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한국에 대통령을 뺨친 ‘소통령’이 있었다.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58)씨다. 그는 1990년대 후반 아버지 그늘에서 정치, 경제, 정부인사 등 국정전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특히 IMF 외환파동의 신호탄으로 치부되는 한보그룹 부정대출 사건의 ‘몸통’으로 기소돼 2년 실형을 선고받았다. 현재 그는 더불어 민주당에 몸담고 있다.
김영삼의 뒤를 이은 고 김대중 대통령에겐 소통령 아들이 없었지만 그 역시 정권 말기에 아들들 때문에 스타일을 구겼다. 홍일-홍업-홍걸 등 ‘홍삼 트리오’로 불린 세 아들 중 홍업과 홍걸은 기업체로부터 이권청탁 대가로 수십억원 대의 뇌물을 받아 아버지 재임 중에 구속됐고, 1억5,000만원의 뇌물을 받은 장남 홍일은 정권이 바뀐 뒤 불구속 기소됐다.
세계최고 민주국가를 자처하는 미국이 요즘 ‘소통령’ 신드롬으로 시끄럽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이름이 똑같은 그의 장남 도널드 트럼프 2세가 장본인이다. 미국언론은 그를 ‘미니 도널드’ 또는 ‘소 돈(Little Don)’으로 부른다. 바로 그가 작년 대선 때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를 흠집 내려고 러시아 측과 내통한 내부 서클의 ‘몸통’으로 드러났다.
그동안 트럼프 캠프의 러시아 내통 의혹을 극구 부인해온 미니 도널드는 뉴욕타임스가 지난 9일 반증자료를 확보했다고 보도하자 다음날 서둘러 성명을 내고 이를 시인했다. 그는 작년 6월9일 맨해튼의 트럼프타워에서 러시아정부와 연줄이 있다는 나탈리아 베셀니츠카야 변호사와 만났다고 밝히고 그간 러시아 측과 주고받은 이메일 내용을 모두 공개했다.
러시아 측은 이 이메일에서 “당신 아버지의 캠페인에 매우 유용할 민감한 고급정보를 주겠다. 이 정보는 트럼프 후보를 위한 러시아 및 러시아 정부 측 지원의 일부”라고 밝혔다. 미니 도널드는 즉각 “좋다(I love it)”고 응답했다. 그는 클린턴 후보가 국무장관 재직시절 해킹당한 것으로 알려진 3만여건의 이메일 비밀문건을 넘겨받을 것으로 기대했다.
미니 도널드는 베셀니츠카야와의 회동에서 소득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녀가 생뚱맞게 러시아 고아의 미국입양 문제를 꺼냈다고 했다. 하지만 언론은 그 회동에 트럼프 사위인 자렛 쿠쉬너(현재 백악관 특별고문)와 폴 매너포드 당시 선대본부장이 합석해 러시아 측으로부터 ‘장물 이메일’을 입수하려 했다며 이는 트럼프 캠프의 범법행위라고 꼬집었다.
트럼프는 이 회동을 전혀 몰랐다고 잡아뗐다. 하지만 그는 회동 이틀 전 “머지않아 클린턴의 결정적 비리를 공개하겠다”고 호언했었다. 더구나 그는 “내 아들은 고상한 사람”이라며 이메일 공개는 그의 ‘투명성’을 입증한다고 떠벌였다. 상대방의 비리를 캐는 것은 보편적 선거운동이라며 “남들도 그런 회동을 가졌을 것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도 했다.
아들의 잘못을 감싸는 트럼프의 언행은 우리 정서에 맞지 않는다. 김영삼도, 김대중도 국민에게 아들의 비행을 사과했다. 트럼프는 한술 더 떠서 딸과 사위를 백악관 고문으로 앉히는 등 족벌정치까지 서슴없이 자행했다. 장남인데도 관직을 얻지 못한 미니 도널드가 한 건 크게 올려 아버지의 신임을 받으려고 러시아 측과 내통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트럼프는 후보시절부터 거짓말을 일삼아 자질을 의심받았다. 뉴욕타임스는 그가 거짓말 한 날 수가 취임 후 첫 40일간은 매일, 그 이후 6월말까지 74일이나 된다며 역대 대통령 중 최악의 거짓말쟁이라고 꼬집었다. 하지만 트럼프는 이 같은 타임스 기사는 모두 ‘가짜 뉴스’라며 “그 때문에 타임스가 독자들에게 사과했다”고 주장했다. 이 역시 거짓말이다.
미니 도널드의 비행이 공개된 다음날 트럼프는 취임 5개월여만에 캘리포니아 출신 민주당 연방 하원의원으로부터 첫 탄핵소추안을 제기 당했다. 물론 제스처일 뿐이지만 전혀 뜻밖은 아니다. 그에겐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전통적 지도자 도덕률이 결여돼 있다. 수신제가를 빼고 치국평천하부터 노리는 김정은도 같은 부류의 지도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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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춘/시애틀지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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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한국의 소통령들이 부정한 돈벌이를하였을 망정, 미국의 '소도널드' 처럼 적과의 동침은 하지않었다. 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