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양곡 정신과 전문의
오래 전 캐나다 서부 휴양도시인 밴쿠버에 2주간 머문 적이 있었다. 노숙자들도 밴쿠버가 살기 좋은 곳으로 알고 있는지 곳곳에 몰려있었다. 번화한 길가의 높은 건물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찌든 양재기에 밥, 멸치, 김치를 섞어 먹고 있는 한인 노숙자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더러운 얼굴에 낡은 옷을 걸친 그 앞에 동전 깡통이 놓여 있었다. 값싼 동정심이고 무의식적인 나자신의 우월감이고 별 도움이 안 되는 줄 알지만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1달러를 넣고 왔다.
최근 1년 반 정도 콘도에 살며 아침 일찍 근처 공원에 산보를 다녔다. 그때 머리는 헝클어지고 수염이 덥수룩한 젊은 노숙자를 자주 만났다. 한눈에 보아도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이었다. 노숙자들을 위한 셸터도 학교나 감옥 못지않게 텃새가 심하다고 한다. 백인이고 젊고 거기에 정신병까지 가지고 있으면 힘 있는 자들의 따돌림 때문에 잠잘 자리 하나 못 얻는다. 일종의 갑질을 당하는 샘이다.
대부분의 노숙자들은 경제적 이유로 거리로 내몰리거나 약물중독, 정신질환, 병적 노름, 성학대 피해, 청소년 가출 등으로 거리생활을 하는 소외되고 빈곤한 계층에 속한다. 최근 정신병원 수는 줄고, 사회복지정책은 후퇴하고 도시화는 계속되어 노숙자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 이제 노숙자 문제는 국가적, 사회적 골칫거리로 등장했다.
대부분 타의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노숙자 신세가 되지만 극소수는 자기가 좋아 선택한 자의에 따른 노숙자도 있다.
50대의 중년 남자였다. 전문직에서 종사하다 어느 날 갑자기 가정을 버리고 정상적 삶의 괘도를 벗어나 길거리 사람이 되었다. 그는 셸터나 보호소는 절대 이용하지 않고 주로 폐허가 된 집이나 공원에서 지냈다. 물론 구걸도 않고 잡일들을 찾아 생활했다.
틈틈이 글도 쓰고 그림도 그렸다. 비 오는 날 노숙자들을 단속하던 순경과 시비가 붙자 말썽을 일으켜 정신병원으로 끌려왔다.
왜 거리에서 혼자 사느냐는 물음에 지능이 낮은 세상 사람들과는 살고 싶지 않아서란다. 가장이나 직장인이었을 때도 그는 항상 자기만 옳다며 자기주장을 고집했고 누가 자기를 비난하면 입에 거품을 물고 대들었다. 사람들은 자기를 사이코라고 하지만 자기 생각에는 그들이 사이코란다. 자신에 도취된 자기애적 성격을 가진 노숙자였다.
21세기 들어 자신은 물론 사회에 고통을 안겨주는 자기애 성격의 소유자들이 지난 세기보다 3배나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원인으로 자본주의의 부산물인 무한경쟁으로 인해 자기 살 길만 추구하는 이기심 그리고 정보기술 산물의 하나인 소셜미디어를 통한 자기자랑, 자기과장 등의 심리사회적 변화를 꼽는다.
최근 한 사회학자 그룹이 지난 30년 동안의 대중가요 히트곡 가사를 분석해 본 결과 ‘우리’라는 단어는 현저히 줄어들고 ‘나’라는 단어가 훨씬 많았다. 내용도 사회적 유대나 긍정적 정서의 메시지보다 ‘죽인다’ ‘밉다’ 등 분노, 반사회적 행동을 선동하는 게 다수였다. 인간관계의 기본요소인 관심과 소통, 공감과 배려가 서서히 사라져가는 현대사회의 실상을 보여주는 일면이다.
자기애 성격 소유자들은 이상하고 괴팍스러운 사람으로부터 사이코, 미치광이 등 여러가지로 불려진다. 그들은 충동적, 공격적, 배타적이며, 공감능력이 부족하고, 비합리적 자기과장과 숨겨진 창의성으로 둘러싼 밀폐된 공간에서 자기만의 감정도취 속에 자기만의 행복을 추구한다.
타인으로 부터 인정받고 싶은 내면의 욕구와 자기만의 어떤 창의성이 현실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심한 우울증으로 자살을 선택하거나 아주 드문 경우 이를 해소하기 위해 예술, 문학, 과학, 정치 등에 몰입하여 한 세기의 영웅이 될 수도 있다.
한마디로 그들은 심리적으로 열등감과 자아의식 결핍에 빠져있다. 열등감을 극복하지 못한 50대 노숙자는 정상적 생활에서 도망 나와 길거리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거리를 방황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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