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한국의 선우예권이 반 클라이번 콩쿨에서 우승, 조성진에 이어 다시 한번 한인 음악도의 기개를 세계만방에 떨치는 쾌거를 전했다. 특히 이번 콩쿨은 한인 최초의 우승이라는 점에서 이를 바라보는 한인 음악팬들의 감회가 색다르다.
1958년 무명의 곱슬머리 클라이번이 차이코프스키 콩쿨에 출전, 유럽의 기라성같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우승했을 때의 감격… 이 때의 감격을 기리는 대회에서 한인 음악도가 우승했다는 점이 감격스럽지만 또 한편으로는, 반 클라이번이 지나친 영웅대접과 연주 여행 등으로 천재를 오래 꽃피우지 못하고 시들고 말았다는 점에서, 배울 점도 함께 시사하고 있다.
한인 음악계의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얼마전youtube를 통해 손열음이라는 피아니스트 연주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을 들은 적이 있었다. 이 곡은 작곡가 스스로도 ‘왜 이런곡을?’ 하며 질려했을만큼 살인적인 테크닉으로 유명한 곡인데 연주는 조금 어렵지만 곡상이 아름답고 환상적이어서 많은 연주자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곡이다.
같은 한국인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손열음의 연주는 오랫만에 감성에 공감을 주는 편안하고 좋은 연주였다. 그녀의 연주는 자신감에 넘쳤고, 열정이나 테크닉, 감성… 모든 면에 있어서 넘치거나 모자람이 없었다.(조성진이 섬세하고, 선우예권이 완벽하지만 어딘가 압도당해 있는 느낌이라면 손열음의 연주는 보다 열린 연주… 어딘가 빠져들게 하는 느낌이라고나할까) 이 곡은 꽤 오래전, 약관 14세의 서주희라는 피아니스트의 연주로도 감동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당시 뉴욕필이 주최한 콩쿨에서 우승한 서주희는 귀국 연주회에서 (이곡을 통해) 선세이셔널한 반응을 일으켰었다.
나이 14세의 연주라고는 믿기 어려울만큼 성숙했고 테크닉상에 있어서도 부족함이 없었다. 그녀의 연주는 10년 후,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에서 또 한번 마주칠 수 있었는데 , 그 당시 그녀는 더 이상 옛날의 서주희가 아니었다. 그녀의 연주가 결코 예전보다 뒤떨어졌거나 퇴색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미 신동으로서의 희소가치가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즉 자기만의 음악세계를 개척해 나가는데 실패한 경우였는데, 언론의 평도 좋지 않았고 그후 그녀의 존재는 점차 시들더니 결국 연주계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천재의 서글픈 결말이었다. 손열음의 연주가 갈채 받고 있는 것은 테크닉과 프로의식… 혹독한 가시밭에서 살아남은 놀라운 생존력 때문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음악은 테크닉이라고 하는 선악과가 있는 아이러니의 예술이다. 누구나 유혹되기 쉽고, 따먹기 마련이지만 결코 모자라도 넘쳐도 안 되는 독이기도 하다.
그럼에 있어 라흐마니노프의 협주곡 같은 작품(들)은 연주자들에게 있어 득 보다는 독성이 더 강한 악마의 선물같은 것이었는지도 몰랐다. 영화 샤인에서도 그 폐해를 파헤친 적이 있었지만, 미치지 않고서야 과연 어떻게 이런 곡을 연주할 수 있을까? 음악이 단순히 예술의 차원을 넘어 아찔한 곡예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였는데 라흐마니노프는 1909년 미국 연주 여행을 위해 이 곡을 작곡, 뉴욕에서 초연을 보았지만 마치 테크닉을 위해 만들어진 장식품 같다며 혹평을 동시에 받았다.
그러나 그 반응은 전곡(피아노 협주곡 2번)이 워낙 (대중적으로) 선세이셔널한 반응을 일으켰기 때문에 보인 일시적 현상이었을뿐이었다. 사실 작곡가 자신도 무언가 좀 더 보여주기 위해 일촉즉발 (긴장)의 자세로 작품에 임한 듯 싶었지만, 결과는 이곡을 헌정한 요제프 호프만 조차 손사래를 치며 사양할 정도로 힘든 작품으로 낙인 찍히게 되었다.
결국 작곡가 자신의 연주로 세상에 알려진 이 곡은 아쉬케나지가 다시 연주하여 대중에게 알려지기까지 무려 50년의 세월이 걸렸다고 한다. 어두우면서도 내면적인 극기, 때로는 폭풍우의 열정, 긴장감까지 넘치는 이곡은 추후 라흐마니노프 최고의 걸작으로 극찬 받게 되는데, 이제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모르고서는 음악의 미를 논할 수 없게 되었다.
손열음의 연주는 테크닉에 의해 상처받지 않은 드문 연주 중의 하나였다. 더욱이 20세가 되기까지 외국 유학을 하지 않은 순 국산품이라고하니, 그녀의 내면적 극기와 예술적 성취가 놀라울 뿐이다. 더욱이 이름조차 열음이라니…(본래 뜻은 열매를 맺음이라고 함) 아무쪼록 그녀의 음악이 오선지 위의 곡예… (위험한)줄타기에 그치지 않고 이름에 걸맞는, 프로의식의 허영을 뛰어 넘는 꽃으로 만개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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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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