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은 1910년 경남 의령에서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19살 때 일본 와세다 대학에 입학하지만 공부보다는 일본 공장들을 돌아보는데 더 취미를 부치다 2년만에 자퇴하고 귀국하고 만다.
돌아와서는 부잣집 한량답게 밤새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거나 노름에 빠져 달 그림자를 밟으며 집에 돌아오는 날이 부지기수였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평화롭게 잠들어 있는 세 아이의 모습을 보고 더 늦기 전에 허송 생활을 청산하기로 결심한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마산에서 차린 정미소였다. 사업이 날로 번창하자 이병철은 경남 일대의 땅을 모두 사들여 지역 최대의 갑부가 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1937년 중일전쟁이 터지며 은행은 모든 신규 대출을 중단하고 기존 대출 자금마저 회수한다. 설상가상으로 땅값이 폭락하자 이병철은 정미소를 처분해 간신히 채무는 청산하지만 빈털털이가 되고 만다.
이병철은 이에 굴하지 않고 1938년 대구에서 ‘삼성 상회’를 설립해 청과물과 어류 장사를 시작한다. 일본과 중국까지 수출하며 사업을 확장하던 순간 6.25 전쟁이 일어나 모든 것을 잃게 되지만 이병철은 1951년 부산에서 삼성 물산을 세워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다. 제일 제당과 제일 모직, 신세계 백화점, 그리고 삼성 전자에 이르기까지 그가 세운 기업들이 모두 한국 1등 회사로 성장한 것은 이런 시련을 통해 얻은 경험과 지혜의 산물일 것이다. 지금 삼성 전자 하나가 한국 증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2%에 달하고 매출은 한국 GDP의 20%에 육박한다. 그 결과 선대 이병철이 그랬던 것처럼 그 아들 이건희는 현재 한국 최대 부자다.
그러나 이런 사업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이병철 집안이 행복한 지는 의문이다. 1966년 사카린 밀수 사건이 터지면서 차남인 창희가 감옥에 갔고 장남인 맹희와도 틀어졌다. 그 덕에 삼남인 건희가 재산을 물려받았지만 형제끼리는 원수가 됐다. 창희는 91년 58세로 일찍 죽었고 맹희는 죽기 직전까지 동생 건희와 상속 재산을 놓고 싸움을 벌였고 건희는 뇌졸중으로 쓰러지기 전 친형을 “내놓은 자식”이라고 비난했다.
맹희의 자식 재현은 배임 횡령, 탈세 혐의로 징역을 살다 희귀병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점 등이 참작돼 겨우 사면됐으며 창희의 장남 재관은 분식 회계 혐의 등으로 구속됐고 차남 재찬은 사업 실패를 비관해 자살했다.
그리고 지난 주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돼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 수감돼 재판을 받던 건희의 외아들 재용마저 징역 5년형에 처해졌다. 건희는 식물 인간 상태고 딸 하나는 이혼 소송 중이며 또 하나는 자살했고 재용은 이미 이혼했다. 아마 개인적으로 이보다 더 불행한 가정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불행한 재벌은 삼성만이 아니다. 삼성에 이은 두번째 재벌 그룹인 현대도 오랜 전 ‘왕자의 난’을 겪었고 현대차의 정몽구 회장은 일찍이 감옥에 다녀왔다. SK그룹은 최태현, 최재현 형제가, 태광 그룹은 이선애, 이호진 모자가 함께 교도소 신세를 졌다. 한화 그룹의 김승연 회장은 3번이나 감옥에 다녀온 후 “내가 검찰과 인연이 많은가 보다”라는 소회를 남겼다 하고 한진은 조양호, 조현아 부녀가 구속의 아픔을 맛봤다. 감옥에 한번쯤 가보지 않은 재벌가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한국 드라마를 보면 재벌가 며느리와 사위가 되는 것이 모든 직장인의 로망으로 돼 있다.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이들은 죄가 있으니 감옥에 갔겠지만 한국 같은 곳에서 사업을 하면서 죄를 짓지 않기도 어렵다. 1985년 재계 7위이던 국제 그룹은 전두환에게 정치 자금을 덜 냈다는 이유로 하루 아침에 공중분해 됐다. 그 후 양정모 회장은 1997년과 2007년 재기의 몸부림을 쳤지만 IMF와 미 부동산발 세계 금융 위기가 터지며 끝내 꿈을 이루지 못하고 2009년 세상을 떴다.
한국의 권력자는 검찰과 국정원, 국세청, 감사원, 금융 감독원, 은행 등 금융권을 통제하면서 사실상 모든 기업에 대한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 한국에서 기업을 하면서 권력자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잘못은 단죄돼야 하지만 집권자가 기업의 생사를 좌우할 수 있는 체제가 유지되는 한 뇌물 수수와 비자금 스캔들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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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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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총 8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문재인 친구들이 한국일보에 많구만 ... 발갱이 좌파 시래기들이 넘쳐나 !
비극이라도 재벌한번 되봤으면 좋겠네요.
재벌의 의미가 뭔지 생각해보세요. 수단과 방법 안가리고 축척된 부를 대대로 물리면서 돈이 돈을 벌어서 돈이 없어지지 않는 무소불위의 그룹입니다. 비극? 글쎄요 댓가를 치를뿐이지요
맞아요, 남의말 하기는 쉬울지 모르지만, 대우에 김우중 의 전례까지 있으니.
대통령이 달라고 하는데 안줄 기업인이 몇이나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