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짧지만 강렬한 로맨스‘여정’‘피크닉’대표적
▶ 10대의 사랑‘피서지에서 생긴 일’‘서머 할러데이’
한 여름이다. 할리웃은 학생들이 방학에 들어간 이 한 철을 노리고 이들을 겨냥한 초대형 블록버스터 영화들을 줄줄이 출하해 진지한 드라마를 즐기는 어른들이 볼 영화가 별로 없다. 할리웃은 한 해 수입의 40%를 여름에 거둬들인다.
안방에 앉아 옛 추억을 되살리며 볼 여름영화를 ‘서머’(summer)가 제목에 사용된 것을 중심으로 돌아본다.
틴에이저 트로이 도나휴와 샌드라 디(오른쪽)가 열연한 ‘피서지에서 생긴 일’.
대뜸 생각나는 것이
‘피서지에서 생긴 일’(A Summer Place·1959)이다. 그림 같이 아름다운 메인주의 피서지 섬에서 일어나는 두 10대의 고운 사랑을 그린 영화로 두 10대로 모두 예쁘장하게 생긴 샌드라 디(가수 겸 배우였던 바비 다린의 아내)와 트로이 도나휴가 나온다. 허우대가 멀쩡하고 특색 없이 잘 생긴 전형적인 미국남자 얼굴을 한 도나휴는 스튜디오가 10대 여성 팬들을 겨냥해 스타로 키웠으나 연기력이 부족해 대성하지 못했다.
10대의 임신을 다뤄 논란거리가 되었던 이 영화는 경치가 아름답기 짝이 없는데 특히 맥스 스타이너가 작곡한 푸른 파도의 출렁거림을 절묘하게 묘사한 주제곡이 전 세계적으로 빅 히트를 했다.
유부남 레나토와 노처녀 제인은 베니스에서 짧은 사랑을 나누는 영화 ‘여정’.
어른들을 위한 아름답고 고적한 로맨스영화가 여름 베니스를 무대로 한
‘여정’(Summertime·1955)이다. 대하극 ‘아라비아의 로렌스’와 ‘크와이강의 다리’ 등을 만든 데이빗 린이 연출한 소품이다. 몇 년째 돈을 모아 베니스로 혼자 여행 온 오하이오주의 노처녀 초등학교 사무직원 캐사린 헵번이 부인이 있으나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하는 골동품상 주인 로사노 브라지(제2의 발렌티노라 불렸다)와의 달콤하고 짧은 로맨스를 꽃 피운 뒤 귀국한다. 산마르코 광장 등 베니스의 관광명소를 샅샅이 돌아다니면서 찍은 촬영과 음악 그리고 연기 등이 다 보기 좋다.
‘서머타임 킬러’(Summertime Killer·1973)는 로버트 미첨의 아들 크리스 미첨과 올리비아 허시(‘로미오와 줄리엣’)가 공연하는 복수 스릴러로 로버트의 영화의 아류에 지나지 않는다.
테네시 윌리엄스의 희곡이 원작인
‘지난 여름 갑자기’(Suddenly, Last Summer·1959)는 심리 미스터리 드라마로 미시시피주의 부호 여인(캐사린 헵번)과 그의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는 질녀(엘리자베스 테일러) 및 이 질녀를 치료하는 정신과 의사(몬고메리 클리프트)의 이야기로 세 배우의 연기가 눈부시다. 동성애를 다룬 작품으로 흑백 촬영이 좋다.
제목부터 더운
‘길고 뜨거운 여름’(The Long, Hot Summer·1958)은 윌리엄 포크너의 소설들이 원작. 미시시피주에서 대농장을 경영하는 바너(오손 웰즈)의 가정에 젊고 잘 생긴 뜨내기(폴 뉴먼)가 들어와 가족의 부자간 갈등에 끼어들면서 이 집의 아름다운 딸(뉴먼의 아내 조앤 우드워드)의 마음을 사로잡는 드라마다.
역시 뉴먼이 나오고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공연하는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Cat on a Hot Tin Roof·1958)는 테네시 윌리엄스의 희곡이 원작으로 ‘길고 뜨거운 여름’에서 영향을 받은 드라마다. 암으로 죽어가는 미 남부의 대 농장주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가족의 이권 다툼을 그린 드라마로 뜨거운 여름철에 일어난다.
역시 윌리엄스의 희곡이 원전인
‘여름과 연기’(Summer and Smoke·1961)은 미시시피주의 한 작은 마을의 젊은 의사(로렌스 하비)를 짝사랑하는 노처녀(제랄딘 페이지)의 드라마로 페이지의 내연하는 연기가 화끈하다.
