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들을 포함한 일반 미국인들이 책읽기를 기피하기 때문인지 법제도를 포함한 사회현상 전반에 무식하다는 것을 실감한 것은 필자가 교편을 잡았던 1969년-1984년 시절이었다. 매주 실시한 뉴스퀴즈에서 정답을 맞추는 비율이 30%정도였다.
예를 들면 대배심원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연방대법원의 배심원이라는 등 틀린 답들이 수두룩했었다. 배심원(Jury)이라는 말이 있으니 재판에 관계가 있을 것이고 “대”자가 들었으니 대법원에 속한 절차일 것이라는 엉터리 추론의 결과로 짐작이 되었다.
대배심원은 영국의 관습법에서 유래된 제도로 영·미 등 영국의 전통을 이어받은 나라들에서나 볼 수 있는 재판 이전의 조사 제도다. 재판에서 유죄냐 무죄냐를 평결하는 배심원이 6명에서 12명인데 비해 연방 대배심원은 16명에서 23명이기 때문에 “대”자가 붙은 것이다. 일반시민들 중에서 무작위로 뽑히는 대배심원의 역할은 검사의 지휘 아래 어떤 사람이 범법을 했다고 인정할 상당한 근거가 있는가를 판단하여 기소장을 발부하기도 하고 사건의 종결을 결론짓기도 한다.
대배심원의 심리는 공개재판과는 달리 철저한 비밀의 테두리 안에서 전개된다. 어떤 사건의 관련 혐의자나 증인이 대배심원의 소환장을 받고 법원의 대배심원실에 나타나면 무엇을 보게 되나? 대배심원들이 둘러 앉아 있을 것이고 검사와 속기사 그리고 법정 경비만 있지 딴사람은 하나도 없다. 방청석이라는 게 애당초 없고 신문기자들마저 근접할 수 없는 금단의 성역이다.
심지어는 자신의 변호사마저 들어올 수 없기에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기 전 물어볼 수도 없다. 답변을 잘못하면 위증죄로 처벌될 수 있고 문서제출을 요구받았을 때 그것들을 파기훼손해도 처벌될 수 있다. 빌 클린턴이 대통령 재임 시절 폴라 존스의 민사소송을 당하고 재판이전 증언 청취 때 모니카 르윈스키라는 백악관 인턴과 성관계를 맺은 바 없다고 단언한 것이 위증한 것으로 취급되어 그의 탄핵사유 중 하나였던 것을 보면 재판만이 아니라 법집행과정의 여러 절차에 있어서 거짓 대답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실감하게 된다.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가족, 대선 핵심 참모들이 전전긍긍할 만도 하다. 법무부와 FBI가 작년에 시작한 러시아 대선개입 및 트럼프 진영과의 조율여부에 대한 조사를 버지니아 북부 연방법원 관할 대배심원을 통해 증언 청취와 문서 수집해왔던 것을 이미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가 승계했음은 물론 2, 3주 전에는 워싱턴 DC 소재 연방법원 관할 아래 또 하나의 대배심원 조사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년 6월 그의 큰 아들 트럼프 2세가 러시아 정부 수집 힐러리 클린턴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러시아 여변호사와 트럼프 타워에서 회동한 것이 폭로되었을 때 전후의 백악관 대응도 조사 초점으로 등장한다는 보도도 있다. 그때 트럼프 2세의 해명(?)으로 그 회동이 러시아 아이들의 입양에 관한 것이었다는 발표문을 G20 회담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오던 트럼프가 구두로 불러서 작성했던 것이라는 추가 보도는 트럼프가 거짓말 해명을 일삼는다는 방증일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의 그 회동에 트럼프 쪽 참석자들은 트럼프 2세, 그의 매제 제리 쿠슈너 그리고 당시 트럼프 선거운동 총지휘자였던 폴 매나토프였다.
DC 연방 대배심원은 이미 그 세 사람들은 물론 그 회담에 대해 알고 있는 다른 백악관 직원들에게 문서제출 소환장을 발부한 상황이라니 증인들로서 대배심원 앞에 나타나 선서를 하고 증언을 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을 것이다.
특히 트럼프의 위기의식을 고조시키는 것으로는 뮬러 특별검사팀이 요구하는 문서들 중 트럼프의 세금 보고서들이나 기타 러시아의 올리가르히(푸틴과의 관계로 구소련의 기업들과 공장들을 떠맡아 억만장자가 된 부패세력)들과의 융자대출 흐름에 대한 서류들이 들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
반 트럼프 미디어로 유명한 MSNBC의 ‘더 라스트 워드’ 진행자 로렌스 오도넬의 예측대로 트럼프 자신이 대배심원에 소환되어 증언을 요구 받을 때, 불리한 증언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는 연방헌법 수정 제5조를 내세워 묵비권을 행사할지 궁금하기만 하다. 트럼프호의 침몰이 의외로 빨리 다가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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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선우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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