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스턴이 물바다가 되고 난 후 오스틴에 사는 독자/지인이 이메일을 보내왔다. 휴스턴에 사는 지인이 걱정이 되어 지난 29일 카카오톡으로 안부를 물었더니 다행히 답신이 왔다고 했다 : “난리 난리였죠. 우리 집이 물이 넘친 바유 근처거든요. 현재는 무사히 탈출.”
하늘이 온통 폭포로 변한 듯 무섭게 쏟아지는 물 폭탄을 뚫고, 휘몰아치는 급류를 탈출해 그분은 같은 교회 교우의 집으로 피신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간신히 몸만 빠져나왔다는 그분이 이후 연락 두절이라며 오스틴의 지인은 걱정을 했다.
휴스턴이 난리가 났다. 이번 허리케인 하비가 몰고 온 대홍수는 폭우의 강도와 수해지역 규모로 볼 때 ‘연간 1,000분의 1’ 급이라고 한다. 일년을 단위로, 이런 강력한 허리케인이 닥칠 확률은 0.1%라는 것이다. 1,000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대재난 쯤 될 것 같다.
6일간의 폭우는 휴스턴 일대를 흙탕물의 망망대해로 만들었다. 보트가 교통수단이 되었으니 물 아래로 얼마나 많은 인명과 재산이 수장되었을 것인가.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은 공포와 불안, 모든 것을 잃어버린 슬픔과 비통함이 뒤섞인 아비규환의 장, 휴스턴은 지옥이었다.
그 캄캄한 절망의 시공은 그런데 암흑은 아니었다. 빛이 있었다. 자기 한몸 지키기도 버거운 상황에 남들을 돕겠다고 나선 선한 의지가 휴스턴 곳곳에서 빛을 발했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을 자기 집으로 맞아들이고, 보트며 카누며 물에 뜨는 것이면 무엇이든 들고 나와 사람들을 구조하며, 낯선 이재민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는 등 선행은 꼬리를 물고, 연쇄반응을 일으켰다.
가장 주목을 받은 인물은 짐 매킹베일이라는 가구점 주인이었다. 여러 개의 가구점을 운영하며 ‘매트레스 맥’으로 잘 알려진 그는 지난 27일 SNS에 메시지를 올렸다. 2개 가구점을 개방하니 쉴 곳과 먹을 것이 필요한 사람들은 누구든지 오라는 내용이었다. 그는 가구운송 트럭 10여대를 내보내 집이나 고속도로에서 발이 묶인 사람들을 구출하게 했고, 그렇게 모여든 수백명은 가구점의 편안한 침대와 카우치에서 안도했다.
재생에너지 기업 대표인 마이클 스켈리 부부는 허리케인이 닥치자 우선 병원과 대피소를 오가며 환자들을 대피시켰다. 대피소가 만원이 되는 걸 보며 부부는 멕시코 이민자 가족 5명을 자기 집으로 데려갔다. 그리고는 이재민을 집으로 받아들이자는 메시지를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 글을 본 동료가 이라크 태생 아버지와 네 아들을 자기 집으로 받아들였고, 스켈리의 아들은 장애인 여성과 노모를 손님으로 맞았다.
연줄 연줄로 이어지며 주민들은 자기 집으로 친구 가족을 맞아들이고, 친구의 친구의 친구들을 받아들이고,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을 친구로 맞아들였다. 그렇게 확산된 거대한 친구의 끈으로 휴스턴은 이번 재난을 견뎌냈다.
뉴스에서 구조에 나섰던 한 시민의 인터뷰를 들었다.
“지금은 흰색, 검은색, 갈색 … 그런 거 없어요. 누군가 도움이 필요하면 (피부색) 가리지 않고 모두 몰려갑니다. 사람을 살려야겠다는 마음뿐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피시키다가 목숨을 잃은 케이스도 있다. 다섯 청년이 고무보트로 구조에 나섰다가 급류에 휩쓸리면서 끊어진 고압선에 닿아 감전되었다. 두 명은 사망하고 한 명은 화상을 입고 두 명은 실종상태이다.
9.11 테러 때도, 지진이나 홍수 같은 자연재해 때도 선행은 줄을 이었다. 보상을 바라지 않는 순수한 사랑으로 사회는 하나가 되고 구성원들은 똘똘 뭉쳐 위대한 단합의 시간을 갖곤 했다. 가장 지옥 같은 상황에서 가장 맑은 사랑의 의지들이 솟는다. 지옥에서 천국이 만들어지는 아이러니이다.
평소에는 한치의 양보도 없는, 이기주의의 화신 같은 사람들이 재난 때면 어떻게 이렇게 이타주의자가 되는 걸까.
맹자는 측은지심을 말하고, 진화심리학자들은 인간 종의 생존비결을 말한다. 맹자에 의하면 인간은 본래 선해서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보면 저도 모르게 돕게 된다. 성선설이다. 진화의 맥락에서 보면 원시시대 힘없는 인간이 맹수들 속에서 살아남느라 서로 도운 것이 유전인자에 박혀, 위기 상황이면 본능처럼 나타난다.
세계 각 지역 신화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홍수 신화이다. 인간의 죄악상을 보다 못한 신이 홍수로 세상을 쓸어버리고, 극소수의 선한 사람들만 남겨 인류의 맥을 잇게 한다는 내용들이다.
재난 앞에서 빛을 발하는 선한 의지는 우리가 바로 그들의 후손이기 때문이 아닐까, 평소에는 드러나지 않다가도 재난 때면 보석처럼 드러나는 게 아닐까 상상해본다. 재난은 우리가 본래 선한 존재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계기인지도 모른다. 재난이 주는, 먹구름 이면의 햇살같은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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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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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총 8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물 한잔 먹고 거짓말이나 해라 ~~
인간이 선한지 악한지에 대해서 인간이 한행위를 바탕으로 분석한다는것은 해석의 오류가 있을수 있다고 본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것은 주어진 환경과 상황에 따라서 생존할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서 진화하였다고 본다. 어느시대에 규칙과 규범은 다른시대나 지역 그리고 속한 지역사회에 따라 다를수 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한것을 한다고 본다.
반잔의 물 컵을 놓고도 이것밖에 남지 않았다 와 아직 이만큼이나 남아있다는 말을 할 수 있다. 고사 대기만성에서 비유한 바, 도를 부지런히 실행하는 사람을 으뜸으로 칭하여, 제도보다 도의적인 면을 더욱 중요시 하였다. 피부색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도 생명이 먼저라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 언급한바, 그들은 도의적인 책임이 엄하게 있다 할것이다.
진정한 선을 행하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서 가리워져 있을 뿐이죠.
교육받은 분들이 더 교활하고 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