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신문에 부고(訃告/obituary)가 자주 눈에 보인다. 사람이 살다, 갈 때가 되면 가는 것이 순서이지만 부고를 볼 때마다 마음이 숙연해 짐은 왜일까. 금년 들어 잘 아는 분들이 벌써 몇 명이나 세상을 하직했다. 90이 넘어 간 분도 있고 50대 초에 간 분도 있고 70대에 간 분도 있다. 가는 시간은 순서가 정해져 있지 않다.
가는 사람은 간다만,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남는 것은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호흡이 끊어진 몸이 남는다. 사는 게 뭐 별거 아니다. 호흡지간에 목숨이 살아있나 살지 않았나가 달려있다. 무심으로 들 내쉬는 숨소리가 이렇게 중요하다. 숨 쉬는 운동, 즉 숨이 끝나는 순간 사람의 생명은 삶을 잃으며 다른 세상으로 떠나간다.
숨이 살아있지 않은 몸. 죽은 몸은 남아 장례를 치루고 장지, 즉 땅에 묻히게 된다. 또 어떤 몸은 불 속에 들어가 온 몸이 재로 남고 그 재는 산이나 강 혹은 나무 밑에 뿌려지기도 한다. 땅 속에 묻힌 몸은 세월이 흐르면 땅의 성분으로 바뀌어 땅과 혼합 돼 버린다. 산이나 강에 뿌려진 재는 산의 일부, 강의 일부가 돼버린다.
호흡이 끊어진 몸 외에도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 윤동주는 그의 시 <별 헤는 밤>에서 그리운 이름들을 나열한다.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佩), 경(鏡), 옥(玉) 이런 이국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쟘,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 빛이 내린 언덕 우에 내 이름자를 써보고, 흙으로 덮어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세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윤동주는 왜 자신의 이름을 부끄러워했을까. 잃어버린 조국을 되찾기에 자신은 너무나도 미약한 존재임을 깨달았기에 그랬을까. 그는 다시 말한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우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우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그래, 어떤 이름이든 이름은 자신을 나타낸다.
사람은 죽으면 자취와 냄새를 남긴다. 자취는 자국과도 같다. 발자국. 모래밭을 걸어가면 발을 내디딜 때마다 따라 남는 발자국. 생도 마찬가지다. 하루하루의 자국이 쌓여 평생을 이룬다. 이렇게 쌓인 자국은 죽은 다음에 과보(果報)와 업적을 평가받게 한다. 어제는 오늘의 자취요, 오늘은 내일의 자취와 자국이 된다.
사람은 죽은 다음에 냄새를 남긴다. 살아 향기를 풍긴 사람은 죽어도 향기를, 살아 악취를 풍긴 사람은 죽어도 악취를 풍긴다. 항일운동을 했다고 일본 경찰에 잡혀 옥중에서 27세에 요절한 윤동주. 그가 남긴 그의 생애와 시는 지금도 한반도와 한반도를 조국으로 삼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서 향기로 피어나고 있음에야.
특히 그의 서시(序詩)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며 살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준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사람은 죽어서 묘비명(墓碑銘/epitaph)을 남긴다. 몇 개를 본다. 버나드 쇼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프란시스 베이컨 “아는 것이 힘이다”. 에밀리 디킨슨 “돌아오라는 부름을 받았다”, 에디슨 “상상력, 큰 희망, 굳은 의지는 우리를 성공으로 이끌 것이다”. 헤밍웨이 “일어나지 못해 미안합니다”등등.
자신의 묘비명은 어떻게 쓰여 질까. 묘비명은 자신이 원해서 쓰이거나 가족이나 친지, 혹은 친구들이 써 주는 경우도 있다. 윤동주의 서시처럼 한 점 부끄럼 없이 죽어가는 모든 것을 사랑하며 살다 갈 수는 없는지. 부고(obituary)가 눈에 자주 보일수록 마음이 숙연해 짐은 언젠가는 그들을 따라 가야할 존재임에 그렇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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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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