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을 추억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것은 추억이란 대체로 타자의 관점에서 보는, 편견일 경우가 많기때문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누구를 추억한다기보다는 느낀다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인지도 모른다. 지난 번 추석에는 한 사람을 추억하며 지냈다. 그는 우리와 함께, 형제처럼 자란 삼촌이었다.
인생을 소풍 나오듯 그렇게 간 존재였지만, 그러나 그의 빈 자리는 늘 텅빈 상처… 잊고 싶어 할수록 더 우리를 몸부림치게 하는, 허무한 그림자였다. 삼촌은 늘 추석 무렵이 되면 우리 집에 나타나곤 했는데, 물론 그가 꼭 갈 곳이 없어서 우리집에 나타난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것은 오히려 어둠이 찾아드는 저녁, 아니 추석이 다가 올 때마다 썰렁한 빈방, 텅빈 식탁에서 메마른 혼술에 젖는 나그네… 먼 여행에 지친 철새처럼 한겨울 몸을 부대끼며 그렇게 고단한 날개를 쉬어가고 싶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방황하는 삶이 대체로 그렇듯 그도 40대 초반에 객사하고 말았는데, 여기서 그에 대한 지루한 얘기는 접어 두고 싶다. 다만 그와 함께 걷던 장소가 떠오르고 한강에서 얼음을 지치던 일, 재미없는 영화를 보면서 욕을 해대던 일, 그리고 마지막으로 석별의 정을 못견뎌 울화통을 터트리던 일, 풍성한 식탁은 아니었지만 그와 수저를 부딪치며 낄낄대던 일, 그리고 버스 안에서 앵벌이 청소년들에게 보이곤 했던 (그의) 우스꽝스러운 동정심 등이 떠 오르곤 한다. 사람은 대체로 이기적인 면이 있기 마련이고 또 그것은 너와 나 사이의 간격, 타인과 나 사이의 거리를 적당히 유지해 주고 때로는 스스로 절박함을 헤쳐나가는 독립심을 길러주기도 한다.
그러나 지나친 동정심은 스스로와 남에게 짐이 될 뿐이다. 나의 막내 외삼촌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삼촌의 목표는 아마도 씽씽 잘 나가는 사람, 즉 시쳇말로 쭉쭉 빼입고, 폼나게 기마이(적선)도 부릴 수 있는 그런 입신양명(?) 출세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삼촌은 그렇게 되질 못했다.
삼촌은 오히려 종교적인 사람이 되어야 마땅했다. 그는 너무 뜨거웠고 또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와 남에게 차이며 결국 타버린 하나의 연탄재, 어둠의 자식이 되어버렸는지도 몰랐지만, 본인의 불행은 그러한 스스로의 모습을 인정하지 못하고 결국은 항구적인 진리도, 소모품(세속)의 세계 속에서도 성공하지 못하고,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 속에 반항과 감상으로 몰락해 갔다는 것이었다.
넓은 방은 그의 존재를 받아들이는데 부족함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그와 일렬로 누워 잠을 청하고 쾌종시계의 종소리가 울릴 때 마다 하루를 세고, 인생의 순간순간을 지나는 변곡점으로서, ‘낙엽따라 가 버린 청춘’ 그가 제발 이제는 한 사람의 타인으로서, 바른 정립, 바른 궤도에 이르길 기도하곤 했다 .
그리고 어느 순간, 그라는 존재가 정말 우리의 뇌리에서 잊혀지고, 희미해지고, 사라져 버렸을 때 그는 마치 거짓말처럼 ‘땡’ 하며 저 세상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다가섰다. 사람의 죽고 사는 문제, 아니 삶의 긴 여정에서 한 사람의 존재, 누가 어떻게 살았느냐하는 것은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문제는 한 시대상을 이야기할 때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우리들의 공동체 의식이다. 개발 도상 국가, 산업화 시대의 젊은이들은 어둡고 음습했다.
영광의 대한민국 대망의 2천년대를 위하여… 반항다운 반항, 인생다운 인생 한 번 맛보지 못하고 쓰러져간 맨발의 청춘들. 삶은 힘들었고 , 또 그 속에서 자신과 세상을 동정하며 살아야했던 인생 나그네들… 낙엽이 지면 꿈도 따라 가는 줄 왜 몰랐을까. 삼촌이 남기고 간 상처가 그렇듯, 그 시대에 (유행하던)노래들, 또 그것들이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꼭 한국인들의 정서에 맞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어쩌면 노래의 주인공들이 살다 간 짧은 삶, 그것이 시대적인 비극에 운명적으로 맞아 떨어진, ‘낙엽따라 가 버린’ 인생들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찬바람이 얼굴을 스치면… 따스하던 너의 두 뺨이… 몹시도 그리웁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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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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