 루터 버뱅크가 “온 지구 상에서 가장 선택받은 곳”이라고 불렀던 샌타 로자는 미국에서 가장 행복한 10대 도시 중 9위로 랭크된 곳이다. 모든 것을 다 가졌다 한 순간에 잃은 욥 이야기가 남의 일이 아님을 보여준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올 여름이 무척 더워 포도가 일찍 영근 덕분에 포도의 90%를 화재 전 수확할 수 있었다. 남은 포도는 껍질이 두꺼운 카베르네 소비뇽으로 연기 피해를 거의 입지 않는다. 거기다 500개가 넘는 포도원 대부분이 화를 면했다.
그러나 이번 화재로 이곳 주민들이 입은 손실은 크다. 집을 잃은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그렇지 않더라도 대부분이 관광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데 포도 수확 시즌에 불이 나는 바람에 관광객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이곳 러더포드에 자리잡고 있는 ‘오베르쥬 뒤 솔레이유’(‘태양의 숙소’라는 뜻)는 미국 최고급 호텔의 하나로 제일 싼 방이 하루에 800달러가 넘는다. 그러나 비싼 돈을 주지 않더라도 테라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지극히 평화로운 나파 밸리의 명품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인근에는 채소의 향을 살린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야채 수프를 끓여주는 식당도 있다.
내년 휴가로 나파와 소노마를 택한다면 세계 어느 곳에 내놔도 손색없는 맛과 멋을 즐기며 화마로 절망에 빠진 주민도 돕는 좋은 일까지 할 수 있다. 불탄 잿속에서 부활한다는 피닉스처럼 나파와 소노마가 다시 일어설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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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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