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여느 때처럼 이번에도 이 칼럼을 지난 주말에 썼더라면 몰랐을 일이다. 하지만 바쁜 일정 때문에 작업 실행을 다음 월요일로 미룬 게 칼럼의 제목과 글의 논지까지 바꿔버렸다. 지난밤에 일어난 라스베이거스 대형 총기난사 사건 때문이다. 잠에서 깨면 핸드폰 즐겨찾기의 한 뉴스 사이트를 켜는 습관이 있다. 나 잔 사이에 세상엔 뭔 일이 있었을까 하는 궁금함 때문인데, 지난밤엔 정말 어마어마한 대형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오늘 아침 뉴스로는 현재까지 50여명 사망, 200여명 부상이라고 한다.
1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유일한 손자인 아들과 통화하실 때면 으레 하시는 말씀이 하나 있었다. 성은아, 절대로 사람 많은 데 가지 마라. 그 당시에 유난히도 대형 테러 사건이 많은 때여서 그러셨다. 어머니의 그 당부는 손자인 성은이는 물론 우리 부부의 실소를 머금게 했다. 그러나 작금에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그 당부는 한국 할머니들의 전형적인 염려에서 온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묻지마’ 폭행과 살인, 무작위 군중들을 향한 총기 사격, 광기 섞인 테러범의 폭탄차량 돌진 등, 이런 일들이 쉴 새 없이 일어나는 걸 볼 때 나도 이런 일들의 무고한 희생자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런 점에서, 어머니는 단지 손자를 향한 애정 어린 당부 수준을 넘어선 ‘예언’을 하신 셈이다.
이런 일들이 그나마 로컬에서 일어나는 걸로 위로를 삼아야 할까? 이런 자위적 위로의 근거는 조국 한반도의 현 상황 때문이다. 북한의 젊은 망나니는 계속 미사일을 쏘대고, 미국의 대통령이라는 자도 미사일에 버금가는 거친 입담을 쏟아내고 있으며, 그 틈바구니에 끼인 한국 정치권은 주변 대국들의 눈치만 보고 있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즈음 한 신문 칼럼에서 읽은 것이다. 트럼프에게서 가장 예측 가능한 게 있다면 그것은 그의 ‘예측 불가능성’이라는 표현이다. 지금까지의 그의 행보를 보면 이게 과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그의 이런 특성이 혹시라도 한반도 위기상황에 적용되어버린다면 어찌될까 하는 데에 있다.
또 하나 위로되는 게 있는데(이건 참 이상한 위로이지만!) 그것은 우리 국민들의 태연함이다. 물론 태연 안 하면 어떡할 건가? 그 좁은 땅덩어리 안에서 그들 입장에서는 할 수 있는 게 너무 제한되어 있다. 어쩌면 태연함만이 자신들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일 수도 있다. 또 이와 비슷한 전쟁의 소문은 지난 20년간 수도 없이 있어 왔다. 그것 역시 그들 안에 태연함을 부추기는 또 하나의 요인이 된다.
이 글을 쓰는 월요일 아침, 내가 거주하고 있는 새크라멘토 교외 지역은 평온하기가 그지없다. 이토록 아름답고 평온할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다. 한국은 내일 모레면 추석이다. 언제부턴가 추석 때면 이런 말이 언론에 오르내렸다. 한가위만 같아라! 지금만 같아라! 헤어졌던 가족들이 만나고, 해외여행을 떠나고, 맛있는 음식 먹으며 즐기는 이 시간, 너무 좋고 너무 평온한 것이다. 그래서 그런 말들이 돌았던 것 같다. 나도 동의한다. 지금 이 순간, 이 평온함이 계속 유지될 수만 있다면…. 맞다. “제발 지금만 같아라!”
요새 성경 이사야서 묵상 중이다. 어제 그 한 부분을 묵상하다가 유독 한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이 죄악이 너희에게 마치 무너지려고 터진 담이 불쑥 나와 순식간에 무너짐 같게 되리라.”(이사야 30:13).
담이 언제 미리 알리고 무너지는 걸 봤는가? 얼마 전 요세미티에서도 그랬다. 축구장 사이즈의 바위가 한 순간에 절벽 아래로 내려앉았다. 지금 우리는 위험하고 불안한 시대를 살고 있다. 미증유의 고통스런 재난은 늘 알아차릴 새도 없이 우리의 평온을 공략해왔다. 담이 한 순간에 내려앉듯이 말이다. 그런데 이런 이사야의 예언이 하필이면 왜 이럴 때 자꾸 눈에 들어오는지, 나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다만 기도할 뿐이다. 이렇게. “하나님, 이 평온함이 계속 유지되게 해주십시오! 다 못 믿겠습니다! 정치가들도, 유엔도, 사회시스템도, 사람들과 이웃도! 세상 왕들의 머리 위에 계신 하나님만 믿겠습니다! 하나님, 이 평온함이 계속 유지되게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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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숭 목사/ 새크라멘토 크로스포인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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