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이문열씨의 평역 삼국지를 읽다가 중도하차한 적이 있었다. 평역이 재미없어서라기 보다는 조조를 새롭게 부각시킨 저자의 가치관이 어딘가 서먹했기 때문이다. 난세의 간웅… 조조에게도 장점이 있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냉혹한 역사관까지 들먹이며 따지는 삼국지가 다분히 승자독식내지는 1등위주의 한국적 사고의 고질병, 나름대로 (한국 독자층을 겨냥한)포퓰리즘이 깔려있는 듯 싶었다.
삼국지를 영어권에서는 ‘로맨스 오브 더 스리 킹덤’ (Romance of the three kingdom)이라 부른다. 말 그대로 三國志… 소설 내용을 역사의 하나로 받아들이고 있는 우리에 비해 영어권은 로맨스… 즉 구라(?)가 조금 섞여 있다고 보는 것 같다. 그런데 이구라에 현미경을 들이대면서 사실이니 아니니, 실은 누가 더 현명다느니 따지는 자세는 다소 열등의식이 지배된, 현실주의만 엿보일 뿐이다.
일본이 오래전부터 서구문명에 안달하여 오늘날 지들이 무슨 문명국 중에서도 1등국민인 듯 착각하며 살고 있지만 실은 그들이야말로 야만인들이었다. 오늘날의 삼국지는 자못 일본판으로 개편되어 가고 있는 듯 싶다.
정복(통일)이라는 현실 과제에만 집중했지 누가 (역사의 진정한) 영웅인지의 그 이면에 도사린 인간의 모습은 숨어있다. 얼마전 집 근처 프리마켓을 거닐다 가로로된 긴 족자에 그려진 삼국지 전투 장면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이름하여 ‘三英戰呂布’. 즉 여포를 둘러싸고 유비와 관우, 장비 등이 어울려 싸우는 장면이었다.
만화의 한 장면이라면 몰라도 집안에 걸 족자 그림으로서는 그리 대단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도원의 결의인가, 장난(?)같은 약속하나 때문에 삼위일체로 뭉친 의형제들의 의리와 의협심이 마치 낡아빠진… 그러나 무언가 삭막한 현실 속에서 먼 시간여행이라고나할까, 손때 묻은 이야기 속으로 오랫만에 망중한에 젖게하는, 사색의 시간을 갖게 하기도 하였다. 중국인들이 바라보는 삼국지의 각도는 조금 다른 것 같다. 물론 나관중이라는 저자의 배경이 명나라 때, 유교 중심적인 인물이라는 점을 간과할 수 없겠지만 중국인들이 숭배하는 인물이 관우이고 보면 삼국지를 바라보는 각도가 우리와는 조금 다름을 알 수 있다.
삼국지에서의 진정한 영웅은 과연 누구일까? 관우는 최고의 지혜의 소유자도 아니었고, 무예의 측면에서도 여포, 조자룡 등에 비해 한 수(?) 떨어지는 장수였다. 크게 기릴 만한 업적이나 공을 세운 인물도 아니다. 물론 관우는 주군과의 의리를 지킨 갈채받을 만한 행동을 한 것도 사실이나 그렇다고 공자 맹자처럼 덕이 뛰어난 인물도 아니었다.
그런데 왜 중국인들은 집집마다 관우상을 모셔놓고 관우를 숭배하고 있는 것일까? 어느 중국인 친구에게 물어보니 관우야말로 배신하지 않는 드문 인격자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신의를 지키는 인간, 그것이 과연 매우 현실적이라는 중국인들에게 그처럼 매력적인 것으로 비쳐지는 것이었을까? 그렇다면 (중국인들은) 너무 단순하다.(사실 장사치에게도 신의는 중요하긴 하지만) 이것은 오히려 영어권에서처럼, 로맨스의 측면으로 다가가는 것이 관우에 대한 더 현명한 접근 방법은 아닌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삼국지에서 등장하는 인물 중에 천재적인 지략과 용맹, 정치적인 영웅들에 더 집중적인 관심을 가지지만 사실 관우만큼 낭만적인사람은 없었다. 사지에서 주군에 대한 충심 하나로 유비의 두 부인을 구해낸 五關斬六將의 용맹과 의리… 조조의 애닲은 구애에도 끝까지 저버리지 아니한 신의… 풍채도 훌륭하고, 인격적인 무게에 있어서도 장비와는 달랐다.
그러나 과연 이것만 가지고서 관우가 죽어서 신이 될 만큼, 그렇게 숭배받을 만한 인격이라고 부를 수 있었을까? 관우시대에 살아보지 못했지만, 관우야 말로 어쩌면 인격의 아루라라고나할까, 후광에 비추는 어떤 감동이 가득한 인격은 아니었는지, 가정해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사람에게는 지위나 업적, 외모가 줄 수 없는 후광이라는 것이 있다. 말수 없고, 정의감에 넘치며 함부로 요동치 않는 인격의 무게. 조조조차 반하게 한 관우야 말로 어쩌면 그의 청룡도와 함께 주위를 숙연케하는 범상치 않는 그 무언가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관우가 죽었을때 (슬픔 속에)성급하게 복수전을 펼친 유비의 행동을 우리는 안타깝게 바라볼지 모르지만 유비에게 있어 관우는 바로 그런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대륙적인 기질이란 그러므로 그같은 비현실적인 관우… 여유와 낭만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
이정훈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총 1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오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