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민주당은 낙태문제로 도전에 직면했다. 근로계층을 옹호하는 민주당 소속의 로버트 케이시 펜실베이니아 주지사는 뉴욕 전당대회에서 연사로 나서길 원했다. 자신의 가톨릭 신앙을 공개적으로 알리고자 낙태에 반대하는 생명중시(pro-life) 강령을 민주당 정강에 포함시키고 싶어 했다. 물론 그는 자신의 제안이 기각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민주당은 케이시 주지사에게 아예 연설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그의 견해를 완전한 이단으로 간주한 것이다.
마크 릴라는 이달 후반에 나올 짧지만 탁월한 저서 ‘항구적 자유주의’(The Once and Future Liberal)에서 “민주당의 이 같은 태도는 가톨릭과 복음주의 계열의 지지자들에게 낙태에 동조하지 않는다면 당에서 더 이상 환영 받지 못할 것이라는 강력한 신호를 보냈다”고 말했다.
오늘날 민주당이 이민문제와 관련해 이와 동일한 잘못을 저지른 것이 아닌지 궁금하다. 보다 분명히 말하자면 이번 주 공화당이 새로 내놓은 법안은 악랄한 대중정책이자 비열한 상징주의였다.
그러나 문제는 그게 전부가 아니다. 릴라는 자신이 낙태를 절대적으로 지지하는 프로-초이스(pro-choice) 옹호론자라고 시인한다. 그러나 그는 전국 정당이라면 몇 가지 주요 쟁점에 대해 당론에 반대하는 사람들까지 수용할 만큼 큰 텐트를 쳐야 한다고 역설한다.
미국의 자유주의 내부에 더 큰 위기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 릴라의 견해다. 그에 따르면 공화당전국위원회(RNC) 홈페이지에는 당을 인도하는 폭넓은 원칙이 제시된 성명서가 있다. 이 성명서는 헌법으로 시작해 이민으로 끝난다.
이와 대조적으로 민주당전국위원회 홈페이지에는 ‘피플’(people)로 연결된 몇 개의 링크가 나열돼 있다. 링크에 클릭하면 여성, 히스패닉, 아메리칸 원주민, 흑인, 아시아계 미국인 등 각각의 인종 집단의 입맛에 맞춰 특별히 고안된 페이지로 넘어간다.
릴라는 레바논의 종교 및 인종 집단들 사이의 권력공유 시스템에 빗대어 “민주당전국위원회 홈페이지가 아니라 레바논 정부의 웹사이트에 실수로 잘못 들어온 게 아닌가하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고 꼬집는다. (민주당전국위원회의 현재 웹사이트는 이전에 비해 훨씬 분명하게 당의 정강을 밝히고 있다.).
릴라에 따르면 미국의 리버럴리즘은 서로 다른 두 개의 어젠다를 지녔다. 첫째는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어젠다로 모든 미국인들이 국가의 경제와 정치에 참여하도록 돕기 위한 집단적이며 전국적인 차원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심볼은 국가적 통합의 구속력을 확인하는 두 개의 악수하는 손이다.
반면 최근의 진보적 프로젝트는 일치가 아닌 차이를 강조하고 국가적 정체성이 아니라 하위국가적(sub-national) 정체성을 조장하고 고무하는데 중점을 둔다.
릴라는 “정체성 리버럴리즘(identity liberalism)의 되풀이 되는 이미지는 프리즘의 이미지”라며 “단 하나의 빛줄기를 굴절시켜 선거구민들의 칼러를 망라하는 무지개 색깔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민은 이를 핵심관심사항으로 여기는 유권자들에게 민주당이 국가적 합일과 정체성에 관심을 갖고 있음을 과시할 수 있는 완벽한 이슈다.
2016년 대선 직후 디모크러시 펀드가 실시한 유권자 서베이를 살펴보라. 먼저 2012년 선거에서 버락 오바마에게, 2016년 대선에서는 힐러리 클린턴에게 각각 표를 던진 유권자들을 2012년 선거에 오바마에게, 2016년에는 도널트 트럼프에게 찬성표를 던진 유권자들의 그룹과 비교해 보자. 이들 두 그룹 사이의 최대 정책 차이는 이민이었다. 다시 말해 이민문제 등 극소수의 핵심 이슈에 대한 의견차만 없었다면 민주당에게 호의적이었을 유권자들이 상당수에 달했다. 그러나 이민 문제로 “현실감을 잃은 정당”으로 찍힌 민주당은 이들의 이탈을 막지 못했다.
그들의 생각은 옳았다. 사실을 따져보자. 미국의 합법이민자는 지난 50년 사이에 극적으로 늘어났다. 1970년 미국 인구의 4.7%에 불과하던 외국 태생자 수가 지금은 13.4%로 급증했다. 이는 대단한 추이변화로 사회적으로 약간의 불안감을 초래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일자리 문제에 관한 우려만이 전부가 아니다. 하버드대 학자인 사무엘 헌팅턴은 2004년에 발표한 “우리는 누구인가?”(Who Are We?)라는 저서에서 1965년 이후 미국행 멕시코 이민의 규모, 속도와 집중화는 사상 유례가 없는 것으로 미국인들의 집단적 반발을 불러오기에 충분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건국이념 이상으로 미국이라는 국가를 강력하게 틀 지은 것은 문화였다며 “만약 17세기와 18세기에 영국의 신교도들이 아니라 프랑스, 스페인 혹은 포르투갈의 구교도들이 신대륙에 정착했다면 과연 미국은 오늘날의 미국이 되었을까” 질문한다.
자신의 질문에 스스로 “No”라고 답한 헌팅턴은 “만일 그랬다면 미국이 아니라 퀘백, 멕시코 혹은 브라질 같이 되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는 이민에 약간의 제한을 가하는 것에 찬성하지만 “이민자들이 미국에 동화(assimilation)하는데 더 큰 비중을 두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민주당은 이민 문제에 관해 중도적 입장을 취해야 한다. 트럼프의 극적인 해법에 대항하는 동시에 국가적 일치와 정체성을 강조하는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어쨌든 미국의 모토는 “다수로부터 하나”(out of many, one)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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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드 자카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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