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은 1인분 만, 제임스’라는 1950년대 히트송이 있다. 당대 수퍼스타 냇 킹 콜의 목소리가 감미롭다. 원전은 ‘90세 생일’이라는 부제가 딸린 2인 단막 코미디다. 연말파티 단골손님인 남자친구 4명이 모두 죽은 후 90세 생일파티를 연 독신녀 주인을 위해 동년배 집사인 제임스가 그 4명 몫을 맡아 그녀와 연거푸 대작하다가 곤드레만드레 된다는 내용이다.
나도 1인분 저녁을 먹는 날이 부지기수다. 시쳇말로 ‘혼밥’(혼자 먹는 밥)이다. 아내가 LA 집에 내려가거나 한국에 여행갈 때는 미리 수십 끼니분의 각종 국을 끓여서 지플락에 담아 냉장고 냉동칸을 꽉 채워둔다. 새벽에 전기밥솥 스위치를 눌러놓고 출근한 뒤 낮시간에 퇴근하면 밥이 돼 있다. 지플락 하나를 꺼내 데워서 김치 등 밑반찬과 먹으면 ‘짱’이다.
워낙 젊었을 때부터 식당에서 혼자 밥 먹는 게 싫었다. 그런 사람이 왠지 측은해 보였다. 대다수 직장인들처럼 나도 동료기자나 지인들과 ‘방석집’ 식당에서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먹었다. 소주가 끼기 십상이었다. 우리 세대의 ‘동반 식문화’가 고정관념이 됐는지 요즘도 어쩌다 혼자 맥도널드에 가면 빅맥을 ‘투고’한 후 누가 볼세라 차 안에서 먹기 일쑤다.
하지만 한국에선 모든 것이 눈이 돌 정도로 빠르게 변한다. 식문화도 예전과 딴판이다. 최근 한국을 다녀온 한 교인이 “별난 구경을 했다”며 여행담을 풀어놓았다. 신촌에 들렀다가 한 ‘혼밥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단다. 일반 식당처럼 2~4인용 테이블이 없고 예전 독서실마냥 칸막이된 식탁에 한명씩 들어가 앉아 웨이터가 차려다주는 독상을 받았다고 했다.
혼밥 식당에선 웨이터가 “몇 분이세요?”라고 묻거나 자리를 배정해주지 않는다. 자동판매기에서 식권을 산 후 칸막이 식탁이나 일식당 같은 바에 앉아 있으면 그 식당의 ‘전문 요리’가 나온다. 라면?국수?햄버거?피자?도시락부터 카레라이스?고기덮밥?보쌈정식도 있고, 스스로 냄비에 보글보글 끓여먹는 샤부샤부, 미니 화로에 구워먹는 한우 불고기집까지 있다.
혼밥 식당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지만 고객층은 두텁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지난해 통계청 조사에서 식구가 한명인 가구가 539만 8,000 가구로 전체 1,699만 2,000가구 중 27.2%였다. 4가구 중 1가구꼴을 훨씬 상회한다. 특히 식욕이 왕성한 20~39세 그룹은 전체의 11.3%인 187만 8,000가구였다. 10가구 중 1가구꼴을 웃돈다.
특기할만한 것은 청년층 중에서도 20~24세 청년그룹의 나홀로 가구가 2010년 27만 2,000 가구에서 작년엔 39만2,000 가구로 6년 새 무려 43.9%나 늘어났다는 점이다. 25~29세 그룹의 1인가구도 같은 기간 49만 가구에서 53만 가구로 9.6%가 늘어났다. 증가일로인 나홀로 가구 중 상당수가 결혼을 안 하거나 미루고 있는 청춘 독신남녀들임을 시사한다.
한 결혼전문 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6년 사이에 결혼한 부부 3,000명의 평균 초혼연령은 남자 35.8세, 여자 32.7세였다. 10년 전보다 남녀 각각 2.4세씩 높아졌고, 반세기 전의 내 경우보다는 남자 초혼연령이 4세 이상 높아졌다. 아예 결혼 않는 사람도 많아져 작년 총 혼인건수는 1974년 이후 42년 만에 가장 적은 28만2,000건을 기록했다.
독신자들은 혼밥 식당에 가지 않아도 집에서 얼마든지 식당음식을 주문해 먹을 수 있다. 우리 세대는 중국집에 전화해 기껏 짜장면이나 배달시켜 먹었지만 요즘은 설렁탕부터 아구찜까지 거의 모든 식당메뉴를 배달해준다. 나도 서울에 가면 연로한 장모님에게서 식당 주문음식을 곧잘 대접받지만 솔직히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빠져서인지 식당만큼 맛이 없다.
미국에 혼밥 식당이 생겼다는 말은 못 들었다. 그럴 기미도 없다. 아직 주류를 이루고 있는 이민 1세대들에겐 역시 동반 식문화가 편하다. 등산 때도 일행이 둘러 앉아 먹는다. 산에서 끓여 함께 먹는 라면 맛은 기막히다. 하지만 세태는 막을 수 없다. 혼밥 문화가 한인사회에 들어올 것에 대비해 ‘고독한 식사’가 아닌 ‘오붓한 식사’를 즐기는 요령을 익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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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춘시애틀 지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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