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연방 소득세를 처음 징수한 사람은 에이브러험 링컨이다. 1861년 남북 전쟁이 터지자 그는 전비 마련을 위해 ‘조세법’을 제정했다. 대상은 800달러 이상을 버는 사람으로 세율은 3%였다. 이 법은 한시법이었기 때문에 전쟁이 끝난 뒤 폐기됐다.
1894년 연방 의회는 다시 4,000달러가 넘는 소득에 2%의 세금을 부과하는 법을 통과시켰으나 연방 대법원은 다음 해 사실상 이를 무효화하는 판결을 내린다. 연방 헌법이 주민 수에 비례하지 않은 소득세를 연방 정부가 걷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데 1894년 법은 이를 위반한 것으로 본 것이다.
미국민이 항구적으로 연방 개인 소득세를 내게 된 것은 1913년 수정 헌법 16조가 통과되면서부터다. 정부의 재정 수요를 충족하고 급속한 산업화로 인한 부의 편중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된 이 법은 연방 정부가 인구 비례와 관계 없이 개인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1913년 개인에게 부과된 소득 세율은 50만 달러(지금 돈으로 1,200만 달러) 이상 소득자에게 7%로 이 법의 적용을 받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야말로 초고소득자에 대한 과세였던 셈이다.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며 전비 마련 필요에 따라 세율은 77%로 크게 올라가지만 1918년 전쟁이 끝나면서 다시 하락, 1928년에는 24%까지 내려간다. 대공황과 제2차 대전이 터지면서 최고 세율은 다시 오르기 시작, 1939년에는 500만 달러 이상 소득에 75%, 1945년에는 20만 달러 이상 소득에 94%의 세금을 부과한다. 미국 역사상 최고치다.
1981년 레이건이 집권하면서 최고 세율은 8만6,000달러 이상 소득에 50%, 1988년에는 2만9,750달러 이상 소득에 28%로 낮아졌다. 그러던 것이 1992년 클린턴 등장과 함께 39.6%로 치솟았다가 2005년 아들 부시가 집권하면서 35%로 다시 낮아졌으나 2012년 오바마가 다시 39.6%로 높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13년 이래 미국의 세금 역사를 보면 세율은 시대에 따라 오르락 내리락 하지만 세금이 부과되는 대상자 수와 세수는 꾸준히 늘어왔음을 알 수 있다. 사회보장 제도의 확산과 함께 재정 수요가 증가 일로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초고소득층을 상대로 세금을 걷기 시작하지만 결국에 가 대부분의 세금을 부담하는 것은 중산층 이상이다. 정부가 중산층을 상대로 걷는 이유는 간단하다. “왜 은행을 터느냐”는 질문을 받고 “거기 돈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답했다는 전설적인 은행 강도 윌리 서튼 말대로 돈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거액을 버는 초고소득자는 몇명 안 된다. 이들에게만 돈을 거둬서는 필요한 재원 마련에 턱없이 부족하다.
요즘 한국에서는 증세 논쟁이 한창이다. 문재인 정부와 집권 여당은 연소득 5억 이상의 초고소득자와 초대기업에 대한 세금을 늘리겠다고 밝히고 중산층에 대한 증세는 절대 없다고 못 박았다. 그리고는 이 안이 국민 85%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초고소득자와 초대기업은 전체 인구의 1%가 안 된다. 남의 돈으로 인심 쓰는 정책에 14%가 반대했다는 게 놀랍다.
증세 대상을 초고소득자와 초대기업에 한정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약속은 지켜지지 못할 것이다. 문재인이 약속한 복지 예산 확충에 180조가 넘는 돈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는데 부자 증세로 걷어지는 돈은 4조에 불과하다. 복지 공약 대부분을 철회하든지 과세 대상자를 늘리든지 하는 것밖에 다른 방안은 없다. 표가 무서워 처음에는 부자한테만 물릴 것처럼 하다 나중에 눈치 봐 가며 더 돈을 걷겠다는 발상은 유치하다.
정부 여당이 부자 증세를 발표하자 야당인 자유 한국당은 서민 감세라며 담뱃값 인하를 들고 나왔다. 집권당 시절 자신들이 실행한 정책을 이제 야당이 됐다고 180도 태도를 돌변하는 모습은 참으로 우습다.
우스운 것은 지금 여당이 된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야당 시절 담뱃값 인상을 서민 증세라면서 반대했었다. 그러나 이제 와서 이를 철회하면 연 5조의 세수가 날아간다. 힘들게 추진하고 있는 부자 증세 효과가 그냥 사라지는 것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대중 영합주의 외에 아무런 소신도 철학도 찾아 보기 힘든 한국 정치판의 현실을 요즘 증세 감세 논쟁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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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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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하는 다수의 국민들이 점점 등을 돌릴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