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CNN‘GPS’ 호스트 예일대 졸, 하버드대 정치학 박사
트럼프 대통령의 유엔 연설은 무사히 끝났다. 그러나 그의 연설은 뒤죽박죽이었다. 여러 대목에서 현실정치를 찬양하다가, 느닷없이 자유와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등 상충하는 주제와 분위기가 어지럽게 뒤섞여 있었다. 그래도 민족주의의 포용이라는 핵심 주제만은 뚜렷했다.
취임 후 첫 번째 유엔연설을 통해 그는 미국의 역대 대통령 중 유일하게 ‘포스트-아메리카’(post-America) 시대의 새로운 세계질서 구축을 독려했을 뿐 아니라 재편된 질서가 공고해지는 것을 흔쾌히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우선 잡동사니 모음 같은 연설의 내용부터 살펴보자. 앞부분에서 트럼프는 “우리는 누구에게도 미국적 생활방식을 강요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불과 몇 분 지나지 않아 북한과 이란, 베네주엘라의 비민주적 정치체제를 강력히 비판하고 이들 모두에게 서구스타일의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탈바꿈할 것을 요구했다.
이런 종류의 고상한 발언이 지니는 위험은 이제까지 이것이 선택적으로 적용되어왔기에 세계의 나머지 국가들로부터 미국의 사리 추구를 위장하려는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는 냉소적 반응을 얻게 된다는 점이다. 트럼프는 이 같은 위선을 새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이란을 자유 결핍 국가로 비난한 것과 거의 동시에 사우디아라비아를 향해 호의적인 발언을 했다.
참정권, 종교적 관용, 언론의 자유 등 어떤 잣대를 들이대도 이란은 사우디에 비해 훨씬 개방된 사회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세계에서 가장 광적인 종교집단과 연결된 절대군주제 국가로 교회와 유대회당인 시너고그가 법으로 금지된 곳이다.
트럼프는 유엔연설에서 특이한 예를 들어가며 주권과 민족주의를 역설했다.
마샬플랜을 지원하기 위해 트루먼 대통령이 한 몇 마디의 말에 의지해 그는 국제질서에 대한 민족주의적 접근법을 “아름다고” “숭고하다”고 평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가 실제로 마샬 플랜을 지지할 것이라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마샬플랜은 외국인들이 그들의 산업을 부흥시키도록 지원하는 방대한 해외원조 프로그램으로 정부 관료들이 시행주체를 이룬다. 이렇듯 미국의 지원을 받아 부활한 해외 산업체들은 미국 기업의 경쟁상대로 자리 잡게 된다.
트럼프 연설의 압권은 극적효과를 낸 다음과 같은 대목이다: “여러분이 국가 지도자로서 자국의 이익을 -늘 그리고 당연히- 가장 중요하게 여기듯, 나 역시 미국의 대통령으로서 미국의 이익을 우선시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러시아와 중국과 같은 국가들이 수십년 간 입버릇처럼 했던 발언이다. 지난 70년 동안, 유엔회원국들 사이의 토론은 편협한 국가이익을 앞세우는 멤버들과, 지속적인 평화와 번영은 폭넓은 공통의 이익을 촉진하는데 달려있다고 주장하는 멤버들 사이에서 치열하게 전개됐다.
FDR에 의해 태동하고 그 이후 역대 대통령들의 지지를 받아온 후자는 무역, 여행, 질병, 범죄와 기후 문제 등 국경을 초월한 이슈들로 오직 지역적, 혹은 글로벌 차원에서 다룰 수밖에 없는 난제들을 모니터하고 지원하기 위해 유엔과 다른 국제기구들을 만들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는 세계의 지도자 노릇에 진력을 내고 있다. 그는 유엔연설에서 다른 모든 국가들이 미국과의 거래에서 불공정한 행동을 취하고 있다고 엄살을 부렸다. 거의 모든 국제 포럼을 장악해온 세계 최강의 국가가 어쩌다보니 다른 국가들로부터 불이익을 당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는 불평이다. 그가 해법으로 제시한 민족주의로의 회귀는 러시아와 중국 등 세계의 주요대국들 뿐 아니라 인도와 터키 등 편협한 사욕에 근거해 행동하는 나라들로부터 따듯한 환영을 받았다.
물론 이것은 미국의 주도권 상실에 따른 새로운 세계질서의 극적인 가속화를 의미한다. 새로운 질서 속에서 미국이 아닌 다른 국가들이 국제사회의 공동 이익대신 그들의 자체이익만을 염치없이 추구하는 정책을 제안하고, 여기에 필요한 국제기구들을 신설할 것이다.
트럼프는 미국이 유엔의 예산 중 22%를 부담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하지만 이 액수는 글로벌 GDP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율과 얼추 맞아떨어진다. 미국이 분담금을 축소할 경우, 트럼프는 중국과 같은 나라가 그 공백을 채우려 재빨리 나서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랄 것이다. 중국은 유엔을 완전히 장악해 새로이 틀 지을 것이며 지난 70년간 미국이 그래왔듯 글로벌 어젠다를 독점할 것이다.
아마도 중국은 유엔본부를 베이징으로 이전하는 제안을 내놓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도널드 트럼프는 유엔본부 이전으로 공터가 되는 이스트리버의 몇 에이커짜리 부지에 수 개동의 콘도미니엄을 추가로 지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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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CNN‘GPS’ 호스트 예일대 졸, 하버드대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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