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7년 봄 미국은 건국 이후 최대의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1783년 파리 조약으로 미국의 독립을 공식 인정받은지 4년이 지났지만 신생 미국의 앞날은 어둡기 그지 없었다.
여전히 세계 최강국이던 영국은 막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파리 조약에서 약속한 미 서북부 요새를 미국에게 넘겨 주지 않은 것은 물론 툭하면 미국 선박을 나포해 선원들을 강제로 영국 해군에 편입시켰다. 스페인은 플로리다와 뉴올리언스를 장악한 채 미국 남부를 위협하고 있었고 북아프리카의 해적들마저 미국 상선과 선원들을 잡고 돈을 요구했지만 미국 정부는 줄 돈이 없었다.
13개주의 연합 정부격인 연합 의회는 독립 전쟁을 치르느라 엄청난 국채를 발행했지만 원금은 물론 이자도 제대로 지급하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징세권 없이 각 주정부가 자발적으로 내는 헌금에 의지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여기다 1786년 전직 독립군 장교였던 다니엘 셰이스가 매사추세츠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수많은 농부들이 과중한 세금과 빚에 허덕이다 집과 농장을 차압당하자 셰이스의 기치 아래 관공서를 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연합 의회는 은퇴 중이던 조지 워싱턴을 사령관으로 임명해 가까스로 이 난을 진압하기는 했지만 현 정부로는 더 이상 미국을 운영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마련돼 새 헌법을 마련하기로 했다.
1787년 5월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열린 제헌 회의에는 12개 주에서 55명의 대의원이 참석해 새 헌법 만드는 작업에 착수했으나 난항이 계속됐다. 새 헌법의 기초가 된 것은 버지니아 주 대의원인 제임스 매디슨이 만든 ‘버지니아 안’이었다. 모든 유권자가 한 표를 행사해 연방 의회를 구성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이 안은 작은 주들의 극심한 반발을 샀다. 이렇게 하면 버지니아 같이 인구가 많은 주가 의회를 주도하게 돼 나머지 군소 주들은 지방 방송으로 전락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뉴저지 안’이다. 이 안은 인구에 관계없이 모든 주가 한 표를 행사하는 의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인데 이는 대형주들의 반대에 직면했다. 인구로 보나 면적으로 보나 몇배가 차이가 나는 주가 동등한 표를 갖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다. 날이 가고 달이 가도 해결될 것 같지 않던 양측 주장은 코네티컷 주의 대의원인 로저 셔먼이 연방 의회를 상하원으로 나눠 상원은 모든 주가 동등한 표를 갖고 하원은 인구 비례로 선출하자는 타협안을 내며 접점을 찾았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북부 주들이 주로 노예가 필요없는 상공업에 종사하고 있던 반면 남부주들은 노예 노동이 필수적인 대규모 농업이 주 생업이었다. 일부 대의원들은 노예제 폐지를 원했지만 이는 남부주들이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들은 헌법 제정 후 20년 후 노예 무역을 금하고 남부 지역 노예 수에 3/5을 곱한 수를 추가 유권자 표수로 인정해주는 타협안에 합의했다.
이런 진통 끝에 필라델피아 제헌 회의에 참석한 대의원들은 1787년 9월 12일 최종안 마련에 성공하고 17일 55명의 대의원 중 39명이 이에 서명한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이 안이 연방 헌법으로 효력을 발휘하려면 13개 주 가운데 9개 주 제헌 회의의 인준을 받아야 했다. 미국의 생존과 발전을 위해 강한 연방 정부가 필요하다는 연방주의자와 이는 영국의 독재를 연방 정부에 의한 독재로 바꿀뿐이라는 반연방주의자 간의 격렬한 토론 끝에 1788년 11개주가 이를 승인하고 나머지 2개주도 1790년 마저 인준함으로써 미합중국은 탄생하게 된다.
미 독립 선언서에도 ‘연합된 주’(united States)라는 단어가 들어가지만 이 때 ‘연합’이 형용사였다면 연방 헌법에 들어간 ‘연합된 주’(United States)의 ‘연합’은 고유 명사다. 우리가 미 합중국이라 부르는 나라는 이 때부터 탄생한 것이다.
오는 17일은 연방 헌법이 탄생한지 230주년이 되는 날이다. 연방 헌법은 모든 인간의 작품처럼 불완전한 것이지만 미국인들은 끊임없이 헌법을 수정해 가며 미 건국 이념을 실현하고자 애써왔다. 그리고 그것은 모든 인간이 자유롭고 평등하며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누리며 사는 사회를 건설하는 일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헌법의 생일 맞아 미 건국의 의미를 다시 한번 돌이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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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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