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2절에 앉은뱅이 거지는 날 때부터 장애인이라 혼자 오지 못하고 항상 남에 의해 옮겨져 왔다. 희랍어로 ebastageto 는 중간태(middle voice)로 " had himself carried"란 뜻이다. 사람들에 의해 실려 왔다는 말이다.
"미문"이란 아름다운 문이다. 황금과 은으로 씌워진 대리석 문이다. 요세프의 증언으로 말하면 고린도의 구리로 장식되었다고도 한다. 이 문은 Nicanor문이라고도 하는데, 이방인의 뜰에서 여인들의 뜰로 가는 문으로Manchester University의 F. F. Bruce교수는 주해한다.
이스라엘성전은 제일 안 쪽에 대제사장만 들어가는 지성소가 있고, 그 다음에 제사장의 뜰이 있고, 그 다음에 유대인의 뜰이 있고, 그 다음 바깥 쪽에 여인의 뜰이 있고, 제일 바깥 쪽에 이방인의 뜰이 있다. 그러니까 거꾸로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제일 먼저 만나는 문이란 뜻이다. 제일 소외 당한 이방인의 뜰에서 그 다음으로 소외 당한 여인의 뜰로 들어가는 문이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유대인남자이지만 유대인남자의 뜰에 못 들어가고 여인 뜰과 이방인의 뜰에서 구걸한 것이다. 유대인이었지만 유대남자의 취급을 못 당하고 유대여자와 이방인 취급을 당하는 곳에서 구걸하였던 것이다.
그 인생은 한국말로 말하면 억장이 무너지는 인생이다. 그런데 거기서 치유와 해방을 얻어 다시 유대인남자의 뜰로 들어 갈 수 있었으니 굉장한 한 풀이다. 4절에 베드로와 요한은 서로 주목하면서(atenisas), 긴장해서 주시하면서, 한 마음이 되었다. 두 사람이 앉은뱅이의 모습에 "사로잡혔다"(arrested)고 표현하고 있다.
베드로와 요한은 항상 동행하면서 동역할 때 아름다운 역사가 일어났다. 이 앉은뱅이를 향한 불타는 사랑의 마음이 서로 통하였다. "우리를 보라"(blepon eis hemas)고 할 때 앉은뱅이와 베드로와 요한의 마음과 믿음과 사랑이 하나되는 위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우리 주님은 항상 우리의 기대보다 더 좋은 선물을 갖고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신다. 앉은뱅이 거지는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구걸하였으나, 주님은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할 뿐 아니라, 영생과 구원의 은혜도 주시고, 평생 구원의 소식을 전할 소명도 주시었다.
행 3: 6절에 "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라고 외쳤다. 은과 금으로 장식된 미문을 보면서 은과 금을 언급하는 것은 실감나는 표현이다.
은과 금보다 보다 더 귀한 것을 베드로와 요한은 갖고 있었는데, 그것은 은혜였다. 교황 인노센트2세(Innocent II)는 대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에게 말하기를 "교회는 더 이상 은과 금이 없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그만큼 중세 교황과 중세가톨릭교회가 부유해졌음을 말한다.
그랬더니 토마스 아퀴나스가 말하기를 "교회는 더 이상 일어나 걸으라고 말해서도 안 됩니다."라고 답변하였다는 것이다. 부유해진 교회는 더 이상 기적과 은혜를 끼칠 능력을 상실하였다는 의미이다.
오늘날의 유럽교회들이나 미국교회들이 자본주의시대에 부유해짐으로 교회가 점점 문닫고 교인들이 줄어드는 현상이 생긴 것과 같다. 한국교회도 점점 자본주의화하고, 부유해짐으로 개혁과 갱신의 능력을 상실해 가고 있다. 자본주의가 교회와 교인들을 감소시키고 있다. 부유해질수록 더 기도하고, 더 회개하며, 더 자신을 비우는 경건과 사랑의 영성 수련에 힘쓰므로 영성을 유지하여야 한다.
그리고 베드로가 그에게 명하기를 "나사렛 예수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외쳤다. 초대교회를 부흥시켜야 하겠다는 주님의 간절한 열심과 앉은뱅이 거지의 간절한 기다림이 만나는 절호의 삶의 자리와 때가 일치하였다.
그 당시에 이름은 그의 인격과 행동을 의미한다. 예수의 이름은 예수님의 온유하고 겸손한 아름다운 성품을 포함하고, 예수의 이름은 예수님의 발 씻기기 까지 사랑으로 섬기는 행동을 모두 포함한다. 예수님 생전에 예수님이 많은 병자들을 고치신 사건을 이미 목격한 제자들은 그러한 역사가 성령의 임재와 능력으로 부활의 예수님이 예수의 이름만 불러도 일어날 줄을 믿은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답게 예수 같은 권능을 보여주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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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기 박사/전 감리교신학대학교 총장, 현 오이코스대학교 대학원장 및 이스트 베이 평생교육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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