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샌프란시스코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겨울이 막 끝나갈 무렵이었다. 비자 심사를 하던 미국 영사의 말대로, 샌프란시스코는 아름다운 도시였다. 비가 조금 오락가락했지만 다운타운은 깔끔했고 4, 50층 높이의 빌딩 숲은 한국에선 엿볼 수 없었던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서로를 과시하듯 미의 진수를 뽐내고 있었다.
땡!땡! 차종을 울리며 달리는 케이블카는 이 도시의 멋을 상징하고 있었고 매연으로 얼룩진 서울 거리와는 다르게 도시의 공기도 맑고 사람들의 표정도 밝았다. 정착을 서두르며 정신이 없었던 우리에게 봄은 더욱 화려한 빛으로, 새로운 삶을 개척하려는 이방인을 위한 환영만찬을 여는 듯 싶었다.
레드우드 숲이 우거진 금문공원은 분홍빛 수국이 만발했고 보트가 떠다니는 스토우 레이크에는 아열대 기후의 각종 기화요초들이 마치 꿈의 낙원이라도 당도한 듯 한 폭의 그림을 연출하고 있었다. 도시의 어느 곳을 가든, 그로서리의 샤핑몰에선 풍요로움이 넘쳤고 붕!붕! … 거리를 미끄러져 가는 8기통 미제차들에서는 기름진 삶의 권태마저 느껴지는 그런 여유로움이 가득 쏟아져 나왔다.
거리는 곳곳마다 boulevard(가로수길)가 아름다웠는데 특히 점심때가 되면 거리를 활보하는 것을 좋아했다. 정오의 햇살을 가득 반사하고 있는 유럽풍의 집들도 보기 좋았지만 식당에서 풍기는 음식 냄새들이 어딘지 이국적인 후각을 자극하며 허기진 배를 진정시켜 주곤 했기 때문이다.
그릴에서 구워낸 햄버거 맛은 늘 고소하고 기름진 추억으로 남아있는데, 특히 치즈를 살짝 얹은 버거를 막 튀겨 낸 감자튀김과 함께 먹는 맛이란. 물론 햄버거에 대한 고정관념이라고나할까, 나름대로 그리움의 철학(?)이 있는 것은 이민초기 햄버거 샵을 하던 이모네 가게에서 먹던 햄버거 맛 때문이기도 하다.
스페니쉬 풍의 서부 활극에 나오는 그런 분위기로 꾸며진 이모네 가게는 그 가게만의 고유한 햄버거로 유명했는데 조금 달달하면서도 톡 쏘는 듯한 버거 소스가 일품이었다. 약간 타들어갈듯말듯 고소하게구워진 고기… 손가락만한 굵기로 노르스름하게 튀겨진 감자튀김의 맛이란. 물론 지금이야 그 어느 곳에 가도 그런 클래식한 버거맛을 맛 보기 힘들어졌지만.
지난 주 한동안 영화 ‘더티 하리’ 시리즈를 보면서 그 때 그 거리… 그 정경들을 추억해 보았다. 물론 추억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서먹하고 그리움이라고하기에도 어딘지 치즈 냄새처럼 느끼했던 그 때 그 시절… 꿈은 가을처럼 푸르르기만했지 현실은 왠지 잘 소화될 것 같지 않았던, 그런 버거와의 첫 만남같은 것이었다고나할까.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 ‘더티 하리’ 시리즈는 다섯 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모두 샌프란시스코를 배경으로 찍었다. 금문교와 베이브리지— 차이나타운— 모두 낯익은 정경들이지만 특히 버거 가게에서의 액션신 등은 그 때 그 시절로 돌아가게 하곤했다. 당시 나는 어느 식당에서 치즈버거를 주문한 적이 있었는데 뚱뚱하고 나이 지긋해보이는 웨이츄레스가 다소 이상한 표정으로 주문이 확실하냐는 뜻의 제스쳐를 취했다.
빌어먹을… ‘치즈 버거’ 발음이 그렇게 이상하냐고 얼굴이 벌겋게 되어 두 세번이나 외쳐댔는데 음식이 배달되자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글쎄 그 망할놈의 아줌마가 치즈 버거 대신 난생보다처음인 이상한 음식을 떡하니 테이블 위에 펼쳐놓는 것이었다. 무슨 묽은 대변 같기도 하고, 냄새도 고약한 이 괴상하게 생긴 소스의 정체는 무엇일꼬? 먹을 수도 없었고, 안 먹을 수도 없었던 당시의 당혹스러움이란.
꿈을 위하여… 아니 어쩌면 지금껏 소화되지 않고 있는 생소한 이국에서의 삶이 그렇게 이어져왔다. 혹독했다고는 보기 힘들지만 그렇다고 꿈처럼 화려한 것도 아니었다. 마치 그 때의 칠리 버거같았다고나할까. 시각적인 아름다움에 묻혀 살면서 꿈은 언제나 어긋난 착각이기만 했었던 같다. 그러나 사람이 살다보면 풍광의 다름없음처럼 살아가는 고생의 맛도 차이일 뿐,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 칠리 버거의 맛… 지금 생각해보면 꽤 괜찮았던 것 같다.
<
이정훈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