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요일, 합창 연습을 하는 교회 주차장에서 차 사고가 있었다. 한 노인이 차를 주차하려다 이미 주차된 두 차와 연속으로 충돌하고 후진하다 건물 벽에 부딪치며, 기어를 바꾸었는지 앞으로 돌진해 교회 담을 무너뜨리며 인도 밖으로 튀어나가 가로수에 걸려 멈췄다. 끔찍한 사고임에도 인명피해가 없었던 것은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었다.
사고를 지켜봤던 교회 사무장의 말로는 차가 지그재그로 왔다 갔다를 반복했는데, 운전자가 다친 곳이 하나도 없어 기적이라고 했다. 충격을 받은 두 차도 주차된 상태라서 안에 사람이 없었고, 주일이 아니라 주차장에도 별로 차가 없었던 점, 사고에 관련된 사람들이 서로 알고 지내는 합창단원들이라는 사실은 ‘불행 중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 차는 먼저 부딪친 차가 밀려와 닿았기 때문에 크게 망가지지 않았다. 허나 처음으로 충돌한 차는 문도 잘 열리지 않을 정도로 피해가 컸다.
경찰 리포트를 했고, 보험회사의 정보를 모두 교환했으니, 사건 해결은 보험회사가 처리해 줄 것으로 믿는다. 사고를 낸 운전자의 나이는 71세이다. 그녀의 말은 브레이크가 말을 안 들었다는 것인데, 경찰은 사고 현장을 보자마자 브레이크를 밟는다고 생각만 했지, 발은 액설레이터를 밟았다고 추측을 했다. 보통 상식으로 이해되지 않는 사고를 낸 것이다. 나이 70을 넘기면 운전면허를 갱신할 때 필기시험을 다시 치러야 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만큼 순발력이 떨어지고 당황스러운 순간 인지능력도 젊은 사람 같지 않다는 것이다.
‘운전’은 내게 젊었을 때부터 힘겨운 짐이었다. 운동 신경이 둔하고 겁이 많은 소심한 성격이라 내가 차를 운전할 수 있으리라곤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모두들 미국서 운전을 못하면 발이 묶이는 것과 같다고, 운전면허는 받아야 한다고 권해 시험을 치르고 면허는 받았다.
미국 온지 6개월 만에 LA 알바라도 길에서 큰 사고를 당했다. 남편이 운전하고 내가 옆에 앉아있었다. 흑인이 취중 운전으로 완전히 중앙선을 넘어 우리 차를 박은 것이기 때문에 전적으로 상대 잘못이었다. 차가 파손된 것으로 보아 운전석 옆에 앉았던 내가 한 군데도 다친 곳이 없었던 것은 실로 하늘에서 도움의 손길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 후로 나는 차라면 보기도 싫었고 차 없이 걸어 다닐 수 있는 아주 작은 촌에 가서 살고 싶었다. 물론 운전은 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남편은 오하이오 주의 소도시 에크론으로 직장 인턴십 지원서를 냈다. 에크론과 톨레도에서 4년간 트레이닝을 받게 되었다. 아무리 작은 도시라고 해도 운전 안하고 살 수는 없었다. 남편이 당직을 하는 날이면, 아이에게 먹일 밀크가 떨어져도 마켓에도 갈 수 없어 보리차에 설탕을 타서 준적도 있다. 그 때 친정 아버지의 방문을 받았는데, 차도 있고 운전면허도 있으면서 겁이 나서 차를 몰지 못하는 딸의 한심한 상황을 보고는 이렇게 권했다.
“내가 너와 함께 차를 타 줄 터이니, 마켓과 은행가는 것만이라도 익혀라. 네가 운전대를 잡으면 그 차를 네 맘대로 조절할 수 있다고 생각해. 무슨 일이 생기면 핸들을 꺾어 피할 수도 있고, 브레이크를 눌러 스톱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면 다른 차들이 너에게 달려드는 것 같은 공포심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일주일을 매일 한 시간씩 아버지와 함께 한가한 길을 연습한 결과 나는 간신히 차를 몰고 마켓과 은행, 우체국은 갈 수 있었다. 전적으로 자상한 친정아버지의 덕분이다.
캘리포니아로 이주하고 나서 운전 문제는 다시 대두됐다. 로컬 길은 조심조심 운전을 할 수 있는데, 복잡한 프리웨이는 들어가기만 하면 큰 트럭이나, 다른 차들이 꼭 내 차를 박을 것만 같았다.
그런 가운데 꼭 프리웨이를 타야만 하는 일이 생겼다. 당시 시아버님이 스트로크를 당해 헌팅턴 메모리얼 병원에 입원을 했다. 글렌데일에 살고 있던 내가 병원이 있는 패사디나에 가기 위해서는 210 프리웨이를 타야만 했다.
1975년은 210 프리웨이가 처음 개통된 때라서 얼마나 한가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나에게는 운전이 버거웠다. 하지만 ‘죽으면 죽으리라’ 결심하고 탔더니 손바닥에 땀이 흥건히 젖어 핸들이 미끌거릴 정도였다.
내가 지금 프리웨이도 씽씽 달릴 수 있는 것은 온전히 시아버님을 간호해야만 했던 은혜의 기회 때문이다. 미국의 대도시 LA에서 프리웨이도 달릴 수 있는 운전자로 살고 있음을 이미 고인이 된 두 분 아버지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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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희 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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