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어 어릴 때 삶을 추억하는 것만큼 은근한 재미를 주는 일도 없다. 시대물 영화가 인기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교회에서 설교할 때도 느끼는 바이다. 예화는 설교에서 청중의 졸음을 깨우는 최고의 장치인데, 그들은 특히 옛날 자신들의 얘기를 하면 좋아한다. 내 세대로 치면 까까머리에 호크단추 교복 입고 학교 다녔던 얘기라든지, 당대 열풍이 일었던 엔터테인먼트 얘기(내 세대엔 그게 ‘디스코’였다) 같은 것이다.
그러나 그 재미는 잠시일 뿐이다. 개인적으로 더 깊이 들어가 보면 그 재미는 어느새 후회로 변한다. 만약 그 시대로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난 다신 그 모습으로 살진 않을 거라는 식의 후회다. 내 경우의 그것은 공부다. 그때 더 집중해서 열심히 할 걸, 그럼 지금의 내 인생이 많이 달라졌을 텐데…, 같은 거다.
우리 땐 소위 ‘국영수’라고 불리는 절대적 아성이 버티고 있었다. 난 국어와 영어에는 비교적 괜찮았다. 상위권을 유지할 정도의 점수를 냈다. 그러나 수학은 저 아래였다. 문과적 재질의 절반만 있었어도 평균적인 수학점수는 가능했을 텐데 국어와 영어에서 얻은 점수 수학에서 다 까먹을 정도로 못했다.
그래선지 난 지금도 가끔 악몽을 꾼다. 전혀 준비가 안 된 상태의 기말고사의 꿈, 언제 시험 보는 지도 모르고 있다가 시험장에서 헤매며 절망하는 꿈, 더 결정적으로, 대학 학력고사에서 망쳐버린 수학과 과학 과목 덕에 합격자 발표에서 탈락하는 꿈 등이다.
그래서 이런 저항적인 생각을 해봤다. “그 위대한(?) 국영수에서 지금 내 인생에 도움이 되고 있는 건 뭐지?” 목사로서 아마도 국어를 제일 잘 쓰고 있는 것 같다. 매주의 설교와, 여러 문서 작성과, 성경공부 자료 준비와, 또 오늘과 같은 신문 칼럼 작성에서다. 영어 역시 그렇다. 웬 운명인지 난 미국까지 와 살고 있다.
그때 나름 열심히 했던 영어가 큰 도움이 된다. 오히려, 이럴 줄 알았더라면 그때 더 빡세게, 더 생활영어 중심으로 열심히 할 걸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영어의 현실적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그러나 수학은 전혀 아니다. 수학은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수학은 돈 계산할 때의 덧셈 뺄셈 정도다. 이젠 그것마저도 휴대용 전화기가 다 알아서 해준다. 미분 적분? 로그와 수열? 삼각함수(난 이게 제일 지긋지긋했다)? 도대체 지금 내 인생에 그게 무슨 도움이 되고 있는지 묻고 싶다. 그때 수학 잘했던 친구들은 다 의대나 공대 진학해 나름대로 한 자리 차지하며 잘 살고 있다. 전문성이 지나쳤던 그 수학, 전문적인 길 가는 그 친구들에게나 필요했던 건 아닐까. 나 같은 평범한 사람 말고.
날 닮아선지 두 자녀들 다 수학엔 별로였다. 썩 못하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아이들은 수학공부 하기 싫으면 아빨 핑계 댔다. 난 아빠 닮아 수학 못해, 라면서. 그런 애들이 지금은 어른이 되어 나름 잘 살고 있다. 딸은 수학과 거의 상관없는 직장에서 재밌게 일 잘하고 산다. 작은애 아들은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대학원에 입학해 지금 열공 중이다. 걔 역시 수학과는 거의 상관없는 길을 가고 있는 셈이다.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가 있다. 모든 사람 각자는 다 괜찮은 구석들을 갖고 있음을 말해주고 싶어서다. 교회서도 보면 그렇다. 한 사람 한 사람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 괜찮은 사람들이다. 내 눈에도 그러한데 하나님 눈에는 어떠하랴. 정말 다들 귀히 보일 것이다. 난 요즘 목사로서 이런 생각을 종종 한다. 하나님이 귀히 보시는 그를 내가 뭐라고 업신여기며 함부로 대해?
이건 나의 직무유기야! 맞다. 하나님 눈에는 모두가 다 귀하다. 하나님은 수학 잘하고 못하고, 공부 잘하고 못하고, 돈 잘 벌고 못 벌고, 노래 잘하고 못하고, 이런 걸로 사람을 평가하시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도 주의해야 한다. 하나님 눈에 귀한 그들을 업신여기는 죄를 범치 않도록 말이다. 예수 믿는 것의 최고의 결과는 하나님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게 되는 것이기에 더더욱 그러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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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숭 목사/ 새크라멘토 크로스포인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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