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9월6일 러시아를 방문한다. 블라디보스톡에서 한러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한국의 신임 대통령이 중국과 일본 방문 전에 러시아를 방문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파격이 나올 정도로 현재 한국 외교는 어렵다. 북한은 우리의 대화 요구는 묵살한 채 연일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 미국은 한국과 조율도 없이 군사행동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다. 중국과의 관계는 사드 문제로 껄끄럽다. 일본은 ‘위안부 합의’ 문제는 꺼내지도 말라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금번 한러 정상회담이 뭔가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 줄까? 러시아는 북한에 석유를 공급한다고 한다. 러시아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 숫자도 늘고 있다. 또한 러시아는 북한에 계속 인도적 지원을 제공해 왔다. 러시아는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다. 또한 러시아의 방대한 영토, 지리적 근접성, 풍부한 자원을 보면, 한러관계 발전의 잠재력도 풍부해 보인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하다. 지난 10여년 간 한러관계는 지지부진했다. 작년 한러 간 교역량은 134억달러로 한중간 교역량 2,114억달러의 6%에 불과하다. 한미 간 교역량의 12%, 한일 간 교역량의 19% 수준이다. 더욱이 10년 전의 151억달러에 비해 오히려 줄었다.
인적 교류 역시 초라하다. 2014년 비자면제 협정이 발효되었지만, 작년 러시아인 입국은 23만명에 불과하다. 비자 면제 덕에 다소 늘었지만, 여전히 조족지혈이다. 작년 한 해 중국에서 800만, 일본에서 230만, 미국에서는 87만명이 한국에 왔다.
더 우려되는 것은 한러간 신뢰가 바닥이라는 점이다. 러시아 외교관들은 사석에서 ‘북한 피로감’을 호소한다. “북한 말고는 할 얘기 없나요?” 러시아인들이 농담 삼아 하는 말이다. 한러간 회담만 열리면 한국 측은 대부분의 시간을 북한 문제에 소진한다. 러시아는 경제, 문화, 기타 안보 이슈도 논의하고 싶어 하지만, 별 진전은 없다. 스스로를 강대국이라 여기는 러시아로서 자존심에 상처를 입을 만 하다.
한러관계의 실질적 강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명박 정부는 남북과 러시아 가스관 사업을 제안했었다. 그러나 유야무야되었다. 박근혜 정부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외교 과제로 들고 나왔다. 남북과 러시아 간 물류 사업은 시험 운항을 여러 차례 할 정도로 진전이 되었다. 그러나 시간만 끌다가 물거품이 되었다. 두 번 연달아 러시아를 감질만 나게 하고는 용두사미가 되었다.
러시아는 이제 한국을 의심 어린 눈으로 보고 있다. 러시아는 한국이 뭔가 제안했다가 결국 흐지부지되는 이 반복적 패턴의 배후에 미국이 있다고 믿고 있다.현재 미러관계는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최악이다. 미국의 대러 제재에 러시아는 대규모 외교관 추방으로 맞불을 놓았다.
한국은 미국의 가장 중요한 동맹국중 하나이다. 한국의 외교관들은 한미 간에 한 치의 이견도 없다는 점을 자랑스레 강조하는 데 익숙하다. 그렇게 한미 간 찰떡 공조를 과시하다가 어느 날 비행기를 타고 모스크바에 가서 북한을 압박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런 요청을 받는 러시아인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러시아가 북한핵에 반대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에 대한 진단은 한국과 다르다. 러시아는 북한 핵개발이 미국의 위협 때문이라고 보며, 그 해법도 제재나 압박보다는 대화에 있다고 본다.
더욱이 러시아에게 북한핵 문제는 외교의 전부가 아니다. 러시아에게 더 중요한 것은 미국과의 전략적 대립이다. 러시아에게 북한은 좋은 대미 협상 카드이다. 우리가 요청한다고 러시아가 북한과의 교류의 끈을 놓을 리 없다.
지금 한러관계는 반전을 기대할 때가 아니라 기본으로 돌아가야 할 때이다. 거대 경협 사업으로 한러관계를 일거에 반전시키려는 기대를 버리고 작더라도 가능한 것부터 차곡차곡 성공 사례를 축적시켜 나가야 한다.
그리고 북핵 관련 러시아의 진지한 협력을 얻고 싶다면, 러시아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상대를 설득코자 한다면, 우선 상대방의 주장을 열린 자세로 경청해야 한다는 것은 협상의 기본이다.
새로운 돌파구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국익에 대한 철저한 계산 하에 외교의 기본을 바로 하고, 뚝심 있게 밀고 나가야 한다. 그러다 보면 반전의 기회는 절로 오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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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부승/간사이 외국어대 국제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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