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우리 집에 도둑이 들었다. 그것도 한 낮에 내가 두어 시간 집을 비운 사이에 다녀갔다. 그 날 오후 2시경에 아는 분 병문안을 갔다가 4시쯤 돌아와 이층에 올라가 보니 온 집안이 난장판이었다.
도둑이 들었다는 직감과 함께 공포감이 휘몰아쳐 왔다. 침실의 서랍장이 죄다 열린 채 그 안에 있던 물건들이 어지러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다른 두 방도 예외는 아니었다. 책장과 서류 캐비닛, 서류가방은 다 열려 내용물이 밖으로 쏟아진 채 널려 있었다.
무엇보다 내 머리를 망치로 때린 것처럼 충격을 준 것은 화장대와 옷 방 선반위에 보물처럼 간직해 뒀던 귀중품들이 빈 껍질만 남긴 채 몽땅 없어진 거였다. 가격이 저렴한 장신구들은 용케도 내버려둔 채 말이다. 이럴 수가 있나! 망연자실, 정신을 가다듬을 수가 없었다. 한동안 주저앉아 있다가 정신을 추스르고 집안을 다시 점검해 보니 그 외의 다른 피해는 별로 없어 보였다. (후에 다른 물건도 없어진 것을 알게 됐지만)
내 평생에 세 번 도둑을 맞았다. 두 번은 한국에서다. 신혼 초에 한여름 무더위에 문을 열어 놓고 자다가 머리맡에 풀어 놓은 남편의 손목시계와 내 결혼반지를 도둑맞은 일이 있고, 또 한 번은 남편이 미국에 와 있을 동안 어머님이 시누네 집에 며칠 가 계실 때였다. 빈 집에 도둑이 들어 우리 집 귀금속을 몽땅 가져갔다. 이번이 세 번째다.
미국에 와서 도둑맞는다는 건 잊고 살았다. 더구나 지금 내가 사는 집은 타운 하우스라 사는 이웃들이 빤하고 또 그리 부자 동네도 아니다. 평소에 차고 문을 열어놓고 외출해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패티오 쪽에서 거실로 들어오는 문은 잠그지 않는 게 상례였다. 그날은 외출하면서 개가 드나드는 문에 설치된 패티오 쪽문을 살짝 열어 놓은 게 화근이었나 보다.
평소에 도둑에 대한 경계심 없이 안전지대라고 생각하며 지내 왔는데 어떻게 한 낮에 그것도 내가 외출한 시간에 맞춰 도둑이 든단 말인가? 그건 분명히 우리 마을의 사정을 잘 알고 더욱이 우리 집 사정을 속속들이 아는 사람의 소행이 분명한 것 같다. 결국 우리 집을 덮친 것은 한국 사람이 집에 현금과 귀중품을 많이 감춰둔다는 속설에 따라 우리 집을 겨냥해서 오랫동안 노렸던 결과가 아닌가 한다.
그렇다면 타지에서 차를 몰고 온 도둑이 아니고 같은 동네 사람이란 말인가! 결국 함께 사는 도둑을 이웃으로 믿고 살았단 말인가?! 정말 믿을 수가 없다.
도둑에게도 도둑의 도(道)가 있다 한다. 중국 노나라 시대에 부하가 9,000여 명이나 되는 도척(盜?)이라는 대도가 있었는데 부하들에게 도둑의 도를 가르쳤단다.
첫째, 어느 집에 감춰진 물건이 있다는 걸 감지하는 능력(聖). 둘째, 어찌해야 성공할지 아는 지혜(知). 셋째, 그 집에 먼저 들어가는 용기(勇). 넷째, 털고 나서 맨 뒤에 나오는 의리(義). 다섯째, 훔친 물건을 고루 나누는 마음(仁)이다. 이렇게 다섯 가지의 도를 갖춰야 참된 도둑이란 얘기인데 이런 도는 도둑 자신들만을 위한 도이다.
오늘 날에는 현대적인 휴머니즘 정신을 담은 도둑의 도가 있다고 한다. 첫째, 피해자를 놀라게 하지 않는다. (이게 봐 주는 건지 모르겠다) 둘째, 들키면 곧바로 물러난다. (강도로 돌변하지 않는다는 뜻일 게다) 셋째, 퇴각할 때 문단속을 해 준다. (다른 도둑에 의한 2차 피해를 막아준다는 뜻일 게다) 넷째, 한번 턴 집은 두 번 다시 털지 않는다. 다섯째, 턴 집에 관한 비밀은 절대 발설하지 않는다.
피해자를 배려한 멋진 도둑의 도이지만 현실적으로 오늘날의 막장 도둑들에겐 기대할 수 없는 우스갯소리가 분명하다. 우리 집을 턴 도둑이 이런 도둑의 도를 실천해 준다면 다시는 나를 괴롭힐 일이 없을 것이고 내가 좀 게을러서 집을 엉망으로 어질러놓고 사는 것이나 옹졸하게 사는 것도 소문내지 않을 것이다.
알맹이들만 쏙 빼간 빈 장신구 상자들을 보면 허전한 느낌은 어쩔 수 없다. 이참에 장신구를 다시 마련해야하나 하는 고민을 해 보았는데 하나씩 내려놓아야 할 나이에 새로 장만할 생각은 없다. 도둑이 내 욕심까지 훔쳐갔는지 모르겠다. 외출하면서 밋밋한 차림 때문에 주눅들 필요도 없다. 남의 이목에 연연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이제 모든 집착과 욕심에서 해방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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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광자/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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