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는 한나절등산도 철저히 준비한다. 배낭 안에 없는 게 없다. 점심, 음료수, 비상용 식품 및 의약품, 비옷과 여벌옷은 기본이다. 카메라 GPS 나침반 망원경 헤드램프 밧줄 칼 라이터 간이의자에 지도도 들어있다. 날라리인 나는 먹을 것 외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지난주 LA 집에 휴가 가면서 전화충전 케이블을 챙기지 않아 핸드폰이 무용지물이 됐다.
최근 한국에서 인기탤런트 김주혁 씨가 젊은 나이에 교통사고로 횡사했다는 기사를 읽고 측은한 마음과 함께 그가 분명히 준비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낭 꾸리기 정도의 준비가 아니다. 멋지게 죽을 준비다. 사람은 누구나 반드시 죽는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모를 뿐이다. 한국에선 연간 25만여명이 세상을 하직한다. 하루 700명꼴이다.
‘죽음’이라는 말이 금기시된 한국에서 죽을 준비를 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재작년 이맘때 돌아가신 내 어머님은 새댁시절 입으신 고운 원삼 혼례복을 평생 아무도 모르게 간직하셨다가 내놓으시며 수의로 입혀달라고 유언하셨다. 임종직전 기독교로 전향하신 어머님이 ‘영적 신랑’인 예수님을 맞으려고 준비하신 것이라며 한 교인이 그럴 듯하게 해석했다.
지금은 보기 어렵지만 예전엔 동네 할머니들이 본인들 장례식용 삼베 수의와 상복을 품앗이로 준비했다. 삼베 수의는 사실은 일제문화의 잔재다. 한민족 전통 장례예법에선 고인이 생전에 입었던 가장 좋은 옷을 수의로 사용했다. 관리들엔 관복을 입혔다. 삼베 자체가 귀해진 탓에 삼베 수의 품앗이는 없어졌지만 영정을 미리 준비하는 노인들은 요즘도 많다.
수의나 영정 따위의 죽음 준비는 시시하다는듯 자기들이 죽은 뒤 들어갈 관을 품앗이로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뉴질랜드의 ‘본인제작 관 클럽(Do-It-Yourself Coffin Club)’ 소속 아마추어 목수들이다. 은퇴노인인 이들은 매주 화요일 동네 창고에 모여 각자 자기 관을 자기 취향대로 만들면서 “관이 아니라 품질 좋고 값 싼 지하용 가구를 만든다”고 허풍떤다.
모든 게 빠르게 발전하는 한국에선 죽음의 준비 캠페인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사전장례 의향서’가 그런 예이다. 5년전 이맘때 이 캠페인을 시작한 고령자 전문단체 한국 골든 에이지 포럼은 고령인구의 급증과 함께 잘 살기(well-being) 못지않게 잘 죽기(well-dying)’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지금까지 5만여명에 사전장례 의향서를 배포했다고 밝혔다.
장례의 의식과 절차가 본인이 원하는 대로 치러지도록 미리 당부하는 이 의향서는 부고의 범위, 장례의 형식, 공개여부, 부의금과 조화 접수 여부, 장기기증 여부, 화장 매장, 염습 수의 관 등의 선택 등을 자세히 적어두는 일종의 유언장이지만 법적 구속력은 없다. 생명연장 여부를 본인이 결정하는 사전의료 의향서나 사전 치매요양 의향서도 비슷한 예이다.
한국에선 죽음을 준비한 선각자로 한국최초 안과의사인 공병우 박사가 꼽힌다. 그는 “나의 죽음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고 장기는 모두 기증하라. 장례식도 치르지 말고 내가 죽어서 차지할 한 평 땅에는 차라리 콩을 심어라”는 요지의 사전장례 의향서를 작고하기 6년 전(1989년)에 썼다. 그의 타계소식은 뒤늦게 보도됐고 시신은 세브란스병원에 기증됐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담하게 받아들이도록 가르치는 ‘한국 죽음준비 교육원’이라는 비영리기관도 있다. 묘지와 화장장 투어를 주선하고 관속에 들어가 눕는 체험도 마련해준다. 이병찬 원장은 “어차피 닥칠 죽음을 미리 준비하면 자신을 성찰하게 되고 살아가는 자세가 달라진다. 역설적이지만 희망이 보인다. 잘 죽는 것이 곧 잘 사는 길이다”라고 역설한다.
일본의 인기작가 하루키 무라카미는 “죽음은 삶의 반대말이 아니라 삶의 한 부분”이라고 했고, 인도 성자 마하트마(모한다스) 간디는 “내일 죽을 것처럼 살고, 영원히 살 것처럼 배워라”고 말했다. “나는 죽음이 무섭지 않다. 이미 태어나기 전에 수십억년 동안 죽어 있었지만 그 때문에 겪은 불편이 전혀 없다”고 말한 사람도 있다.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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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춘 시애틀지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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