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가주 요바 린다가 고향인 리처드 닉슨은 공산주의와 싸우는 것으로 정치 인생을 시작했다. 1945년 가주 공화당이 12지구 연방 하원인 민주당의 제리 부어히스 대항마로 당시 무명이던 닉슨을 택했을 때만 해도 그에게 승산은 없어 보였다. 그러나 그는 부어히스의 지지자 가운데 공산주의자 그룹과 연결된 자들이 있음을 집요하게 공격했고 그 결과 1946년 선거에서 연방 하원 의원에 당선됐다.
1950년 연방 상원 선거 때도 그랬다. 닉슨은 민주당 후보인 헬렌 더글러스의 투표 경력이 공산주의자로 의심받고 있는 뉴욕 출신 연방 하원 비토 마르칸토니오와 같다는 점을 지적하며 용공주의자로 몰아부쳐 압도적 차이로 이겼다.
1972년 그의 역사적인 중국 방문은 이런 정치적 입지 덕에 가능했다. 70년대 세계는 지금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세계에서 가장 면적이 넓은 소련과 가장 인구가 많은 중국이 공산 국가였고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개발 도상국 중 상당수가 그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그러나 60년대 말 공산주의 종주국을 자처하는 소련과 중국 사이에 갈등이 표면화 되면서 국경 지역에서 총격전까지 벌어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닉슨은 그 틈을 파고 들었다. 인구는 많지만 무기나 국력 면에서 소련에 뒤지는 중국은 이를 견제해 줄 상대가 필요했고 미국은 두 공산 대국을 갈라 놓아 국제 공산주의 세력의 팽창을 막는 것이 시급했다. 이런 이해 관계가 맞아 떨어져 결국 양국 정상간의 만남이 성사됐고 미국은 소련과 중국을 저울질 하며 국제 정치를 리드할 수 있게 됐다.
미국과 중국이 가까워지자 다급해진 소련은 다음해 닉슨을 모스크바로 초청해 전략 무기 감축 회담을 시작했다. 닉슨의 중국 방문은 중국을 이용해 소련을 견제하는 ‘신의 한수’였던 셈이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닉슨 이외에 다른 사람은 이를 할 수 없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은 6.25때 미국과 피를 흘리면서 싸운 사이고 70년대 초까지 미국과 전쟁중이던 월맹의 후원국이었다. 이런 나라를 다른 정치인이 방문했더라면 용공주의자로 매도 당하기 십상이었을 것이다. 공산주의와 수십년 동안 싸워온 정치 경력이 있던 닉슨이었기에 아무런 뒷말 없이 과감한 외교를 펼칠 수 있었다.
따지고 보면 1994년 북미 자유무역 협정과 1996년 웰페어 개혁법안 의회 통과를 받아낸 빌 클린턴도 마찬가지다. 민주당 리버럴 진영과 노조의 지지를 받고 있는 클린턴이기에 당내 반대파를 설득하는 것이 가능했다. 공화당 대통령이었더라면 노조를 파괴하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혜택을 박탈하는 악법이라는 여러 단체의 반발을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2007년 한미 자유무역 협정 체결 때도 그랬다. 자신을 지지한 세력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대통령은 한미 간의 자유 무역 협정을 밀어부쳐 타결 시켰다. 한국 협상 팀이 흔들릴 때 노무현은 “국가 이익만 보고 협상하라”고 격려했다 한다. 반대자들이 “망국적 매국 조약”이라고 규탄했던 이 협정은 지금 한국 경제 성장의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으며 오히려 미국쪽에서 자기들에게 불리하다며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지금 이와 비슷한 일이 다시 미국에서 일어나려 하고 있다. 지난 주 도널드 트럼프와 민주당 상하원 지도부가 부모를 따라 어려서 미국에 밀입국한 자녀들을 구제하기 위한 법안 마련에 합의했다고 한다. 8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는 이들은 현재 2012년 오바마가 행정 명령으로 마련한 DACA(Deferred Action for Childhood Arrivals) 프로그램의 보호를 받고 있는데 트럼프가 돌연 이를 폐지하며 자칫 남의 나라나 다름없는 출신국으로 쫓겨날 위기에 놓여 있다.
이들이 미국 땅에 온 것은 본인의 뜻과는 아무 상관이 없으며 지금 이들은 학교에 다니거나 군 복무 중이거나 각 분야에서 일하며 미국 발전에 일조하고 있다. 이제 와서 이들을 쫓아낸다는 것은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잔인할 뿐더러 경제적으로 봐도 미국에 손해다.
불법체류자를 집중적으로 공격해 대통령이 된 트럼프도 DACA 수혜자에 대해서만은 예외적으로 관심과 동정을 표시한 바 있다. 트럼프가 공화당 내 반이민 세력의 반발을 잠재우면서 이들을 보호하는 법안에 서명한다면 그 동안 소수계와 이민자들을 향해 쏟아부은 막말과 거짓말에 대한 자그마한 속죄는 하는 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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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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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fore we ask what is fair to illegal immigrants, we must also ask what is fair to American families, students, taxpayers, and jobseekers. We must also have heart and compassion for unemployed, struggling, and forgotten Americans. Above all else, we must remember that young Americans have dreams too
Lower wages and higher unemployment for American workers, substantial burdens on local schools and hospitals, the illicit entry of dangerous drugs and criminal cartels, and many billions of dollars a year in costs paid for by U.S. taxpay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