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리하는 것을 좋아한다. 색색의 채소를 송송 썰어 뜨겁게 달군 팬에 단숨에 볶아 보석처럼 반짝이게 만들거나, 좋은 육류를 구입하기 위해 먼 곳의 식육점을 찾아가고, 파머스 마켓에 나온 홈메이드 잼이나 특이한 마멀레이드를 발견하는 일들에 엄청난 즐거움을 느낀다. 가족들에게 영양가 높고 맛있는 음식을 먹이기 위한 주부들의 노력은 보편적인 것이겠지만, 나에게 있어 요리는 자기만족을 위한 일에 더 가깝다. 맛있는 것을 먹지 않으면 불행해지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취미는 가족력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 할아버지는 1920년대 출생의 한국 남성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방에서 음식을 만드는 것에 거리낌이 없으셨다. 특기는 평안도 출신답게 만두를 빚거나 국수를 만드는 것으로, 꽤 괜찮은 수준의 음식을 만들어 내셨다.
우리 아빠는 그런 점을 물려받지 못했지만, 대신 할아버지의 며느리인 우리 엄마는 케이크를 잘 만들었다. 취미로 배우기 시작해서 자격증을 따더니, 결국엔 작은 강습소를 차릴 정도가 되었다. 지금도 나에게 엄마의 케이크는 하나의 기준이다. 기술적인 차원이나 맛에서 엄마의 케이크보다 수준이 떨어지는 가게의 케이크는 돈을 주고 사 먹을 만한 물건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 내가 결혼한 남자는 여러 개의 식당을 운영하는 집의 아들이다. 시어머니는 손맛이 뛰어나기로 이름난 분이고, 시아버지는 40년 가까이 식품업계에 몸담고 계신 분이다. 연애하는 동안 그가 맛집을 찾아내는 감각이 남다르고, 가리는 음식은 없지만 맛없는 음식은 용서하지 않는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는데, 다 이유가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연애 상대의 정치적 성향이나 패션 취향 같은 것이 반드시 합의되어야 할 사항이겠지만, 우리 부부에게는 맛에 대한 엄격한 기준이 중요했던 모양이다.
그것은 이른 나이에 부모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해 열심히 살아왔다는 자부심과 더불어 우리가 꼭 닮은 점이었다. 우린 아무리 힘들어도 도움을 청하지 않는 고집쟁이들이다.
2011년 7월, 우리 원베드룸의 월세가 40% 가까이 올랐다.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 곳곳의 젠트리피케이션이 본격화하고, 지역주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한 시점이었다. 그 해 9월부터 12월까지 ‘점령하라 SF(Occupy San Francisco)’운동이 85일간 지속되었다. 자본의 논리는 가혹했고, 20대 초반을 갓 벗어난 우리 부부는 망연자실했다.
어느 날 우리는 아파트 주방에 쪼그리고 앉아 엉엉 울었다. 함께 저녁식사를 준비하며 집세 이야기를 한 것이 화근이었다. 집세가 너무 많이 오르면 식비를 줄여야 하고, 식비를 줄이려면 나의 신념인 ‘좋은 달걀’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하는데, 나는 그게 너무 속상해서 울기 시작했다. 그런 나의 설움에 공감해서 같이 울기 시작한 남편도 중증이었다. 그도 나 못지않게 달걀에 대한 집착이 강했던 것이다.
다행히 몇 가지 행운이 겹쳐 매년 오르는 집세를 감당하며 쭉 같은 집에 살 수 있었지만, 그래도 매년 7월이 오면 남편은 우울하다. 아무래도 버지니아 울프의 말을 의식하고 있는 것이다.
울프는 작가가 되려는 여성에게는 500파운드의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후, 남편은 나에게 방 하나를 작업실로 주지 못하는 것을 늘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그 방이란 것이 꼭 널찍한 책상과 튼튼한 의자가 놓인 공간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처럼 시대를 앞서 간 여성이 그렇게 상상력이 부족했을 리 없다. 좋아하는 것들에 둘러싸여 편안하고 행복한 마음으로 집중할 수 있는 곳이라면, 주방이라도 좋은 것이 아닐까?
올해도 방 한 칸을 늘리지 못해 상심한 그를 위해, 오늘 저녁에는 무엇을 만들면 좋을까? 비록 집세는 내 맘대로 되지 않을지언정, 설탕을 넣으면 설탕 맛이 나고, 소금을 넣으면 소금 맛이 나는 그 평범한 과정을 나는 몹시 사랑한다. 정성을 들이면, 정성을 들인 만큼 기운이 솟는 한 접시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당연한 듯 믿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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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 / 프리랜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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