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창조 과학부 우정 사업 본부는 지난 7월 올해 발행하기로 했던 박정희 기념 우표를 만들지 않기로 했다. 발행하기로 했던 우표를 재심을 거쳐 취소한 것은 한국 역사상 처음이다. 재심 이유는 박정희에 대한 평가가 정치적 논쟁의 중심에 있다는 것이다. 박정희에 대한 평가가 정치적 논쟁의 중심에 있지 않았던 적이 있었던가.
이번 우표 발행은 작년 4월 경북 구미시의 요청을 받아들여 우표 발행 심의 위원회가 만장일치로 결정한 것이다. 그랬다가 1년만에 재심에서 철회 찬성 8표 반대 3표로 뒤집었다. 1년 사이 바뀐 것이라고는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감옥에 가고 야당이 집권한 것뿐이다. ‘영혼 없는 공무원’이란 소리가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박정희는 1917년 경북 선산에서 5남2녀 중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집안이 어려워 박정희를 임신한 산모는 아이를 지우려 갖은 애를 썼으나 실패한 것으로 전해진다. 등록금이 없어 가난하지만 똑똑한 아이들이 많이 갔던 대구 사범학교에 들어가 교사로 잠시 일했던 그는 만주 군관 학교에 들어가 “충용한” 일본군 장교가 된다.
한 때 남로당에 가입해 사형 선고까지 받지만 전향해 가까스로 살아나며 5.16 쿠데타로 집권해 10.26으로 사망할 때까지 18년간 아프리카 수준의 최빈국이던 한국 경제를 세계 10대 교역국의 반열에 올려놓는 토대를 마련한다. 그러나 1972년 10월 유신으로 궁정 쿠데타를 일으켜 긴급 조치를 남발하며 인권을 탄압하고 종신 집권의 길을 걷기도 한다.
한국 근대사에서 박정희만큼 큰 족적을 남기고 격렬한 찬반 양론을 불러일으키는 인물은 없다. 그 지지자들은 그가 집권했던 1961년 82달러였던 1인당 국민 소득이 그가 죽은 1979년 1,647달러로 늘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 후 4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지금 한국은 3만 달러 시대를 눈 앞에 두고 있지만 한국 경제는 아직도 그가 짠 큰 틀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 한국 경제를 이끌고 있는 전자와 자동차, 철강 등 주요 산업들은 모두 그의 작품이다. 그는 “잘 살아 보세”와 “하면 된다”를 부르짖으며 가난과 무기력에 빠져 있던 한국을 밥 걱정 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사회로 만들었다.
이에 대해 비판자들은 경제 성장은 그가 아니더라도 이뤄졌을 것이라며 오히려 관주도형 경제 개발로 정경 유착 등 부작용이 구조화됐고 온갖 특혜를 받은 재벌들은 비대한 성장을 거듭한 반면 대다수 노동자들은 저임 속에 착취당했으며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심화됐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5.16과 10월 유신으로 민주주의를 짓밟고 자신을 비판하는 인사들은 고문 투옥은 물론 사법 살인까지 저지른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악이라는 것이다. 둘 다 진실의 일면이 있는 주장이나 지금 한국 사회는 박정희의 공과 과를 모두 인정하는 포용성은 결여된채 한쪽만을 강조하는 두 집단이 원수처럼 으르렁거리고 있다.
지난 13일 서울 상암동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 앞에서는 동상 기증 증서 전달식과 이에 반대하는 시위가 동시에 열렸다. 동상 건립에 찬성하는 이들이 태극기를 흔들자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박정희 물러가라”를 외치며 맞대응해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가장 지혜로운 중국 정치인의 하나로 손꼽히는 주은래는 200년 전 일어난 프랑스 대혁명의 역사적 의미를 묻자 “아직 대답하기 이르다”라고 말했다 한다. 박정희 손에 의해 투옥되고 해직되고 살해된 사람들과 그 유족들이 살아 있는 지금 한국 사회에서 그에 대한 공정한 평가가 이뤄지기를 기대하기는 무리일지 모른다.
13일은 “죽어라 일해도 먹고 살기 힘들다”며 분신 자살한 노동 운동가 전태일 사망 47주기고 14일은 죽은 지 38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논란의 중심에 있는 박정희 탄생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60~70년대 공장 노동자들의 삶이 열악했던 것은 분명하지만 천연 자원도 자본도 없던 당시 한국으로서는 낮은 인건비 없이 가격 경쟁력 있는 물건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했던 것도 사실이다. 우리보다 먼저 산업화의 길은 걸은 영국과 미국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서로 걸어간 길은 달랐지만 두 사람 모두 한국 사회 발전을 위해 살다 간 인물로 평가받는 날이 언젠가는 오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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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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