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열 페이스대 석좌교수
우리의 주위에서는 항상 통계숫자가 뉴스에 넘치도록 많이 나온다. 그중 보건 건강에 관한 것과 정치사회에 관한 통계들이 미디어를 통해서 많이 나오는데, 특히 아무나, 개인이나 기관이거나 할 것 없이, 자기 의견을 얘기할 수 있는 인터넷 세상에 사는 요즘은, 이 통계숫자들이 어떤 분들에겐 짜증스러울 정도로까지 혼돈을 가져온다.
우선 무엇이 우리 건강에 좋은가 나쁜가 얘기도 한주일 마다 결론이 바뀔 정도로 헷갈리게 된다. 우리가 즐겨 마시는 커피가 몸에 좋은가 나쁜가, 술을 가끔 마시는 게 좋은가 나쁜가, 하여튼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모든 것에 통계를 바탕으로 한 뉴스들이 나온다. 어느 주일 커피가 좋다는 얘기가 나와서 “이왕 마시는 것 기분 좋게 마시자” 그런 마음으로 있으면 그 다음 주에는 몸에 나쁘다는 뉴스가 나온다. 왜 이런가.
통계분석을 하는 것의 기본 프레임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나이별로 커피 마시는 이와 안 마시는 이들의 건강상태를 보려면 통계로 리그레션이란 것을 쓰는데, 독립변수와 종속변수로 한쪽을 두고 연관성을 보게 된다.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여러 가지 보완작업을 하기도 하지만, 기본 통계분석에서 나이 많고 건강한 사람 중에 커피마시는 이들이 많다고 커피가 몸에 좋다고 결론내리는 데는 좀 억지가 있다. 커피가 몸에 좋아서 오래 사는 것이 아니고, 오래 사니까 커피도 마시고 그렇게 살 수 있는 것이 사실인데 요령 있게 결론을 도출하다보면 자기가 하고 싶은 쪽으로 결론을 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술 마시는 것도 마찬가지다. 적당히 술을 마시는 사람이 건강한 게 아니라, 건강해야 술도 마시고 살 수 있는데, 연구를 하다보면 인과관계를 밝히는 게 아니라 많은 경우에 연관관계 확인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믿을 만한 통계조사기관에서 신빙성 있게 전문가들의 상호 심사 끝에 나온 통계결과 정도를 우리는 믿고 쓸 수가 있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할 것 없이 선거철이 되면 온갖 여론조사기관에서 인기투표 결과를 발표하는데, 인터넷 시대의 신빙성 없는 여론조사 결과들도 우선 인기조사결과이니 사람들이 보고 듣게 되고 이런 맹점을 이용해서 별별 여론조사기관들이란 게 나타나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그래도 큰 여론조사기관들의 발표가 비교적 공정하고 신빙성이 있는데 그것은 여론조사 자체의 공정성을 극대화하려 애를 쓰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대통령에 누가 당선될 것인가 유권자들에게 물을 때도 신문과 방송이 같이 연계된 조사를 하는데, 방송이 NBC처럼 리버럴 성향이면 신문은 월스트릿저널처럼 보수성향이라야 보는 사람들이 믿게 되니까, NBC/월스트릿저널이 합동해서 서로가 견제해가며 통계조사를 할 수 있고 믿을 수 있는 것이다.
외국의 좋은 제도가 한국에만 가면 꼬이고 탈색이 되고 비틀리게 되는 걸 우리는 수없이 보아왔는데, 여론조사도 마찬가지로 보기가 역겹도록 억지가 많다. 미국처럼 성향이 서로 반대인 신문과 방송이 합동으로 여론조사를 공정하게 하는 노력은 전혀 없고, 여론조사의 표본이 응답자 몇 백 명을 상대로 교묘하게 질문을 엮어놓으면 사실 여론조사기관 마음에 드는 대로 결과를 낼 수가 있다.
옛날, 정말 그 옛날, 세상이 제정신일 때, 고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언론기관들에서 엄선한 사회의 권위 있는 전문가들의 얘기만 독자들이 들을 수 있던 시절에는 사회의 구성원들의 판단이 그래도 혼돈 없이 줏대 있는 결론으로 도출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필자는 어려서 자유당 독재 말기에 경상도에서 유일하게 민주당 국회의원을 낸 야당성향의 시골 의성이란 곳에서 자랐다. 선거개표의 정당성을 믿을 수 없어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개표장이 있는 군청을 밤을 새워가며 에워싸고 지키던 시절, 필자는 어린 초등학교 학생이었지만 그런 이웃의 농사짓던 어른들에게 존경의 마음을 가지며 자랄 수 있었다.
인터넷의 약점인 방종과 “익명의 뒤에서 병든 영혼”들이 흐려놓는 세상을 보고 들으며 자라야하는 미래의 우리 자손들이 걱정스럽다. 헛통계와 헛소문과 헛여론의 혼돈이 주는 어두운 세상에서 우리 자손들을 구할 방법이 없을까. 특히 한국의 장래가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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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열 페이스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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