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첫해 어떤 성적표를 받을까. “아마도 D 마이너스정도”라고 버지니아 대학 밀러센터의 바바라 페리 소장은 평가한다. 전임자들보다 어려운 시기를 보내며 오늘로 첫 6개월을 마친 트럼프는 앞으로도 나아지지 않을 듯하다는 불길한 전망으로 들린다.
신임 대통령에겐 첫 100일이 아닌 “첫해가 성패를 좌우한다”라는 전제하에 새 대통령의 ‘첫해 프로젝트’라는 연구를 시작한 밀러센터에서 A 플러스를 받은 대통령은 뉴딜정책을 추진하며 대공황과 싸운 프랭클린 루즈벨트와 냉전시대의 폐막을 잘 마무리한 아버지 부시였다. 인기가 높았어도 케네디는 B 마이너스에 그쳤고 집권초기 논란과 혼돈에 휩싸였던 빌 클린턴은 C 마이너스를 받았다고 USA투데이는 전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트럼프에게 지금처럼 좋은 정치적 순간은 다시 오기 힘들다. 자신을 뽑아준 표밭의 지지는 여전히 굳건하며 자당인 공화당이 상하원을 장악하고 있다.
그 ‘좋은’ 첫 해가 절반 밖에 남지 않았는데 트럼프의 상황은 전혀 좋지가 않다. 사방이 먹구름이다. 닐 고서치 대법관 지명으로 ‘보수적 대법원’을 정착시킨 것 외에는 세제개혁, 국경장벽 건설, 대규모 기간시설 투자 등 주요공약 어느 것 하나 성사는커녕 숙성시켜놓은 것도 없다.
거기에 첫 6개월의 방점을 찍은 것이 최대공약 트럼프케어의 무산이다. 이번 주 표결에 부치려던 트럼프케어 상원안은 공화당 내 반대표로 이틀 전 무산되었으며, 당 지도부가 부랴부랴 오바마케어 폐기 우선안만 먼저 내주에 표결시키겠다는 방침을 세웠으나 이미 반대가 속출, 통과는 사실상 물 건너 간 듯 보인다.
그러나 어찌 보면 트럼프케어 무산은 대통령 자신보다는 공화당 의회의 문제라 할 수 있다. 오바마케어 폐지는 트럼프가 공화당의 ‘기수’가 되기 훨씬 전부터 공화당의 숙원 과제였고, 트럼프에게 헬스케어는 “좋게 말하면 깊이 개입하지 않은 사안, 나쁘게 말하면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트럼프에게 더 큰 문제는 ‘러시아’다. 사라졌나하면 되살아나고, 잠잠해졌나하면 다시 시끄러워지면서 발목을 잡는 러시아 스캔들의 늪이다.
러시아 내통설에 연루된 마이클 플린 안보보좌관의 사임으로 트럼프 행정부를 출범부터 휘청대게 한 러시아 스캔들은, 대통령의 플린 관련 수사중단 요구를 거부한 후 해고당했다는 제임스 코미 전 FBI 국장의 의회증언으로 또 한바탕 폭풍을 몰고 온 후, 독립 수사를 담당할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 지명으로 일단 소강상태에 접어드나 했다.
그런데 한 달이 채 안된 이달 초 트럼프는 다시 러시아의 늪에 빠지고 말았다. 독립기념일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워싱턴 정가에 대통령의 장남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가 제조한 고성능 러시아 폭탄이 터진 것이다.
2016년 6월9일 트럼프 주니어가 힐러리 클린턴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정보를 주겠다는 러시아 변호사와 뉴욕 트럼프 타워에서 회동했다는 뉴욕타임스 보도로 시작된 이 스캔들은 축소 해명과 은폐 거짓말에 따른 폭로, 폭로, 폭로가 이어지면서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었다.
주니어는 별 정보가 없었다며 회동의 의미를 축소하고 관련 이메일도 자진 공개했지만 당시 트럼프 캠페인의 최고위급인 사위 재러드 쿠슈너와 캠페인 본부장 폴 매너포트가 동석했다는 사실에 이어 전 소련 정보요원 출신의 로비스트에서 이 회동을 주선한 부동산 재벌 부자의 대리인까지 8명이 참석했다는 사실들이 차례차례 폭로되면서 의혹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매일매일 무언가 크고 작은 새로운 정황들이 들어나며 뉴스의 조명을 받고 있는 회동 스캔들의 쟁점은 세 가지다.
첫째, 트럼프 주니어의 행동은 위법인가. ‘힐러리에 타격 가할 정보’ 제안에 반색하며 참석한 회동에 대해 보수 측은 ‘부적절한’ 행동이긴 했어도 위법은 아니라고 강조하고, 진보 일부에선 적대국의 대선 개입 시도를 방조한 ‘반역’이라고까지 주장한다.
그동안 트럼프와 백악관은 트럼프 캠페인의 러시아 ‘공모’ 의혹이 불거질 때마다 증거도 없는 ‘가짜뉴스’라고 거세게 비판해 왔다. 그러나 러시아의 정보 제안에 반색하며 달려 나간 이번 회동 스캔들로 최소한 공모를 시도했다는 증거는 나온 셈이다.
연방선거법은 미 정치 캠페인에 영향 주려는 목적을 가진 외국인으로부터 헌금 또는 ‘가치 있는 것’을 청하거나 받는 것을 위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정보’가 이에 해당하는 지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엇갈리지만 ‘반역’은 아니라는 것이 대다수의 해석이다.
둘째, 대통령은 이 회동에 대해 언제, 무엇을, 어떻게 알았나. (매너포트와 쿠슈너가 아무 보고도 안 했을까…)
셋째, 최소한 8명이 모인 그 회동에서 진짜 무엇이 논의되었는가.
이 질문들의 답을 찾기 위해 트럼프의 측근들은 줄줄이 상하원 청문회의 증언대에 세워질 것이며 백악관은 궁색한 해명에 진땀을 흘릴 것이다. 그리고 트럼프의 참모들이 기소될 것인지, 된다면 누가 기소될 것인지에 대한 뮬러 특검의 결정이 나올 때까지 트럼프 행정부의 어젠다들은 ‘러시아 블랙홀’에 빨려 들어갈 것이다.
트럼프의 ‘러시아’ 못지않게 강력한 스캔들에 휘말렸던 빌 클린턴이나 로널드 레이건이 임기를 성공적으로 끝낼 수 있었던 것은 개인 스캔들을 처리하며 다른 한편으로 정책시행에 집중하는, 통치와 논쟁을 분리하는 균형을 잡았기 때문으로 평가된다.
대통령 자신의 호언장담 트윗 만 쏟아져 나올 뿐 백악관의 이렇다 할 스캔들 대응도, 체계적 입법 추진도 보이지 않는 트럼프 행정부의 ‘전략’이 무엇인지 정말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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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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