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6년부터 1763년까지 계속된 ‘7년 전쟁’은 최초의 세계 대전이라 불린다. 유럽과 북미 대륙, 인도에서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서 벌어진 이 전쟁에서 영국은 세 곳 모두에서 승리를 거두며 세계 최강국으로 부상했다.
북미 대륙 대부분과 인도가 영국 식민지가 되고 영어가 세계 공통어로 떠오는 것은 이 때부터다. 1815년 나폴레옹이 워털루에서 패배한 후 제1차 대전이 터진 1914년까지 세계 질서는 영국에 의해 유지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시기를 ‘영국의 평화’로 부르는 것은 그 때문이다.
‘7년 전쟁’ 직후 영국 식민지 주민들과 대영 제국 간의 다툼이 일고 그것이 전쟁으로 이어져 영국이 지는 바람에 아메리카 대륙에 미합중국이라는 새 나라가 태어날 것이라고 말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즉시 정신 병원으로 보내졌을 것이다. 식민지 주민들을 프랑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큰 희생을 무릅쓴 본국 정부에 주민들이 등을 돌린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전력도 비교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국은 인구로도 식민지보다 3배가 많고 당시 영국을 제외하고는 세계 최강이었던 프랑스를 물리친 군대를 갖고 있었다. 반면 식민지인들은 인디언과 맞서 싸운 것이 전투 경험의 거의 전부인 소수의 민병대뿐이었다.
거기다 당시 영국과 전쟁을 해가면서 독립을 원한 식민지인은 소수였다. 사가들은 당시 식민지인 중 영국 지지자가 1/3, 중립 1/3, 독립 지지자 1/3 정도였던 것으로 보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13개 식민지가 각각 독립된 정부나 다름없어 행동 통일이 쉽지 않았다. 이들의 연합체인 대륙 의회는 징세권과 징병권이 없어 전비는 각 주정부의 자발적인 헌금에 의존해야 했고 자발적으로 참전한 민병대는 계약 기간이 끝나면 고향으로 돌아가기 일쑤였다. 이런 상황에서 전쟁이 제대로 수행될 리 없다.
아니나 다를까 1776년 7월 4일 미국이 독립을 선언하고 치러진 뉴욕 전투에서 조지 워싱턴이 이끄는 독립군은 연전연패하고 궤멸 직전의 위기에 몰렸다. 그 해 크리스마스이브 워싱턴이 얼음 섞인 델라웨어 강을 건너 뉴저지 트렌튼을 기습 공격함으로써 일단 한 숨은 돌렸으나 이는 국지전 성격이 강했다.
미국 독립 전쟁의 운명을 바꾼 것은 1777년 9월과 10월 뉴욕 북쪽의 시골 마을 사라토가 근처에서 벌어진 전투였다. 영국 지도부는 전쟁을 빨리 끝내는 최선의 방책은 독립군 지지자가 많은 뉴잉글랜드를 왕당파가 우세한 남부와 갈라놓는 것이라 보고 캐나다의 존 버고인 장군이 이끄는 영국군을 뉴욕으로 이동시키지만 이들은 사라토가에서 수적으로 우세한 독립군에 포위당하고 한 달 가까운 전투 끝에 6,200명에 달하는 영국군 전원이 항복하고 만다.
이 전투에서의 승리는 독립군이 영국군에 맞서 싸울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만방에 과시했고 프랑스가 미국의 독립을 인정하고 전쟁에 뛰어드는 계기가 된다. 그 후에도 전쟁은 4년 더 계속되지만 독립 전쟁의 승리는 이 때 굳어졌다고 봐도 된다. 영국은 수적인 우세에도 불구하고 항상 프랑스가 뒤통수를 치지 않을까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고 독립군을 진압하는데 전력투구할 수 없었다. 반면 독립군은 프랑스로부터 대대적인 군사 장비와 자금을 지원받으며 사기와 전투 능력이 모두 급속히 향상됐다.
당시 프랑스 국왕이던 루이 16세는 참전을 결정함으로써 ‘7년 전쟁’ 패배의 치욕을 씻고 미국 독립에 일조했지만 결과적으로 스스로에게 사형을 언도한 셈이 됐다. 미국을 돕느라 쓴 국채를 감당하지 못해 프랑스 재정은 파탄 나고 그것이 결국 프랑스 혁명의 도화선이 됐다. 남의 혁명 돕느라 자기 집에서 불이 나고 있는 걸 모른 셈이다.
아이러니는 또 있다. 미국이 독립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사라토가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베네딕트 아놀드라는 인물이다. 당시 독립군의 영웅이던 아놀드는 그 후 자신에 대한 푸대접에 불만을 품고 영국군과 내통하다 사실이 탄로 나자 영국으로 도주하고 만다. 그의 이름은 아직까지 ‘배신자’와 동의어다.
올해는 사라토가 전투가 일어난 지 240년이 되는 해다. 그 옛날 뉴욕의 한 숲 속에서 쓰러져 간 이름 모를 병사들이 없었더라면 오늘날의 미국도 없었을 것이다. 미국 독립 241주년을 맞아 이들의 희생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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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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