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로 글을 읽고 재미로 글을 쓰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재미’란 말 그대로 읽고 쓰는 것이 미식가의 식도락이나 스포츠 애호가의 스포츠 활동처럼 자연스럽고도 즐거운(?) 그런 것을 말한다면 말이다.
글은 오히며 어떤 교양이나 마음의 평화, 인생의 길을 제시받기 위한 그런 영혼의 날개 같은 것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지나치게 심각한 쪽으로 흐른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무튼 철들고 나서부터 나의 경우 독서를 재미삼아 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우선 시간이 모자란 것이 그 첫 째 이유였다. 어떤 이유에선지 나는 어느 순간부터 학과에 뒤처져 있었고 그것을 따라잡기 위한 시간을 뺀 나머지 시간은 인생의 방향을 정립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허비했다.
왜 사느냐? 어떻게 살아야하느냐 따위의 그런 철들어가는 생각에서 부터 종교적인 숙제, 인격적인 수련(?), 개성의 정립… 뭐 이러저러한 이유때문에 동시대 유행하던 작가들의 작품을 기웃거려 볼 시간이 없었다.
최인호라는 작가의 소설을 처음으로 접하게 된 것은 미국에 와서도 한참 세월이 흐른 뒤, 작은 비즈니스를 하면서 시간 여유가 생겼을 때였다. 읽어보니 시간 때우기에는 좋았지만, 이걸 정말 문학이라고 해야하나… 인정하기에는 왠지 방향감각도 없었고 어떤 (철학적인) 주제가 엿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칭찬을 해주자면 다소 반어적인 문장… 솔직하고 현대적인 감성… 까발릴 때 까발리고 욕하고 싶을 때 욕설해 버리는… 그런 배설의 통쾌감이라고나할까, 시원스럽고도 톡톡튀는 문장 때문에 아마 그의 글이 한국사회에서 그처럼 먹혔던 것 같다.
그러나 솔직히 어두운 미래… 개떡 같은 현실… 울화통을 낙서하고 또 그것을 배설해 버리는 통쾌감 외에, 그의 글에는 어떤 아날로그의 감동이 없었다. 빠르게 돌아가는 현실에 맞추어진, 그저 쓰기 위해서 쓰고, 팔기 위해서 써진 글이라고나할까.(고인에게는 좀 죄송하지만)
아무튼 그의 글 ‘깊고 푸른 밤’ 을 읽었다. 이 작품은 1982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는데 그들의 짜고치는 고스톱에 우리가 현혹될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도 상은 상… 왜 상을 받았나하는 것을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물론 여기서 문학성을 따지거나 심사위원들의 멱살을 한번 쥐어 흔들어 보겠다는 그런 의도에서가 아니라) 그의 작품이 하필이면 우리가 사는 베이지역과 캘리포니아를 무대로 펼쳐진다는, 아이러니에 있어서의 관심度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깊고 푸른 밤… 살다 보면 숨이 턱턱 막히는 순간이 있기 마련이고, 돌아보면 후회되는 순간이 있기 마련이지만 대체로 삶이란 그래도 이 순간이 내일(미래)보다는 나은 경우가 많다. 이제는 조금 나아 졌겠지… 후유하고 잠시 한 숨돌리다 보면 어느새 우리들은 문제들의 폭풍우 속에서 휘말려 허둥대는 자신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허들(장애)이 아니라 바로 그 허들을 뛰어넘고난 직후다. ‘아무개가 병이래며… 아니 XX 중독?? …’ 장애가 극복되고, 애너지가 고갈됐을 때… 또 하나의 장애, 허들의 파고는 우리들을 훅가게 한다.
‘깊고 푸른 밤’ 은 바로 그러한 우리들의 모습과 저자(최인호)의 모습이 절묘하게 오버랩된, (신의 한수의) 작품이었다. 잘 나가던 인기가 한풀 꺽인 뒤, 작가의 길을 회의하게 된 저자가 정치적인 상황을 빌미로 미국 유람에 나선다.
그가 미국에서 발견한 것은 그 어떤 실체하는 것도, 문학도 철학도 아니었다. 그저 그가 보고 싶어 했던 것… 생각하고 싶은 것을 무작정 갈겨쓰고 화풀이(?)하고 있는데, 같은 도시… 같은 빌딩, 같은 고속도로… 동일한 햄버거 집, 같은 문화, 같은 말… 하는 사람들이 마치 표정 없는 로보트처럼 살고 있다는 식의 고발은 충격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캘리포니아의 1번 도로는 여름에 비가 내려 종종 낙석으로 길이 막힌다는 둥(캘리포니아의 여름에 무슨 비가 내리노) 그룹들로 모여 술과 마약에 쩔어 사는 모습… 등등은 과장되고 우스꽝스럽지만, 문제는 저자가 로드 소설… 즉 도로하고 하는 속성을 통하여 절묘하게 이민자의 삶과 그 숙명의식을 걸고 넘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깊고 푸른 밤’ … 그것은 이미 닦여진 길… 어디로든 정해진, 이민자의 공포를 말하고 있다. 모든 길은 막다른 곳으로 통한다. 기적을 열어야하는 이민자의 숙명은 무겁다. 이곳이 절망스럽다고해서 (소설처럼)누구나 고향으로 U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결론을 위해 사는 것처럼 통속적인 것은 없다.
작가에게 미국은 유배지나 다름없었고, 운전자였던 준호(대마초 가수)는 버릇처럼 마리화나를 피워댄다. 그들에게 길은 지나가야할 운명같은 것이었지만 희망이 없다는 것…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어쩌면 한 걸음 한 걸음씩 꿈을 닦아갈 때의 초심… 찬란했던 땀방울을 잊고 사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깊고 푸른 밤… 그것은 샛길로 빠져 방황하는 소설 속의 주인공들이 아니라… 도전을 포기한 우리들의 모습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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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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