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의 새롭지 않은 새 메시지
지난 봄 서포크 대학 여론조사 결과는 ‘충격’이었다. 민주당에 대한 비호감도가 52%, 트럼프 대통령의 47%와 공화당의 48%보다 더 높았다. 2016년 대선 참패 후 막연히 느껴온 ‘민주당 지지 폭락’이 구체적 숫자의 ‘팩트’로 드러난 것이다. 그 후의 워싱턴포스트 조사에서도, 갤럽조사에서도 유권자들은 민주당을 외면했다.
그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 민주당이 무얼 대변하는지 모르겠다, 민주당은 우리와 우리의 절박한 당면문제를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 한다…
“유권자의 3분의 2가 민주당과 유대를 못 느낀다는 건 한마디로 재난이다. 심각한 경종이 되어야 한다. 민주당을 ‘자신들과는 다른 세계에 안주한 라떼 마시는 리무진 리버럴’로 인식하는 게 진짜 문제다”라고 당시 팀 라이언 민주당 하원의원은 각성을 촉구했었다.
트럼프 반대를 중심 메시지 삼아 저항에만 몰두하는 동안 허약한 야당으로 추락한 민주당은 지난 몇 개월에 걸쳐 “왜 우리를 싫어하는가”에 대한 치열한 내부 논쟁과 여론조사-포커스 그룹 분석을 거듭하며 타개책을 모색해 왔다.
그리고, 이번 주 초 그 결과를 담아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새 메시지를 발표했다. ‘더 나은 거래(A Better Deal)’로 명명된, 2018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중산층과 근로계층을 겨냥한 일련의 진보적 경제정책들이다. 민주당 지도부는 24일의 발표장소도 기득권층 워싱턴에서 70마일 떨어진 버지니아 주 공화우세 지역인 인구 4,000여명의 시골 마을 베리빌로 택하며, 이미지 쇄신을 위한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유감스럽게도 민주당의 ‘새로운 출발’은 별 관심을 끌지 못했다. 우선은 매일매일 전례 없는 선동적인 스토리를 쏟아내는 ‘리얼리티 TV쇼’ 행정부와의 뉴스 조명권 경쟁에서 완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 진보적인 주류 미디어의 반응마저 미지근한 것은 ‘새 메시지’가 전혀 새롭지 않아서 일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 1,000만 새 일자리 창출, 대기업의 독점 제한 규제강화, 처방약값 인하 등 대표 어젠다들은 상당부분 패배한 힐러리 클린턴의 대선공약과 유사하고 트럼프 대통령의 아직 지키지 못한 공약들도 포함되었다. 민주당에 대한 표밭의 무관심을 흔들어 깨울만한 혁신적인, 강력한 게임체인저가 보이지 않는다.
낯익고 밋밋하다 해서 별 볼일 없는 정책이란 것은 아니다. 낯익은 만큼 실용적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또 민주당만이 아니라 어느 정당에게도, 어느 정치가에게도 ‘소득 불균형’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는 경제문제에 혁신적 정답을 제시하는 것은 난제 중에 난제일 것이다.
평가도 비판과 지지로 엇갈린다. ‘더 나은 재료, 더 나은 피자’라는 파파존스 피자의 선전 문구를 빌렸느냐, “계속된 패배에서 얻은 결론이 리사이클이라니, 이게 최선이냐”는 공화당의 야유는 차치하더라도 민주당 내 반응도 환호와는 거리가 멀다.
대중주의 리버럴, 극좌를 경계하는 중도파, 사회정의 운동가 등으로 갈려 공화당 못지않게 심한 민주당의 내분이 이번 새 메시지 ‘더 나은 거래’를 계기로 해소될 수 있을까는 미지수라고 뉴욕타임스도 지적한다. 중도파는 극좌 이념 색채가 강하다고 우려하고 강경 리버럴은 민주당이 아직도 엘리트 큰손들과의 유대를 끊으려 하지 않는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민주당이 ‘더 나은 거래’를 통해 치솟는 처방약 값의 고삐를 잡아 중산층의 가계를 돕고, 종업원을 훈련교육 시키는 고용주에 대한 세제혜택으로 근로계층의 소득 증가를 지원하며, 항공사에서 케이블 컴퍼니에 이르기까지 대기업의 합병을 제한해 소비자 부담을 줄이고…한 단계씩 실행해 갈 수 있다면 ‘근로계층의 정당’이라는 예전의 정체성을 되찾을 수 있다는 조심스런 낙관론도 힘을 얻고 있다.
문제는 여론의 반응이다. 새 메시지를 발표하며 현재 당의 리더인 척 슈머 상원 민주당 대표는 말했다. “지지도 40%의 상대에게 패했다면 우린 거울을 들여다보며 물어야 한다 : 무엇을 잘못했는가? 우리의 첫 번째 잘못은 유권자들에게 우리가 무엇을 대변하는지를 정확히 알리지 않은 것이다. 너무 많은 미국민들이 민주당이 무엇을 추구하는지 모르고 있다…그러나 오늘 이후엔 달라질 것이다”
민주당은 ‘반 트럼프 저항’을 넘어, 고전하는 보통사람들의 삶을 돌볼 것을 약속하는 새 메시지를 들고 새 출발을 선언했다. 민주당의 새 메시지는 등 돌렸던 표밭을 설득할 수 있을까. 오바마에게서 트럼프로 옮겨갔던 600만표를 되찾아오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 민주당의 포퓰리즘은 트럼프의 포퓰리즘을 압도할 수 있을까. 그래서 2018년 중간선거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을까 - 아직은 어느 것 하나도 자신하기 힘들다.
민주당의 ‘베터 딜’ 명칭은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뉴딜’을 연상케 하지만 지금 민주당에게 더 시급한 것은 정책 자체보다는 루즈벨트의 노변정담 스타일이라고 볼티모어 선은 강조한다. 현재 대통령은 140자 트윗에 다 들어가지 않으면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공공정책의 구체적 사항에 대해 미국민들에게 부드럽게 확신시켜 줄 수 있는 리더의 설득력을 의미한다.
새롭진 않아도 뉴 메시지는 이제 마련되었다. 다음은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할 메신저다. 별로 익사이팅하지 못한, 그러나 실용적인 메시지를, 익사이팅하게 전달하면서 표밭을 사로잡을 ‘새로운 기수’를 민주당은 찾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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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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