필자가 좋아하는 프랑스 감독 에릭 로머의
‘여름’(Summer·1986)은 상쾌한 코미디이자 드라마로 끝이 시원하다. 프랑스 제목은 ‘초록 광선’인 이 영화는 로머의 6편으로 구성된 ‘코미디와 잠언’ 시리즈의 다섯 번째 작품. 까다롭고 변덕스런 성격의 파리지엔 델핀이 여름 휴가철에 달랑 혼자가 돼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면서 갈팡질팡 하다가 비아리츠 인근 마을에서 환상적인 초록 광선을 목격하는 얘기로 베니스 영화제의 대상인 황금사자상을 탔다.
심오한 영화를 만드는 스웨덴의 잉그마르 베리만의
‘모니카와의 여름’(Summer with Monica·1953)은 두 서민계급의 청춘남녀의 사랑과 아기 출산과 결혼을 그린 아름다운 드라마이고 옛날에 한국의 여학생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영국 가수 클리프 리처드가 주연하고 주제가도 부른 ‘서머 할러데이’(Summer Holiday·1963)는 청춘남녀들이 여름에 버스를 타고 유럽을 일주하는 얘기로 어리석지만 여름 방학 맞은 10대들에겐 딱 어울리는 영화.
제목에 ‘서머’자는 안 붙었지만 영화 속 계절과 내용이 뜨거운 영화들로는 우선 “서머타임 앤드 더 리빈 이즈 이지”로 시작되는 노래 ‘서머타임’이 있는 뮤지컬
‘포기와 베스’(Porgy and Bess·1959)가 떠오른다. 거쉬인이 작곡한 가난한 흑인들의 사랑과 꿈과 질투를 그린 민속 오페라로 시드니 퐈티에와 도로시 댄드리지,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 및 다이앤 캐롤 등이 나온다.
테네시 윌리엄스이 희곡을 원작으로 엘리아 카잔이 감독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A Streetcar Named Desire·19551)에서는 뉴올리언스의 달동네에 사는 노동자 말론 브랜도가 더위와 습기에 런닝셔츠 바람으로 고함을 지르면서 처제 비비안 리를 겁탈하고 ‘
복날 오후’(Dog Day Afternoon·1975)에서는 알 파치노가 복날 자기 동성애인의 성전환 수술비를 마련하려고 브루클린의 은행을 턴다. 실화다.
‘
한 밤의 열기 속에서’(In the Heat of the Night·1967)는 미 남부의 한 작은 마을의 인종차별주의자인 경찰서장(로드 스타이거가 오스카 주연상 수상)이 한 여름에 일어난 살인사건을 풀기 위해 이 마을을 지나 귀향하는 필라델피아의 흑인 형사(시드니 퐈티에)의 도움을 마지못해 청한다. 오스카 작품상을 탔는데 오프닝 크레딧에 나오는 레이 찰스가 부르는 주제가는 퀸시 존스가 작곡했다.
영화 ‘바디 히트’에서 두 간부가 한 여름 대낮에 뜨거운 정사에 빠져 있다.
제목에서부터 열기가 나는
‘바디 히트’(Body Heat·1981)는 연일 찜통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플로리다의 약간 둔한 변호사(윌리엄 허트)가 자극적인 요부(캐슬린 터너)의 육체와 음모에 빠져 여자의 남편을 살해하는 화끈한 치정 살인극이다. 두 간부가 뜨거운 대낮에 격정적인 정사를 치르고 벌렁 누워 천정에서 돌아가는 선풍기 바람에 정염의 후유증을 식히는 모습이 질식할 것처럼 후덥지근하다.
윌리엄 홀든(왼쪽)과 킴 노박이 ‘문글로’에 맞춰 슬로 댄스를 추고 있는 영화 ‘피크닉’의 한 장면.
윌리엄 홀든과 킴 노박이 나오는
‘피크닉’(Picnic·1955)은 한 여름 캔사스주의 한 작은 마을에서 일어나는 떠돌이와 얌전하나 무르익은 동네 처녀의 로맨스를 그렸는데 음악 ‘문글로우’에 맞춰 홀든과 노박이 추는 슬로 댄스가 지극히 선정적이다. 이 영화는 윌리엄 인지의 펄리처상 수상 희곡이 원작이다.
그리고 히치콕의
‘이창’(Rear Window·1954)은 한 쪽 다리가 부러져 캐스트를 한 채 한 여름 뉴욕의 싸구려 아파트에서 꼼짝달싹 못하는 사진기자(제임스 스튜어트)가 심심파적으로 망원렌즈를 이용해 아파트 뒤창을 통해 옆집 사람들을 정탐하다가 살인으로 추정되는 사건을 발견하는 스타일 멋진 스릴러다. 스튜어트의 애인인 사교계 여성으로 나오는 그레이스 켈리가 화사하게 곱다.
그리고 상어가 한 여름 바닷가 휴양지로 놀러온 사람들을 공격하는
‘조스’(Jaws·1975)는 피서영화의 필수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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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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