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봄을 맞을 준비가 한창인 삼월인데, 로키 산에는 고요하게 포슬 눈이 내리고 있다. 활기찬 표정의 개들이 온 표면에 그려져 있는 미니 밴은 로키 산맥 정상을 향하여 가파른 눈길을 의연하게 올라가고 있다. 차가 목적지에 다다르자 수 십 마리의 울부짖음이 정적을 깨부순다. 그것은 거의 포효에 가깝다. 내가 탄 썰매를 조정해 줄 안내인 프란시스는 “눈 위를 달리기 시작하면 조용해 질 것”이라며 다소 당황하고 있는 우리들을 안심시킨다. 다섯 마리의 개가 일렬로 줄에 묶인 채 내가 타고 있는 썰매 앞에 정렬하고 서 있다. 몸을 눕히고 담요를 목까지 잡아당기니, 긴장감이 다소 녹는 것 같다.
개들은 뛰기 시작하자 프란시스의 말처럼 신기하게도 짖는 것을 멈춘다. 어느덧 눈발이 강하게 변해있다. 몇 천 미터 고지에서 내려다보는 로키의 설경은 가슴이 벅차 오르는 낭만이다. 다섯 마리의 개는 종류가 다를 뿐만 아니라 맡은 역할이 모두 다르다. 맨 앞에서 끄는 두 마리는 훈련을 잘 받은 모범생으로 길잡이를 하고, 맨 뒤에 있는 두 마리는 빨리 뛰지는 못하지만 속도를 조절해 준다고 안내인은 설명을 한다. 그 중에 내 눈에 띈 것은 한 가운데 있는 ‘수잔’이다. 이름으로 봐서 암캐인 모양이다. 그 이름을 들으면 ‘Black eyed Susan’ 이라는 고운 노란색 꽃이 떠올라서 그런지,수잔은 이름과 영 안 어울리게 생긴 시베리안 허스키이다. 수잔은 계속 딴 데를 쳐다보거나 옆 길로 빠져서 썰매를 자주 멈추게 한다. 한 번은 반대 방향으로 가는 바람에 프란시스는 내가 들어앉아 있는 적지 않은 무게의 썰매를 낑낑대며 반 바퀴나 돌려야 해서 나를 민망하게 했다. 그런데 수잔에게 자꾸 눈길이 간다. 나의 젊은 시절의 모습이 연상되었기 때문이다.
학교라는 공동체 안에서 모두 같이 움직여야 하는 것이 나는 숨이 막혔다. 삼 대가 같이 사는 대가족이라서 집에서도 혼자 있을 공간이나 시간을 좀처럼 가질 수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늘 혼자 있는 것이 좋았고, 그 속에서 이탈하고 싶은 때가 많았다. 속 마음은 그런데도, 외톨이가 되는 것이 두려워서 눈치보고 남에게 맞추면서 지내곤 했다. 그 뒤에 몰려오는 것은 허전함과 우울함이었다. 남을 배려하고 착하다는 달콤한 칭찬을 들었지만 자존감은 내 안에 웅크리고 숨어 있었다.
오십 줄에 들어서며 마음의 여유가 생기자, 달려오던 길을 멈추고 숨 고르기를 하듯 뒤를 돌아다 볼 기회가 있었다. 나의 존재는 튀김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나만의 색깔도 모양도 보이지 않았다. 남이 공격해도 속만 부글거리는 채, 말도 제대로 못하고 당하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얼마 전 ‘삶을 이끄는 것은 오로지 당신 자신’이라고 말하는 오프라 윈프리가 나를 흔들었다. 그녀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인생 법칙의 열 가지 중 첫 번째 항목을 보았을 때였다. 그것은 ‘남의 호감을 얻으려고 애쓰지 말라’ 라는 것이었다. 구태의연한 다른 사람들의 일반적인 철학과 달라서 호기심이 생겼고 동시에 마음이 뭉클했다.
무명의 지역 방송인이었던 그녀는 즉흥적인 순발력과 당당한 모습으로 인해서 여성앵커로 정상에 올라섰다. 그러나 인기가 마구 상승하던 시점에 어려움이 생겼다. 아홉 살 때 사촌오빠에게 성폭행을 당한 이후, 방황하며 살다가 미혼모가 되고, 그 아기마저 이 주일 만에 잃게 된 과거가 가까운 친척에 의해서 드러나게 되었다. 그러나 ‘오프라 윈프리쇼’ 에서 과거를 솔직하게 자백하는 모습에 관중은 환호하고, 그녀는 더욱 높은 인기를 얻게 되었다. 인종차별과 더불어, 불우한 가정 환경 속에서 남에게 맞추며 포장된 모습으로 살았던 시간을 얼마나 후회했으면 가장 강조하고 싶은 인생 철학으로 그것을 꼽았을까. 그 한 문장 속에 그녀의 회한이 들어 있는 것 같았다. 나의 반세기도 그 속에 담겨 있었다.
왕복 10킬로미터를 오가며 프란시스는 연신 수잔의 이름을 불러댄다. 그러나 별 상관하지 않고 무표정한 얼굴로 여전히 자기가 가고 싶은 대로 간다. 수잔의 나이는 모른다. 아마도 중년쯤 되어 나처럼 뒤를 돌아다 보고 나서 살고 싶은 방법을 터득한 것은 아닐까.
나는 예전에 살던 방법과는 달리 새로운 길을 가고 있는 중이다. 마음 속에 품은 생각을 분명하게 표현하며, 나의 색깔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면서 살아가는 연습을 하고 있다. 눌려있던 자존감이 조금씩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보약을 먹은 것처럼 삶에 윤기가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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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소감늘 저와 동행하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빈 노트와 내 안에 있는 나였습니다. 내 속에 있는 나에게 조곤조곤 이야기를 하며 놀았고 그것을 노트에 담기 시작했습니다. 비밀의 정원처럼 그 공간을 가꿔 나갔습니다. 그것은 외로움에서 비롯되었는데, 사실 그 시간은 외롭지가 않았고 오히려 살아갈 에너지를 얻곤 했습니다. 그런 연유로 ‘나의 고백’이기도 한 수필이라는 글 길로 자연스럽게 들어서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삶 속에 숨겨져 스쳐 지나갈 수 있는 것에서 의미를 찾아내어 진실하고 생명력이 있는 글을 쓰고 싶은 것이 저의 소망입니다. 캐나다 한인문인 협회의 수필분과 문우님들과 그 길을 같이 걸어가는 것이 참 행복합니다.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박덕규 수필가님과 미주 한국일보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새내기인 저에게 좋은 글 많이 쓰라는 격려라 여기고 정진해 나가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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