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희를 넘긴지 오래지만 나는 아직 건강한 편이다. 나만이 아니다. 산행 동료들 중에 내 또래거나 나보다 연배가 위인 분들이 많은데 모두들 젊은이 못지않게 씽씽 오른다. ‘구구 팔팔 이삼사’는 따 놓은 당상 같다. 미국인들도 65세 이상 전체 은퇴자 중 41%가 나처럼 자신의 건강이 양호한 것으로 치부한다. 하지만 노인들 건강상황이 장밋빛만은 아니다.
연방 질병예방통제센터(CDC) 집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미국인 시니어들 중 절반인 49.7%가 관절염을 앓는다. 미국인들의 가장 큰 사망원인인 심장병은 65세 이상 남자의 37%, 여자의 26%를 괴롭히고, 두 번째 큰 사망원인인인 각종 암은 남자 28%, 여자 21%에 발병한다. 악성 기관지염이나 폐기종을 앓는 시니어들도 남자 10%, 여자 11%로 집계됐다.
가장 가공할 노인질병인 알츠하이머(악성치매)는 65세 이상 시니어 중 약 11%가 걸린다. 10명 중 1명꼴이 넘는다. 당뇨병은 4명 중 1명꼴인 25%다. 연간 250여만 명이 낙상해 응급실에 실려 온다. 남자 36.2%, 여자 40.7%가 비만이며, 15~20%가 우울증을 겪는다. 전체 65세 이상 시니어의 25%가 이빨이 모두 빠져 틀니나 임플랜트 치아에 의존한다.
인생 100세 시대를 맞아 노인들이 빠르게 늘어난다. 오는 2060년까지 미국 인구의 24%가 65세 이상 노인들로 채워진다. 4명 중 1명꼴이다. 2014년엔 14.5%였다. 노인인구가 늘어나면 노인병 환자들도 늘어난다. 문제는 이들의 치료 및 간병 비용이 서민들의 부담능력을 크게 벗어났는데도 개인적으로나 정부차원으로나 대책이 여전히 막연하다는 점이다.
노인 환자 중 약 70%가 장기간병을 요한다. 집에서 매주 44시간 간병인의 방문간호를 받는 노인들은 연평균 비용이 4만5,760달러이다. 양로원의 독방 비용은 연간 9만1,250달러, 합숙방은 8만300달러나 들지만 노인들을 위한 정부보험인 메디케어로 커버되지 않는다. 돈이 전혀 없는 노인들의 간병비용은 극빈자 정부보험인 메디케이드로 일부 커버된다.
미국인 55~64세 직장인들 중 60%가 은퇴(65세)에 대비해 평균 10만4,000달러의 은퇴구좌를 갖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이들 중 본인이나 배우자가 알츠하이머 또는 낙상사고로 양로원에 들어가 독방을 사용하면 은퇴구좌는 3년도 못가 바닥난다. 대다수 중산층 가구는 메디케이드를 신청하기엔 너무 부자이고 양로원 비용을 대기엔 너무 가난하다.
미국노인들도 한국노인들처럼 돈이 없다. 65세 이상 중 45%가 빈곤선 이하의 수입(주로 소셜시큐리티)으로 생활한다. 이들 중 상당수가 독거노인이어서 수입을 늘리지도 못한다. 한국의 독거노인은 2015년 138만명으로 집계됐다. 이들 중 절반 이상은 소득이 최저생계비 이하였다. 가난한 독거노인이 많아질수록 의료혜택의 사각지대도 늘어나게 마련이다.
의료복지 선진국으로 떠오른 한국에선 정부기관인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노령·장애·사망 등을 커버하는 노인 연금보험을 운영한다. 일본에선 모든 국민이 40세 때부터 정부에 건강보험료를 납부해 65세부터 노인질환 장기 간병혜택을 받는다. 미국도 비슷한 국민보험제도를 도입하려고 연방의회가 몇 번 시도했지만 의료업계와 보험업계의 입김에 밀려 좌절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현행 ‘오바마케어’를 폐지하고 ‘건강 저축구좌’로 대체하겠다고 공약했었다. 하지만 그가 제시한 연간 구좌보험료 2,000달러로 간병인 1년 비용(4만 달러)을 마련하려면 20년, 양로원 1년 독실 비용(9 만달러)을 마련하려면 45년이 걸린다. 이미 고령인 사람들과 매년 2,000달러 보험료를 낼 수 없는 극빈자들에겐 남의 얘기일 뿐이다.
미국인들이 자녀 한명을 17세까지 기르는 양육비는 연간평균 1만2,350~1만4,000달러이다. 하지만 자녀들이 노인이 된 부모의 간병에 들이는 비용은 그보다 6배 이상 많다. 노인들이 자녀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100세 직전 2~3일 앓은 후 죽으려면 스스로 건강을 지켜나가야 한다. 내가 20년 가까이 매주말 산에 오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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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춘 / 시애틀 지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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