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3년 프랑스 파리에서는 러시아의 젊은 작곡가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 1882~1971)의 세번째 발레음악 <봄의 제전>이 초연되고 있었다. 그의 <불새>와 <페트르슈카>가 입소문을 타자 사람들은 생동적인 리듬과 다채로운 관현악 음색을 가진 이 젊은 작곡가의 작품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풍년을 기원하는 이교도들의 제전에서 봄의 신을 위해 춤을 추던 젊은 여인을 제물로 바친다는 <봄의 제전>
줄거리는 다소 파격적이었다. 이것이 공격적인 불협화음과 리듬으로 표현되어 당시 사람들에게 더욱 충격을 안겼다. 결국 <봄의 제전>은 금방 막을 내린다. 흥미롭게도 1년 후 음악회용으로 다시 무대에 올려진 <봄의 제전>은 초연 때와는 상반된 호응을 얻는다. 어느새 대중들은 새롭게 열린 신음악의 탄생을 받아들이고 있던 것이다. 이렇게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던 <봄의 제전>은 스트라빈스키의 초기 작품으로 ‘원시주의(Primitivism)’라는 20세기 초반 음악사조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원시주의 음악은 격렬한 리듬과 음색을 사용한 야성적인 분위기가 특징이다. 또한 선율이나 화성보다는 리듬을 중요시하여 특정 리듬을 반복하거나 두 가지 리듬을 동시에 사용하는 폴리리듬(polyrhythm)이 주로 사용되었다.
원시주의 음악은 주류로 오래 머물지 못해 작품 수가 많지 않다. 스트라빈스키의 발레 <봄의 제전> 중 일부와 바르톡(Béla Bartók, 1881~1945)의 <알레그로 바르바로>가 대표적으로 꼽힐 뿐이다. 그러나 이것이 주는 이국적인 요소들, 민속 전통에 대한 관심으로 상투적인 면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도 등은 이후 작곡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한편 이미 19세기 말부터 흔들리기 시작한 음악의 조성체계는 결국 20세기에 붕괴되고 말았다. 쇤베르크(Arnold Schoenberg 1874~1951)는 평균율적으로 조율된 한 옥타브의 12개 음 중 7개의 음을 골라 음계를 이루고, 이것에 의한 화성을 기능적으로 분류하는 장단조 조성체계는 진부하다고 주장했다. 제2의 빈악파라고 불리는 쇤베르크와 그의 제자 베르크(Alban Berg, 1885~1935), 베베른(Anton Webern 1883~1945)을 중심으로 시작된 표현주의는 선율, 화성, 리듬 기능의 변화, 조성의 상실, 자유로운 박자개념, 끊임없는 불협화음의 사용으로 고전, 낭만의 전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했다. 표현주의 또한 인상주의와 마찬가지로 미술사조에서 유래한 말이다. 인상주의(Impressionism)가 안으로 받아들이는(im) 의미를 가진다면 표현주의(Expressionism)는 밖으로 표출한다
는(ex) 서로 대조적인 의미를 가진다. 즉 표현주의라는 용어 자체가 프랑스의 인상주의에 대한 반항인 것이다. 표현주의 음악은 인간이 겪는 심리적 갈등, 불안, 두려움 등 주로 어두운 면을 표현하였다. 쇤베르크는 사람들의 비난에 굴하지 않고 그만의 작곡 기법을 고수하였고, 1921년에는 새로운 작곡방식인 ‘12음기법’을 발표한다. 12개의 음들이 화성을 이루지 못하도록 배치하는 수학적 계산의 결과물이었다. 12음기법을 사용한 음악은 조성이 없어 ‘무조음악’이라고도 불린다. 쇤베르크의 작품은 대중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쇤베르크는 표현주의적인 면과 무조성을 동시에 가지면서도 대중의 호응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가볍고 풍자적인 작품을 구상한다. 이것이 <달에 홀린 피에로>이다. 하지만 소프라노와 악기들이 만들어내는 불협화음과 날카로운 리듬과 가락은 여전히 우리에게 불편하게 다가온다. 밤에 들으면 무섭기까지 하다. 개혁적인 시도로 그는 세상을 놀라게 했지만 음악의 전통기법을 훼손했다는 생각에 고통스러워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쇤베르크가 조성의 탈피를 보여주기 시작한 시점이 그의 사생활과 연관이 있다는 의견도 있다. 쇤베르크의 첫 무조 작품이 탄생했던 시기에 그의 아내가 쇤베르크를 떠나 그의 친구인 화가 리하르트 게스트를(Richard Gerstl 1883~1908)과 동거를 시작하였던 것이다. 쇤베르크는 자신의 괴로운 내적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음악을 택했고, 아내의 외도가 그의 음악의 조성의 붕괴를 더욱 촉진시켰을 것이라 추측된다.
작품에 대한 대중의 외면은 그 당시보다는 심하지 않지만 한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쇤베르크의 작품들을 연주회의 프로그램으로 찾아보기 힘든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우리는 낭만주의 음악에서 그 전 시대인 고전미를 발견하고, 고전 음악에서 바로크를 발견한다. 이처럼 쇤베르크의 무조음악도 언젠가는 세상에 공개될 새로운 음악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 흐름의 선두주자로 우리에게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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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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