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전철노선 가운데 한인 밀집지 플러싱을 연결해주는 7호선이 있다. 이 노선의 별명은 오리엔탈 특급이다. 한인을 비롯 중국계, 인도계, 동남아계 등 유독 아시안들이 다수 거주하는 지역을 통과하기 때문이다. 차가 없거나 초기에 이민 온 사람들의 고마운 발이다.
27년 전 뉴욕으로 이민 오면서 기자도 플러싱 집에서 뉴욕 한국일보가 있던 롱아일랜드시티까지 주 5일 꼬박 이 전철을 타고 출퇴근 했다. 자동차는 있었지만 미국 생활을 제대로 경험해 볼 심산이었다.
하지만 한국의 깔끔하고 깨끗한 지하철과 비교해 뉴욕 지하철에 대한 인상은 ‘꿀꿀함’ 자체였다. 한 세기 전에 지어졌다는 사실이 실감날 만큼 지하철 역사는 비좁고 더럽고 낙후됐으며 기차 안 역시 쾌적하지 않았는데 특히 여름철이나 우기에는 지독한 땀 냄새와 악취가 진동해 숨쉬기를 포기하고 싶을 정도였다.
이런 나쁜 기억과 세계에서 가장 지저분할 것이라고 불평했던 뉴욕 지하철이 그리워진 것은 1990년 LA로 이주하면서였다. 전철이 거미줄처럼 깔려 있어 맨해튼으로 브루클린으로 브롱스로 사방팔방 자동차 없이 거의 모든 지역을 쏘다닐 수 있었던 뉴욕과 달리 당시 LA의 지하철은 너무 보잘 것 없었다. 1990년 개통한 짧은 노선의 레드라인 지하철이 전부, 이보다 앞서 개통한 경전철 그린라인과 블루라인이 있었으나 한인타운에서 이용하기란 쉽지 않았다. RTD 라는 시내버스가 있었는데 어찌나 오래 걸리던지. 한인타운에서 밸리까지 가는데 한 시간이상 꼬박 버스 안에 갇혀 있던 후로는 아예 버스 탑승은 엄두를 내지 못했다.
LA에 둥지를 튼 지도 20여년이 지난 얼마 전에야 LA에서 처음 지하철을 타게 됐다. 올 가을 노스할리웃에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되는 아들이 지하철을 이용해 이동할 계획이어서 사전 답사 차 온 가족이 지하철 투어에 나선 것이다. 커뮤니티 사이트들을 서치하다 보니 LA 지하철의 대해 부정적 의견이 적지 않았고 일부는 무섭고 위험하다고 해서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했다.
이용구간은 LA 한인타운 집에서 가까운 퍼플라인의 베벌리 버몬트역에서 노스할리웃역까지의 왕복 코스. 티켓 자동발급기부터 승차구까지 모두 무인시스템으로 편리했으며 토요일 오후라 그런지 역사는 북적이지도 않았고 깔끔했다. 외국 관광객들과 말쑥한 복장의 백인 승객들도 눈에 자주 띄었다. 경비요원이 상주하는 것 같았으며 기차 내부의 상태도 양호한 편이다. 이 정도면 아들이 타도 ‘안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신속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편도 여덟 정거장의 거리는 10마일 가량인데 16분이 채 못 걸렸다. 같은 거리를 차로 가면 얼마나 걸릴까. 평일 오전 통학시간에 같은 구간을 주행해봤다. 한인타운에서 출발한 때는 오전 6시 50분쯤. 101 노스 프리웨이를 이용했는데 역 트래픽영향인지 차량 소통이 원활해 14분 만에 도착했다. 돌아오는 길은 상황이 달랐다. 방학 중인데도 프리웨이는 북새통, 가다 서다를 반복하다 보니 30분을 훌쩍 넘겨야했다. 아이가 하교하는 시간대의 복잡한 프리웨이를 생각하니 지하철을 타는 게 얼마나 시간 절약이 되는지 실감한 순간이었다.
지난 20여년간 LA의 전철은 놀라운 발전을 거듭했다. 뉴욕이나 서울에는 못 미치지만 생각보다 많은 지역을 구석구석을 연결해준다. 특히 유니버설 스튜디오, 할리웃 명성의 거리, 샌타모니카 비치, 엑스포지션 팍, 다운타운 중심가 등 많은 관광지와 명소를 통과하고 있어 LA를 찾은 외국인이나 관광객들에게 소중한 교통수단이다.
물론 LA의 전철 시스템은 아직 만족스럽지 못하고 개선해야 될 점도 적지 않다. 랜초쿠카몽가에 사는 한 한인은 주말에 철도를 이용해 LA 다운타운 유니온 역까지 가려다 너무 긴 배차 간격과 비싼 요금 등으로 포기했다는 글을 블로그에 올렸다. 그는 “버스와 기차를 기다리는 시간만으로 2시간 반 이상을 허비해야 하고 왕복요금이 20달러가 넘었다”며 “시간도 많이 걸리고 자동차 주행보다 돈이 더 드는데 누가 전철을 이용 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실제 노선 부족과 안전문제 등 여러 이유로 LA 전철의 교통 수송 분담률은 경쟁 도시에 비해 조족지혈 수준이다. 통계에 따르면 LA 메트로폴리탄 인구 1,300만명 중 평일에 전철을 이용하는 사람은 36만명에 불과한 반면 뉴욕 지역은 2,000만명 중 무려 500만명이 지하철을 탑승한다.
‘세계 최악 교통체증 도시’라는 악명을 가진 LA에서 전철 확충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다. 다행스럽게도 앞날은 밝은 편이다. 한인타운 출발 퍼플라인이 웨스트우드, 센추리시티까지 연장되는 공사가 진행 중인 것을 비롯 2019년 크랜셔 LAX라인 경전철 노선이 완공되면 한인타운에서도 편리하게 LA 공항까지 갈 수 있게 된다. 시나브로 LA의 지하철 시대가 본격화되는 것이다. 은퇴를 한 후에 LA의 지하철을 타고 나들이 나서는 재미도 쏠쏠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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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광 특집2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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