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숨 돌릴 새도 없다. 긴장의 연속이다. 건드리면 터질 것 같다. 말 폭탄이 쏟아지고 있다. 한 쪽의 우발적 행동이 군사적 충돌로 이어질 수도 있다.
사실상 선전포고 수준이라고 할까. 미국과 동맹을 위협하면 완전히 파괴할 것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유엔에서의 발언이 그렇다, 그 트럼프를 불로 다스리겠다는 김정은의 발언도 그렇다.
수령유일주의 체제 북한에서 소위 ‘수령’의 이름으로 성명을 발표한 전례가 없다. 그런데 김정은의 이름으로 성명이 발표됐다. 북한은 그만큼 전례 없는 위기로 상황을 보고 있다는 것으로 한반도 정세는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최악의 위기 국면으로 내달리고 있는 것이다.
‘한반도 운전석론’이라고 했나. 한국이 북한을 설득해 핵 위기를 해소할 수 있다는. 건드리면 터질 것 같은 정황에서 문재인정부의 그 주장은 슬며시 소멸된 느낌이다. 그 가운데 드러나는 것은 좌표를 상실했다고 할까. 우왕좌왕하는 한국정부의 모습이다.
그 케이스의 하나가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정보를 공유하는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이 1년 연장된 사실이다. 지난해 11월 이 협정이 체결됐을 때 지금은 집권당이 된 민주당은 ‘범죄적인 사대 매국 협상’이라고 비난했었다.
그 협정의 연장이 그런데 소리 없이 이루어졌다. 두 말 할 것 없다. 김정은이 잇단 장거리탄도탄(ICBM)발사에 6차 핵실험 도발을 해온 탓이다. 그러니까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했다. 그러면서 일본과의 군사정보교환을 마치 매국행위인 양 비난했다. 그러다가 슬며시 입장을 바꾸었다. 그게 현재의 정부 여당이다.
‘한국정부가 전술핵무기를 재배치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다’-. 중국정부의 주장이다. 강경화 외교부장관이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을 만나 그 같은 약속을 했다는 거다. 한국 외교부는 중국 측의 일방적 주장일 뿐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중국과의 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정부의 확고한 의지를 강조했을 뿐이라며 그 사실을 부인 한 것이다.
아마도 그 해명이 맞을 것이다.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된 것일까. 북한 핵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그리고 중국은 전술 핵 재배치에 줄곧 반대해왔다. 그 정황에서 중국과의 회담에서 애써 비핵화를 강조할 필요가 있었을까. 그러니 그게 중국에게는 어떻게 들렸을까.
거기다가 사드문제로 한국은 중국으로 또 한 차례 한 소리 들었다는 보도다. 한 마디 반론제기도 못하고. 중국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지는 모습을 또 다시 연출한 것이다.
그렇다고 외교부만 탓할 수도 없다. 비핵화를 마치 하늘이 대한민국에 부여한 것 같은 사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 점을 문재인 대통령이 CNN 방송과의 대담에서 온 천하에 알렸다. 그 대통령의 의중을 헤아리지 못하고 전술 핵 재반입을 주장했던 국방장관은 ‘왕따’가 됐다.
이것이 북한의 수소폭탄 공격에 무방비상태에 놓여 있는 대한민국의 오늘이다.
이 난맥상은 도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아무래도 심각한 ‘대 북한 착시(錯視)현상’(혹시 고의성의 착시인지도 모르지만)에서 그 답이 찾아지는 것 같다. ‘북한의 핵무장은 방어용, 체제수호를 위한 것이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이 우선 그렇다.
‘북한 핵문제는 본질에 있어 북한 체제의 문제다’-. 위클리 스탠다드의 댄 블루멘탈의 지적이다. 수령유일주의 북한체제를 지탱하는 이데올로기는 주체사상이다. 이 주체사상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이 바로 핵무기로 이른바 ‘최후의 승리’(Final Victory), 다시 말해 ’북한주도의 통일= 핵무장‘이라는 공식이 북한에는 이미 굳어져 있다는 것이다.
“주체사상은 김일성왕조에 의한 조선민족 통일을 궁극적 목표로 하는 이데올로기로 그 통일과정에서 핵무장을 불가결한 요소로 보고 있다.” 북한 전문가 니콜러스 에버스타트의 말이다.
왜 핵을 통일의 불가결요소로 보고 있나. 북한의 핵무장은 한반도에서 미국을 몰아내고 한미동맹와해를 불러올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과거 북한이 정전협정 대신 평화협정을 집요하게 고집했던 것도 같은 논리에서다.
평화협정이 이루어지면 미군은 철수해야한다. 미군 철수는 한미동맹 폐기로 이어지면서 남북한 관계의 다이내믹은 급격한 변화를 맞게 된다. 통일(북한주도)의 호기를 맞는 것이다. 한 세대 전부터 ‘통일’을 외쳐온 북한의 속셈에는 바로 이런 계산이 깔려 있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도 같은 분석을 내놓고 있다. 북한 핵무장의 궁극적 목표는 앞서 말한 대로 ‘최후의 승리’(북한주도 통일)를 노린 것으로 핵무장이 완성될 때 북한의 대남도발(오산에 의한)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나같이 내려진 결론은 이렇다. 현 북한 지도부는 결코 핵무장 포기를 안 한다는 것이다. 핵무장 포기는 ‘조선민족 통일이라는 신성한 의무’를 저버리는 행위로 이는 조선민주인민공화국(DPRK)의 존재이유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거다.
그리고 북한의 도덕적 코드에 따르면 이 ‘조선민족 통일이라는 대업’을 위해서는 외국정부를 기만하고 협약을 지키지 않는 것을 애국행위로 본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는 오히려 조국에 대한 배신행위로 간주한다는 거다.
그 북한의 핵무장에 대해 체제방어용이라는 일종의 면죄부를 주었다. 그 북한이 계속 도발을 해온다. 원폭도 모자라 전 민족을 죽음으로 몰아넣을지도 모를 수소폭탄 실험을 해대면서. 그러자 그 북한에 한마디 했다. ‘핵을 포기할 때까지 강도 높고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그러나 방점은 ‘평화’에 찍혔다. 평화를 30차례나 강조했다. 평화는 삶의 소명이자 역사적 책무라고도 했다. 또(평창 동계 올림픽)개회입장식에 입장하는 북한 선수단을 응원하는 공동응원단을 상상하면 가슴이 뜨거워진다고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그 발언에서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너무 공허하게 들린다. 아무래도 심한 대북 착시증상에서 나온 발언으로 들려서다. 다른 한 면 섬뜩하게도 들린다. 단호한 대북정책 발언은 그저 수사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스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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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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