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면홍조 등 증상에도, 70%는 병원 찾지 않아
▶ “호르몬 치료 땐 유방암 발병” , 잘못된 인식 탓 치료 꺼리기도
폐경기에 이른 여성 가운데 얼굴이 붉어지고 자다가 식은 땀을 흘리고 별 거 아닌 일에도 남편이나 자녀에게 갑자기 짜증을 내는 일이 많으면 폐경기 증후군을 의심해 적극적인 치료를 받아야 한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월은 폐경의 달이다. 얼굴이 붉어지고 후끈거리고, 목, 상체가 갑자기 뜨거운 기운이 느껴진다(안면홍조). 자다가 식은 땀을 흘리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하는 일도 없는데 피로하고, 별 거 아닌 일에도 남편과 아이들에게 갑자기 짜증을 내는 일이 많아진다 등등.
폐경이 다가오거나 폐경이 될 때 여성들이 많이 겪는 ‘폐경기 증후군’ 증상이다. 적절히 관리하지 않으면 심장병, 골다공증, 치매, 요실금 등 각종 질환에 걸릴 위험이 높아지고 삶의 질은 급격히 떨어진다.
우리나라 여성은 평균 49.7세에 생리가 끝나는 것으로 조사돼 ‘100세 시대’에 인생의 절반을 폐경 상태로 지내게 된다. 빠른 고령화로 2030년에는 폐경 여성은 전체 여성의 43%에 이를 전망이다. 하지만 폐경 여성의 70% 정도는 적극적인 치료를 하지 않고 있다. 호르몬 치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탓이다. 하지만 최근 연구결과, 적극적인 호르몬 치료가 폐경으로 인한 질환 예방을 위해 좋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폐경 여성 70%가 치료하지 않아”
대한폐경학회가 전국 45~65세 여성 2,330명에게 폐경 증상과 호르몬 치료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5% 여성이 안면홍조, 야간 발한 등 폐경 증상을 치료가 필요한 질환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70%는 치료하기 위해 병원을 찾지 않았다. 또한 폐경 증상을 개선하기 위해 폐경 여성이 가장 많이 선택한 치료법은 식이요법과 운동(36.5%)으로, 호르몬 치료(19.7%)와 건강기능식품 섭취(11.4%)를 앞섰다.
그러나 실제 식이요법과 운동을 한 여성 가운데 증상 개선에 효과적이었다고 답한 비율은 59.8%이었다. 반면, 병원 내원 및 상담 후 호르몬치료제를 처방 받아 개선 효과를 봤다고 답한 비율은 76.0%나 됐다. 즉, 폐경 증상 개선 효과에 대한 만족도는 식이요법 및 운동을 한 여성군보다 호르몬요법군이 16%포인트 더 높았다. 호르몬 치료에 부정적인 이유로는 질(膣) 출혈, 몸무게 증가, 유방통과 같은 부작용과 암 발생 두려움(88%) 때문이었다.
신정호 대한폐경학회 홍보이사(고대구로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많은 여성이 폐경이 돼도 제대로 치료하지 않은데 이는 ‘호르몬 치료를 받으면 유방암에 걸린다’는 잘못된 인식이 널리 펴져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신 이사는 “한국 여성에게 유방암은 폐경 이전인 40대에 많이 발병하는데, 이 시기는 호르몬 치료와 관계없다”며 “반면 서구 여성들은 호르몬 치료를 받은 60대에 유방암을 가장 많이 걸리기에 우리 현실과 전혀 다르다”고 했다.
호르몬 치료에 대한 잘못된 인식은 2002년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토겐을 병합한 여성호르몬 치료법이 유방암과 심혈관계 질환 발병 위험을 높인다는 미국 40개 기관에서 시행한 WHI(Women’s Health Initiative) 연구결과로 호르몬 치료에 부정적 인식이 커졌기 때문이다.
“호르몬 치료가 가장 효과적”
폐경 증상 치료에 부족한 여성호르몬을 보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효과적인 치료법이다. 일부 건강기능식품이나 의약품이 안면홍조 같은 폐경 초기 증상에는 효과 있을지 모르지만 에스트로겐 결핍으로 인해 생기는 심장병, 골다공증, 치매, 요실금 등 각종 만성질환에 대해서는 효과와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았고 부작용도 우려된다.
서석교 세브란스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폐경증후군에 효과 있다는 성분은 많지만 석류나 검은콩처럼 유행으로 지나간 경우가 많았다”며 “효과나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민간요법이나 일반의약품에 의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이윤재 자생한방병원 한방부인과 연구원장은 “한방에서 여성 폐경기 증상 완화를 위해 백수오를 처방하지 않는다”며 “최근 연구결과도 백수오에 여성 호르몬과 관련된 물질이 발견되지도 않았다”고 했다. 이 원장은 “체질에 맞지 않는 사람이 백수오를 잘못 먹으면 맥이 빨리 뛰는 등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했다.
대한폐경학회도 폐경에 호르몬 보충요법을 권장하는 지침을 내놨다. 호르몬 치료는 에스트로겐 단독요법, 에스트로겐/프로게스테론 병용요법 등 다양한 방법이 쓰여져 왔다. 최근 기존 치료제 부작용을 줄인 ‘선택적 에스트로겐 수용체 조절제(SERM)’도 새로운 치료옵션이 되고 있다.
학회는 “에스트로겐 결핍으로 인한 증상이 나타나고 폐경과 관련된 안면홍조 등 혈관운동증상, 비뇨생식계 위축증상, 폐경 후 골감소증 및 골다공증 예방과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호르몬요법을 쓸 수 있다”고 했다. 학회는 또한 “비뇨생식기 위축과 성기능 장애도 에스트로겐 결핍으로 상피세포가 위축돼 나타나는 증상인 만큼 호르몬 요법이 필요하다”고 했다.
논란거리였던 호르몬 요법과 유방암과는 상관관계가 없다는 쪽으로 정리되고 있다. 지난 9월 미국의학협회지(JAMA)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호르몬제를 사용한 WHI 연구 대상자 가운데 50~80세 그룹을 18년간 추적한 결과 에스트로겐 단독 복용군에서 유방암 발생이 오히려 45% 줄었다. 전체 사망률, 암 사망률, 심혈관질환 사망률도 늘지 않았다.
윤병구 대한폐경학회 회장(삼성서울병원 산부인과 교수)은 “60세 이하 여성이나 폐경 후 10년 이내라면 호르몬 치료가 득이 실보다 많은데도 불구하고 ‘호르몬 치료하면 유방암 걸린다’는 오해 때문에 호르몬 치료를 꺼리는 여성이 여전히 많다”고 아쉬워했다. 윤 회장은 “올바른 폐경 치료법으로 호르몬 치료가 가장 효과적”이라며 “건강기능식품은 폐경 예방과 치료에 별 도움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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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익 의학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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