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진 경험땐 심리치료도 수포, 한달정도 현장서 떠나 있어야
▶ 마인드컨트롤로 심신 안정 유도, 복식호흡·요가 등도 자주해야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흥해초등학교에 보강작업 중인 건설사 관계자가 지진으로 부서진 기둥을 살펴보고 있다. <김정혜 기자>
#포항시 흥해읍 빌라에 혼자 사는 고선자(58)씨는 지진 이후 부산에 있는 아들 집에 이틀간 머물다 다시 돌아왔다. 고씨는 “짐을 챙기기 위해 잠깐 집에 들어갔는데 지진이 무서워 10분도 안 돼 바로 나왔다”며 “이제는 무서워서 집에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재 포항 북구에 있는 지인의 집에 머물고 있는 고씨는 재작년 정신을 잃을 정도로 큰 교통사고를 당해 3개월 정도 입원한 적이 있으며 지금도 치료를 받고 있다. 그는 “방금 한 일도 잘 기억나지 않는 등 자꾸 깜빡깜빡하는 것 같다”며 “생각 없이 멍하니 있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지진으로 아파트가 완전히 부서진 대서아파트에 사는 김태근(68)씨는 무너진 집과 차에서 홀로 쪽잠을 자며 지내다 21일 흥해실내체육관에 자리를 배정받았다. 어머니 병간호를 위해 3년 전 홀로 서울에서 고향으로 내려온 김씨는 어머니가 체육관 옆 요양원에서 지내 한숨을 돌렸다. 그는 “소파 같은 푹신한 자리에 있으면 곧바로 잠이 들지만 1시간을 넘지 못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날도 실내체육관 텐트 안에 들어가자마자 곧바로 잠이 들었지만 곧 쿵쾅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아동, 청소년과 임신부, 노인, 정신질환자 등 외상 후 스트레스 반응이 심한 고위험군은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로 인해 급성 또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악화할 수 있으므로 정부가 이재민 대피소 등에서 지진피해 주민의 트라우마 예방을 돕기 위해 구성한 ‘포항 현장심리지원단’과 가족 등이 잘 돌봐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다만 지금은 포항 주민 등의 불안감을 질병 차원에서 접근하기보다는 피해복구와 심리적 지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여진이 진행 중이고 이번 지진에서 사망자가 없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급성 또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같은 극단적인 질환을 보이는 사람은 드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정석훈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일상으로 빨리 복귀할수록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집이 부서지고 여진이 계속되는 상황이어서 설득력이 떨어진다”며 “일상으로 돌아가려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피해복구에 적극 나서고 여진이 일단락됐다는 확신이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경주 지진 발생 당시 심리지원단으로 활동한 박재홍 경주시정신건강증진센터장은 “지진으로 인한 불안감이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여진을 경험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며 “지진 심리치료를 해도 여진이 나면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갈 수 있는 만큼 최소 한 달 정도 현장을 떠나 있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포항 지진의 진앙지인 포항시 흥해읍 망천리 지역 주민들뿐 아니라 지진으로 정신적 불안감이 심각한 고위험군 환자들에게 정부 차원에서 한 달 이상 거주할 수 있는 집단 대피소를 마련해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지진 발생 후 자주 불안하고 잠이 잘 오지 않거나 금방 깬다면 우선 ‘마인드 컨트롤’을 통해 스스로 안정을 찾도록 노력하는 게 좋다. 홍진표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가장 편안하고 행복했던 때나 장소를 떠올리며 복식호흡·요가 등 이완요법을 자주 실시하면 스트레스 반응을 낮춰 불안감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지진 관련 정보에 과도하게 노출되는 것은 피하는 게 좋다. 지진 뉴스를 끊임없이 보면 불안과 스트레스가 가중되기 때문이다. 공포증은 위험을 계속 곱씹는 과정에서 악화되기 마련이다. 다만 지진공포증을 극복하려면 지진 발생 시 대처 요령을 익혀둬야 한다. 대피처·안전수칙 등을 알아두면 막연한 불안감을 떨쳐내고 자기통제감을 높일 수 있다.
그래도 불안·불면증이 여전하고 일상생활을 하기 힘들다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찾아가 두려움과 공포를 가감 없이 표현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단기간 약물치료를 받는 것도 좋다. 김정현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평소에도 예민한 성격이어서 지진 이후 극도로 불안하고 안절부절못하거나 호흡이 가빠지고 메스꺼움 등 신체 증상이 빨라진다면 효과가 빠른 항불안제(신경안정제)와 복용 2주쯤 뒤부터 효과가 나타나는 항우울제(SSRI 계열)를 함께 복용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급성 스트레스 장애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보다 가볍게 지나가고 치료도 잘되는 편”이라며 “다만 급성 스트레스장애가 있으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생길 위험이 더 커진다”고 덧붙였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는 환자들은 서둘러 심리치료를 받아야 한다. 전문가들은 정서적 지지와 그 사건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용기를 북돋는 것이 중요하다고 당부한다. 지진에 노출된 이재민들이 본인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사항들을 주변에 털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밖에 포항 지역 대학수학능력시험 수험생은 시험 연기로 불안감과 초조감을 이중으로 감내해야 해 가슴 두근거림, 현기증, 식은땀, 소화불량 같은 증상이 수시로 나타날 수 있다. 부모가 공감해주고 위로해주는 게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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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웅재·김경미·장지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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