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동유럽에서는 어느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발트 3국이 수십년 간 염원해온 독립을 이루어낸 것이다.이 사건은 ‘민간인의 용기 있는 독립투쟁’의 역사로 전 세계인의 관심을 불러 모으면서 인간이 만든 띠 중 가장 긴, 이른바 ‘발트의 띠(발트의 길)’로 기네스북에 올라 있다.
유럽을 같이 나누어 갖자며 1939년 러시아와 독일 간에 비밀리 맺어진 독소 불가침 조약을 독일이 어기고 폴란드를 침공, 세계 제2차 대전이 발발하면서 발트 3국은 러시아와 독일의 침공을 번갈아 당하다가 2차대전 후 소련공화국에 귀속되고 만다. 이 바람에 발트 3국은 지도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 후 1989년, 발트 3국인들이 소련의 부당한 지배를 세계에 알리고 독립을 요구하기 위해 불가침 조약 50주년 기념일을 앞두고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의 계획대로 발트 3국에 이르는 600킬로미터 거리에 200만명이 손에 손을 잡고 인간 띠를 만들어 국가를 부르며 자유를 외쳤다.
이 상황이 전 세계로 중계되고 3국은 마침내 소련으로부터 독립을 인정받는다. 발트해 인간 띠는 자유와 독립을 부르짖기 위해 이루어진 띠지만 보통 ‘인간 띠’ 하면 우리 사회에서 재정적인 어려움에 처하거나 혹은 위기의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 상례이다.
한국의 경우 태안반도에 유출된 기름을 제거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인간 띠를 만들어 위기를 벗어난 사건도 그 한 예이다. 어떤 종류이건 인간의 띠는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개개인이 힘을 모으면 기적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우주 생명체의 일원으로서 누구든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을 살고 있다. 생명의 근본은 함께 어우러져 사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오늘의 나를 있게 한 모든 자연환경, 햇빛과 바람, 공기, 심지어 소소한 개울물까지도 귀하게 여기면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며 살고 있다.
더불어 사는 삶의 시작은 우선 나부터 행해져야 한다. 이러한 노력은 우리의 다음 세대에까지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지속해 나가야 결실을 맺을 수 있다. 각자가 사고의 전환을 통한 실천이 있을 때 내가 속한 이웃이나 사회가 살기 좋은 곳으로 변화될 수 있다.
이런 사고를 지닌 사람들이 많은 나라가 희망이 있는 나라이다. 최근 플로리다 주 해변에서 80여명의 피서객이 손에 손을 잡고 인간 띠를 만들어 조류에 휩쓸린 일가족 9명을 구조하는데 성공했다고 한다. 한 아들이 물놀이를 하다 사라진 걸 알고 그를 구하러 그의 한 가족이 뛰어들었으나 갑자기 조류가 빨라져 바다에 휩쓸리자 다른 일가족 7명도 이들을 구하러 보트를 타고 나갔다가 다 같이 바다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익사직전 상태에 이르렀다.
이를 목격한 피서객들이 한 명 두 명 모아져 만든 구조대가 어느새 80명, 이들로 이어진 인간 띠가 위험에 빠진 9명 일가족의 목숨을 무사히 구했다는 것이다. 인간의 끝없는 탐욕, 폭행과 살인, 미움과 시기가 난무하고 물질주의, 개인주의가 팽배한 이 사회에 아직도 따뜻함이 남아있고 희망이 있다는 증좌이다.
각박한 세상, 성공만을 중시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너무나 중요한 것들을 많이 놓치고 있다. 잘못돼가는 세태 속에서 한줄기 빛이 되는 성현의 말을 되새기며 이를 통해 자신의 행적을 되짚어 보고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를 성찰해보는 시간을 가져야 하겠다. 이제부터라도 무관심과 불신감이 팽배한 사회에서 이웃 간에 믿음과 사랑을 회복해 나가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내가 발하는 한줄기 따사로운 빛이 어지럽고 각박한 세상을 아름답고 밝게 비추는 이유다. 인간으로 내가 존재하는 이유는 근대 철학자 데카르트의 말처럼 생각할 줄 아는 지각이 있는 점에서다. 한서 사마천전에 나오는 구절을 곱씹으며 나의 한번 뿐인 삶과 죽음의 무게가 얼마나 될지 한번쯤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사람은 누구나 죽지만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죽음은 새털보다 가볍다. 이는 그 쓰인 방법이 모두 다른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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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뉴욕지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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