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동안 ‘끔찍한 무역협정’이라고 비판해온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드디어 미국이 정식으로 문제 제기를 했다. 한미 정상회담 이후 12일 만에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한미 FTA ‘개정 및 수정(amendments and modifications)’을 위한 공동위원회 특별회의를 8월 중 워싱턴에서 갖자고 공식 요청한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상대국과의 흑자·적자 유무에 따라 무역협정의 유·불리를 판단하는 제로섬적 무역관을 갖고 있다. 필요하다면 안보와 통상을 연계하고 세계무역기구(WTO) 다자무역체제도 무시하면서 우월한 힘을 바탕으로 통상이익을 추구하겠다는 입장이다. 충분히 예상된 움직임이지만 미국의 한미 FTA 개정협의 요구가 당초 예상보다 빠르다는 점에서 국내적인 충격이 적지 않다.
트럼프 행정부의 한미 FTA 개정 요구의 진짜 목적은 한국에 대한 미국의 무역적자를 줄이자는 것이고 한미 FTA 개정은 이를 위한 압박수단이다. USTR는 보도자료에서 한미 FTA가 발효한 후 미국의 무역적자가 132억달러에서 276억달러로 두 배 증가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원인을 한미 FTA에서 찾고 있다. 공식서한에서도 한국과의 ‘상당한’ 무역 불균형에 대한 우려를 표시하고 한국과의 무역적자 축소가 한미 FTA 개정 협상의 핵심목표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미국의 공식 요구에 따라 양국 간 FTA 개정 논의가 실질적으로 시작됐다고 볼 수 있지만 공동위 특별회의 개최로 FTA 개정 협상이 곧바로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한미 FTA 협정 22조 2항은 매년 연례적으로 개최되는 FTA 공동위 이외에 한쪽이 요청하면 30일 이내에 특별회의를 개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개정 협상의 개시 여부는 공동위 특별회의에서 양국이 합의해야 한다. 합의한 경우에만 양국의 국내적 절차를 완료한 후에 비로소 개정 협상이 시작될 수 있다. 따라서 미국의 요구에 성실히 응하되 절차적 규정을 지키면서 미국의 FTA 개정 논리와 전략을 분석하고 차분히 대응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한국에 대한 미국의 무역적자가 한미 FTA 때문에 확대됐다는 논리를 제기할 것이 자명하나 한미 FTA가 양국 간 무역 불균형의 근본원인이 아니라는 우리의 대응논리는 명확하다. 미국이 문제 삼고 있는 자동차의 경우 한미 FTA 발효 이후 미국산 자동차 수입도 대폭 늘었지만 유럽산 자동차의 수입이 가장 많이 증가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공동위에서 양국 간 무역 불균형에 대한 미국의 주장을 차분히 경청하는 자세를 유지하되 필요하다면 실무차원에서 양국 간 공동조사를 제안하는 등 무역 불균형 발생 원인에 대한 우리 입장을 논리적이고 당당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의도하는 것은 대한 무역적자를 줄이는 것이기 때문에 개정 협상이 개시되면 매우 강한 통상압박이 예상된다. 필요하다면 회의장을 박차고 나갈 수 있는 정도의 강단을 가지고 협상 결렬도 감수한다는 자세로 한미 FTA 개정 협상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스티브 배넌 대통령 자문과 피터 나바로 국가무역위원장 등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들은 한미 FTA 폐기를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통상 문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 하원 세입세출위원회 위원장인 케빈 브래디 의원과 같이 한미 FTA를 지지하는 의원들도 의회 내에 상당수 존재한다. 또한 한미 FTA로 상당한 이익을 보는 기업들이 많기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가 이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한미 FTA를 손쉽게 폐기할 수는 없다. 만약 개정 협상이 결렬된다면 한미 FTA 폐기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향후 한미 FTA 개정이 본격화된다면 한미 간 무역통계와 같은 숫자에만 초점을 두는 미시적 접근도 중요하지만 외교·안보와의 관계도 고려하는 보다 거시적·전략적 대응논리도 필요하다. 또한 이를 계기로 우리의 요구사항들도 적극적으로 제기해 발효 5년이 지난 한미 FTA를 업그레이드하고 한미 간 새로운 ‘이익의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 아울러 하루빨리 정부조직법을 통과시켜 우리의 통상 컨트롤타워인 통상교섭본부가 효과적으로 미국의 통상압력에 대응하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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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기/국립외교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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