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런던에서 만난 한 나이제리아인이 요즘 미국에 대한 세계의 대체적 반응을 딱 부러지게 전했다. 그는 결기와 조롱이 뒤섞인 어조로 “당신의 나라는 완전히 미쳤다”며 “내가 속한 아프리카도 정상은 아니지만 미국이 미치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더블린에서 만난 젊은 아일랜드 여성은 그보다 한 술 더 떴다. 컬럼비아대학을 졸업한 후 사회적 기업(social enterprise)을 창업하고 뉴욕에서 9년을 살았다는 그녀는 “유럽인으로서 내가 지닌 가치가 요즘 미국의 가치와 상당히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가정을 꾸리고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려면 유럽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자각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이전에도 한바탕 반미감정이 휩쓸고 지나간 적이 몇 차례 있었다. 그러나 이번은 그 때와 다르다. 첫째로 도널드 트럼프의 기이한 대선출마와 그의 대통령 당선에 뒤이은 극한 혼란 등 돌아가는 상황이 충격 그 자체다. 이번 주 골수 공화당원인 칼 로브가 대통령을 “앙심을 품은, 충동적이며 근시안적인 인물”로 매도한데 이어 제프 세션스 연방 법무장관을 트럼프가 공개적으로 폄하한데 대해 “불공정하고 부당하며 꼴사납고 어리석다”고 평가했을 정도로 혼란은 극에 달한 상태다.
빌 클린턴을 조사했던 특별검사 케네스 스타조차 트럼프가 세션스를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형편없이 대우했다고 비난하고 “지난 50년간 워싱턴 주변에서 내가 목격한 가장 대통령답지 못한 행동”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나 미국의 평판이 급락한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37개국을 대상으로 한 퓨 리서치센터의 서베이에 따르면 미국 없이도 잘 지낼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의 수가 전 세계적으로 크게 늘어났다. 트럼프 행정부하에서 미국은 두려움과 조롱의 대상 보다 훨씬 나쁜 그 무엇으로 전락했다. 미국은 점차 하찮은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퓨 리서치센터의 서베이서 드러난 가장 흥미로운 사실은 트럼프의 인기가 바닥이라는 점이다.(전체 응답자의 22%만이 그를 신뢰한다고 대답했는데 이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임기말 지지율인 64%를 크게 밑도는 수치다.)
물론 예상했던 결과다. 하지만 서베이는 미국의 대통령을 대체할 새로운 국제사회 지도자가 이미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국제문제에 제대로 대처한다는 평가를 받아 마땅한 지도자가 누구냐는 질문에 중국의 시진핑 주석과 블라드미르 푸틴 대통령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트럼프를 지목한 비율보다 약간 높았다. 그러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트럼프에 비해 2배 이상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다.(미국에서조차 트럼프보다 메르켈 총리를 신뢰한다는 대답이 더 많이 나왔다.) 서베이 결과는 트럼프에 관해 많은 것을 얘기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퓨 리서치센터 서베이는 메르켈의 찬란한 명성과 함께 1945년 전쟁에서 패한 이후 독일이 얼마나 먼 길을 걸어왔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트럼프는 푸틴에 대한 두려움이 해내지 못했던 유럽의 통합을 이루어냈다. 트럼프, 브렉시트와 대중주의 등의 도전에 직면하자 유럽대륙에서 희한한 일이 일어났다. 유럽인들 사이에 유럽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더욱 심도 깊은 유럽통합 계획이 추진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선거공약을 지켜 유럽을 상대로 보호주의 조치를 취할 경우 구대륙의 통합의지는 더욱 강화될 것이다. 메르켈과 엠마누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쌍끌이 지도력 아래서 유럽은 행동주의적인 글로벌 어젠다를 채택할 것이다. 유럽경제는 이미 반등했고 미국 경제에 버금가는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미국의 북쪽에 자리한 이웃국가인 캐나다의 외무장관은 최근 친밀하면서도 계산된 어조로 “미국은 국제사회 지도자로서의 부담을 짊어질 의향이 없다는 분명한 신호를 보냈으며 그 책임을 캐나다를 비롯, 룰에 기초한 국제 시스템, 자유무역과 인권을 지지하는 국가들에게 넘겼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남쪽 접경국인 멕시코는 트럼프 행정부와 협조하려던 모든 계획을 접었다. 멕시코에서 트럼프의 지지율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인 5%에 불과하다.
중국 지도부는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와 중앙아시아의 국가들과 협정을 맺는 등 전 세계의 무역과 투자를 촉진하는 수석 프로모터의 역할을 자처하며 처음부터 고립주의로 기운 트럼프의 수사와 대외정책을 적극 이용하기 시작했다.
퓨 리서치센터의 서베이에 따르면 유럽 10개 가운데 7개국은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 세계 최대 경제대국이라 믿는다.
가장 실망스러운 서베이 결과는 트럼프 보다 미국에 대한 호감도가 낮다는 사실이다. 오바마 행정부시절 말기에 서베이에 참여한 응답자들의 64%가 미국에 호감을 보였으나 현재의 호감도는 49%로 추락했다. 미국의 대외정책도 인기가 없다. 미국과 미국의 아이디어를 믿는 사람들의 수는 이전에 비해 형편없이 줄어들었다.
지난 2008년 나는 “흔들리는 세계의 축”(Post-American World)이라는 책을 썼다. 이 책은 미국의 몰락이 아니라 그 나머지 세계의 부상(the Rise of the Rest)에 관해 이야기 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편협성과 무능, 무질서로 인해 미국 이후의 세계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영글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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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드 자카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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